정치권의 ‘막말’ 정치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폭력’ 정치가 여론의 환멸을 사며, 철 밥그릇,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국회의원들의 지독한 자기들만을 위한 정치가 종래는 ‘국회 무용론’까지 일으키게 되자 당혹한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국회개혁론’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먼저 새정치민주연합이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하여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 시켰다.
그런데 이 혁신위원회가 며칠 전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현행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369~390명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는 국회 혁신안이란 것을 발표했다. 이 혁신안은 지역구 당선자의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못 미치면 비례대표로 이를 충원하고, 그러면 지역구도가 완화되고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도 용이해진다는 일각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내용이다. 딱 찍어 말해 비례대표제 확대로 운동권의 국회 진입을 쉽게 하겠다는 반혁신안이다.
문제는 내용자체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국민 대다수의 요구와는 전혀 맞지 않다는데 있다. 문재인 당 대표까지 자당의 이 혁신안이 지금 이슈화 하는 건 매우 곤란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 혁신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혀 문 당대표와는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었다. 국회의원 숫자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국민여론은 이제 대의정치를 벗어나 유권자 직접정치가 운운되는 현실까지 와있다. 그런데도 국민을 완전 무시한 자기들만의 편의적 발상을 소위 혁신안으로 당론화하겠다는 말이다.
역시 제 밥그릇 키우기에 열중하는 종래의 버르장머리에 변화는 없었다. 삼복더위 때문인지 제정신들이 아닌 모양이다. 중요한건 혁신안 내용이 전혀 개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 냉정한 관점에서 보면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정치신진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긴 하나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그와 상관 않고 더욱 김상곤 혁신안이 냉소를 사야 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첫째 과제를 외면하고 있는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권력을 향유하며 수백 가지 특혜를 누릴 수 있다는 관념 때문에 선거철이 다가오면 온갖 잡새들이 날아든다는 생각을 우리 유권자들이 청산할 수 있게 하는 일부터가 정치혁신에 성공하는 길이다. 이를 정치권이 똑바로 알지 못하는 한, 어떤 제도적 변화도 필요 없는 지경에 내몰린 대한민국 정치환경을 이들 국회의원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며칠 전 “정말 중요한 정치개혁은 1948년 출범이래로 2018년이면 70주년을 맞게 될 국회 70주년, 헌정 70주년에 대한 총정리”라고 말했다. 총정리는 국회의 여러 가지 행태와 시스템, 관행, 의식들에 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 18대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재선 의원을 하는 동안 지켜본 국회는 32년간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조직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최고위원은 특히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정당마다 쇄신, 혁신, 개혁특위가 만들어지지 않은 적이 없지만 쇄신되고, 개혁되고, 혁신되는 것은 본적이 없다”며 국회가 국민들에게 5%, 3%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지금 국민들은 어려운 경제상황에 처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하루하루의 연명을 걱정하고 있는 이 시기에 국회의원들이 정치개혁 한답시고 내놓은 첫 작품이 자기들 밥그릇 늘리기라니 참으로 기함할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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