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앞에 교권이 무너진다

지난 11월 10일, 인천 서구 소재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수업 방해를 꾸짖는 40대 여교사 얼굴에 주먹질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남 순천에서 한 여중생이 50대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벌인지 불과 열흘 만의 일이다. 같은달 22일에는 충북 제천에 고등학생이 수업 중 자신을 책망하는 40대 여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같은달 26일, 강원도 춘천시내 한 초등학교에서도 초등학생이 담임 여교사를 폭행했다. ‘매맞는 교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경위야 어떻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교육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문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 일이 돼 버렸다. 존경과 사랑을 바탕으로 학문을 닦고 인격을 길러야 하는 학교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경기도 소재 한 중학교에서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노모(38·여)교사는 요새 한숨이 늘었다. 체벌이 금지된 이후로 아이들이 툭하면 “때리세요,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지난 10월 25일부터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관련 학교현장 고충사례’를 수집한 결과 ▲요즘 훈계 때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때리거나 벌 줄 수 없죠?’라고 비웃는 경우 ▲교원평가 기간 중에 늦게 수업을 들어온 학생이 수업을 방해해 훈계를 하고, 벌점을 주겠다고 하자 그 학생이 ‘선생님 지금 우리가 선생님 평가하는 기간입니다’라고 반응한 경우 등 체벌금지와 관련된 고충사례가 66건이나 접수됐다고 밝혔다.


교권침해, 10년 사이 9배 급증

인천 서구 모 중학교에 다니는 A군은 자신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지난달 10일 시간제 계약직 교사 B씨를 마구 폭행했다. A군이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 문을 열며 머리를 들이밀고 친구를 바라보자 B씨는 “수업에 방해되니 나가”라고 주의를 2차례 줬다. 그 뒤 A군은 복도에서 교사 B씨의 얼굴을 서너 차례 가격했다. 같은달 22일 충북 제천 모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여교사 C씨는 친구와 떠들던 D군에게 “수업에 방해가 되니 똑바로 앉으라”고 두 차례 지도해도 말을 듣지 않자 D군의 어깨를 지휘봉으로 툭툭 쳤다. 이에 D군은 C교사의 허벅지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복부를 때린 뒤 욕설을 내뱉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학생의 교사 폭행 등 교권침해 사례가 2001년 12건에서 2010년 108건 증가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9배나 급증한 것이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학교는 다수의 학생과 소수의 교사가 교육이라는 목표로 이뤄진 교육공동체”라며 “매 맞는 교사가 증가하면서 서구의 교실붕괴현상과 같은 현상이 대한민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국가·법률적인 시스템 하에서 빈발하는 교육 분쟁 부분을 제도화로 개선하고 막아내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교총은 지난해 7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을 통해 국회에 ‘교원의교육활동보호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국회 교육과학기술상임위원회의 장기간 파행으로 인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체벌금지 후 수업 분위기 나빠져

지난 10월 체벌 금지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에서도 체벌이 전면 금지되면서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체벌을 대신할 제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일부 학생들은 전보다 수업 분위기가 나빠졌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한국교총이 발표한 서울지역 25개 초·중·고교 학생 914명에 대한 우편 설문조사 결과, 체벌 금지 시행 이후 학습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응답 보다 높게 나타났다. 부정적인 응답으로는 ‘떠드는 학생이 늘어 수업 분위가가 산만해졌다’(17.9%) ‘준비물을 챙기지 않고 청소 안 하는 학생이 늘었다’(12.7%) ‘지각·이탈·결석 학생이 늘었다’(7%) ‘숙제 안 하는 학생이 늘었다’(6.3%) 등이 많았고 긍정적 응답은 ‘선생님이 친근하게 느껴졌다’(7%) ‘수업에 대한 열정과 참여도가 높아졌다’(4.1%)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이 설문조사 결과 서울지역 학생들이 찬성 41.1%, 반대 35.6%로 ‘대체벌이 시행된 지금보다 체벌 전면금지 이전이 더 좋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사가 회초리나 신체를 이용한 직접체벌을 하지 않되, 잘못한 학생에게 간접적인 교육적 벌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매뉴얼이 오히려 혼란 가중

현재, 학생들은 학교 및 교실 내에서 잘못된 행위와 교칙을 어겨도 ‘학교와 교사는 제재를 하거나 벌을 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교사들도 학생들이 교칙 위반, 수업방해 등 잘못된 행위를 해도 학생지도를 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벌점제도만으로 학생들을 훈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도 교육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이에 지난달 14일 서울시교육청은 ‘문제행동 유형별 학생생활지도 매뉴얼’을 발표했다. 체벌전면금지 실시에 따른 일선 교사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취한 대책이다. 그러나 한국교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매뉴얼이 오히려 더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염색 및 파마’가 두피 건강을 해칠 우려 있다고 이해시키면 과연 따를지 의문이며, ‘지도 불응 및 학습태도 불량’ 학생의 경우 교무실 소환이나 공개사과 방안도 학생이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총은 “학생교육과 지도에 있어 비교육적 체벌과 폭행은 단호히 거부해야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체벌금지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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