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녀 스파이들에 농락당한 서방 세계

빼어난 미모로 주목받은 러시아 스파이 안나 채프먼(좌) - 에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러시아의 미녀 스파이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암약하던 러시아 미녀 스파이가 미 FBI에 의해 검거돼 러시아로 추방된 사건이 크게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이번에는 영국에서도 러시아 미녀 스파이가 검거됐다. 영국의 해외 정보국 MI5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여성은 에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25). 일명 카티아라고도 불리는 이 여성은 밝은 성격과 수려한 외모 그리고 섹시한 금발로 3년간 영국 의회에서 스파이로 암약해 왔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냉전시대와 다르게 지금도 러시아를 비롯한 각국이 수많은 스파이를 운용하며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더구나 일종의 미인계라고도 할 수 있는 미녀 스파이망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세계는 지금 또다른 의미에서의 스파이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미녀 스파이들의 세계로 잠입해 본다.

영화 ‘솔트’나 007 시리즈의 본드걸을 능가하는 실제 미녀 여간첩 스토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 간첩 마타하리는 암호명 ‘H21호’로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서는 이화여전을 졸업한 미모의 여성 김수임이 미군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면서 중요기밀을 북측에 넘긴 혐의로 체포돼 사형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오래 전 냉전의 유물로만 알았던 미녀 간첩 사건이 세계를 또다시 달구고 있다.

지난 6일(한국시간) 영국 신문들에 따르면 영국 해외 정보국 MI5는 러시아 여성 자툴리베테르가 하원 국방특별위원회 소속 마이크 핸콕(64·자유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고 전했다.


짧은 치마에 하이힐 신고 의원과 함께 식사

데일리 메일 소식통에 따르면 “자툴리베테르가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채 핸콕 의원과 함께 다니며 같이 식사하곤 했다”며 “그녀가 매력 있고 지적인 줄은 알았지만 스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그러나 선데이타임스는 최근 몇 주간 행콕 의원실이 국방 문제와 관련된 많은 사안을 정부 측에 질문했는데 여기에는 영국이 보유한 핵무기 목록, 세계 각지의 잠수함 기지 위치 등도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MI5는 자툴리베테르가 러시아에 관심이 많은데다 여성 편력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핸콕 의원에게 일부러 접근한 듯하다고 밝혔다. 핸콕 의원이 러시아에서 그녀를 만나 보좌관으로 채용했다고 밝혔다.

핸콕 의원은 “자툴리베테르의 간첩 활동에 대해 아는 바 없다. 그녀가 러시아의 스파이일 리 없다”며 “날 위해 일하는 동안 의심스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영국 신문들은 보도했다. 핸콕 의원은 “더욱이 보안당국에서 ‘자툴리베테르가 러시아의 스파이일지 모른다’고 귀띔한 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발끈했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주 경찰에 체포됐으며 본국 송환을 앞두고 영국 내 한 보안시설에 구금돼 있다.

자툴리베테르의 아버지 안드레이 자툴리베테르는 러시아 남서부 끝자락에 자리잡은 카프카스에서 가스 교역 업체 등 여러 기업을 경영해 성공한 인물로 카프카스에서 러시아 거물들과 끈끈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옛 소련 시절 SVR의 전신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활약했다고 하지만 이는 확인된 바 없다.

영국 의회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러시아 정부를 위한 간첩 활동 혐의로 체포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영국 측은 의회가 미녀 스파이에게 6개월이나 노출돼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2006년 런던에서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암살된 이후 악화돼 온 양국의 외교관계를 더 경색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체포는 됐으나 미모 덕에 일약 인기인

그러나 러시아 미녀 스파이 사건은 이미 미국에서도 한번 호된 홍역을 앓았다.

지난 6월 28일 미국 법무부는 민간인으로 위장해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활동해온 스파이 11명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들 스파이 중에 안나 채프먼(28)이라는 미모의 여자가 포함돼 있어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다. 부동산 회사의 CEO로 신분을 위장한 채 스파이 활동을 해온 채프먼은 FBI에 체포된 후 워싱턴포스트와 ABC를 통해 페이스북에 실린 요염한 사진들이 공개되며 미녀 스파이로서 네티즌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본래 성이 쿠센코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서 성장했고,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다고 러시아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안나 채프먼은 2006년부터 뉴욕에서 인터넷 부동산회사인 프로퍼티 파인더를 경영해 왔다. 안나 채프먼은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러시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뉴욕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던 그녀는 지난 1월부터 수집한 각종 정보를 수요일마다 러시아 측에 넘겨 왔다고 FBI는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3월 20일 웨스트빌리지의 한 서점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밖에 대기 중이던 제3자에게 그 동안 수집한 정보를 전송한 것이 FBI에 의해 포착되기도 했으며 미드타운에서도 이런 식으로 러시아 측에 정보를 건넨 적이 있다고 한다.

채프먼 체포작전도 하나의 영화를 방불케 한다. FBI는 채프먼이 비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 측 요원과 서로 교신하는 것을 알고 러시아 측 요원으로 가장해 접근했다. 이렇게 가장한 FBI 비밀 요원은 그녀에게 다른 여성 스파이에게 가짜 여권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함정을 판 것이다.

FBI 비밀요원은 채프먼에게 다른 여성 요원과 접선·교신하는 방법도 일러줬다. 접선 장소에서 겨드랑이에 잡지를 끼고 있으면 상대방이 접근해올 것이라는 말이었다. 상대방이 “혹시 우리 지난해 여름 캘리포니아주에서 만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으면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햄프턴이었을 것”이라고 답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프먼은 멋지게 함정수사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뉴요커 생활 만끽하며 유력 인사들과 친분

그러나 이들은 지난 7월 러시아 내에서 서방을 위한 활동 중 체포된 4명의 러시아인 스파이와 공개적으로 맞교환돼 러시아로 추방됐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에 따르면 붉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전형적인 ‘뉴요커’로서의 삶을 만끽했다고 전한다. 고가의 옷으로 치장하며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상류층만 드나드는 레스토랑과 고급 클럽을 드나들며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SVR이 유력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돈독히 하라는 명령에 뉴욕은 최적의 장소였고, 매력적인 채프먼은 최고의 적임자였다.

동영상 전문 커뮤니티 유튜브에 오른 동영상에서 그녀는 “뉴욕이 모스크바보다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쉽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ABC뉴스는 채프먼을 뉴욕의 중심지인 소호거리의 이름을 빌려 ‘소호 스파이’라 이름 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페이스북에 올려 놓은 채프먼의 매혹적인 사진들이 급속히 인터넷을 통해 확산, 이를 본 인터넷 이용자들과 언론들은 일제히 채프먼을 ‘팜므 파탈’, ‘본드 걸’로 부를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WP는 “채프먼의 매력적인 모습은 치명적이었다”며 “정부관료들과 사업가들은 이에 유혹돼 국가기밀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정보유출 혐의를 받는 채프먼은 ‘고작’ 징역 5년이 최고형이지만 정보제공자들은 반역죄가 적용돼 최고 사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 유혹의 결과 또한 참담하다.

그러나 안나 채프먼이 더욱 유명해 진 것은 러시아로 추방된 이후다. 최근 남성잡지 ‘맥심’의 러시아판 최신호에 표지모델로 등장하는가 하면 그녀의 전 남편이 그녀의 나체 사진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전 남편 “침대에서 안나는 대단했다”

앞서 타블로이드지 데일리 미러에 따르면 채프먼의 전 남편 알렉스 채프먼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에 그녀의 나체 사진을 넘기고 거액을 챙겼다.

알랙스는 “침대에서 안나는 대단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신문은 전했다. 사진 속 안나 채프먼은 옷을 벗은 채 성인용품을 들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안나 채프먼은 변호사를 통해 “전 남편이 나에 대한 날조된 사실을 유포하고 있으며 공개된 사진은 그가 시켜서 포즈를 취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안나 채프먼의 러시아 친구들은 채프먼의 전 남편 알렉스에 대해 “돈을 위해 은밀한 결혼생활을 팔아먹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22일 발매된 ‘맥심’ 러시아판 표지 제목은 지난 1981년 소개된 `007 시리즈’의 12탄 타이틀과 같은 ‘포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 eyes only. 당신만 보세요)’표지에서 채프먼은 검은 속옷 차림에 큰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 채 한손에 권총을 쥐고 정면을 응시하는 포즈를 취했다.

채프먼은 그러나 자신의 ‘속살’을 공개했지만 맥심에 소개된 인터뷰에서는 전직 스파이답게 자신의 스파이 활동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는 등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채프먼은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매력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라면서 “대부분의 남자는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원시적인 남자들은 오직 섹스만을 원하고, 좀 더 똑똑한 남자들은 사랑받기를 원하고, 또다른 그룹은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속에서 사랑을 가장 크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갈망한다”면서 “이게 가장 어렵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라고 설명했다. 채프먼은 그러면서 “내가 남자들에게 느낄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은 `동정’”이라고 덧붙였다.

채프먼의 인터뷰에 대해 언론들은 전직 스파이 출신인 푸틴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에서는 충성심과 커넥션이 법에 우선한다면서 채프먼도 인터뷰에서 철저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 “재미있고 창조적인 일을 찾아서 내 영혼을 쏟아부으면서 나의 재능을 찾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옛날 스파이와 지금 스파이는 달라

채프먼은 그 이후에도 러시아에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채프먼은 추방된 러시아 스파이 10명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만났으며 러시아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이달 초부터 러시아 한 은행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며, 최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 현지 스포츠전문 TV 방송 채널의 뉴스 앵커로 활동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에 의해 보도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고향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 진출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전하기도 했다. 뉴스위크는 “채프먼 자신은 현재 ‘매우 삼가는’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미녀 스파이인 채프먼을 따뜻하게 맞이한 것은 10년 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오늘날의 두마는 채프먼에게 꼭 맞는 일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냉전 시대 스파이는 체포되면 사형을 면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름을 대 놓고 사회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안나 채프먼의 경우를 보면 아무래도 옛날과 지금은 같은 스파이라 해도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러다가는 자칫 스파이도 하나의 인기 직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영국의 스파이 에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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