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신분증·자격증 넘쳐나

각종 신분증·자격증을 위조하고 불법 행사하는 일은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분증·자격증 위조는 인터넷이나 불법광고전단 속 연락처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의뢰할 수 있을 만큼 일상생활 가까이에 침투해 있다. 실제로 이런 위조 카페는 지금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곳곳에 버젓이 개설돼 솔깃한 광고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 현지 전문조직에게 위조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각종 신분증·자격증의 위조를 의뢰하고 돈을 건넨 한모(29)씨 등 17명을 공문서 위조 혐의로 지난 6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 이들은 대학생, 자영업자, 무직자들로 신분 위조가 서민들에게까지 똬리를 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위조브로커 안모(45)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각종 신분증·자격증 위조 카페와 블로그를 지난 4월 개설했다. 안씨는 이 카페와 블로그를 지난 10월까지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를 운영하며 대담하게도 ‘위조대행광고’ 등을 버젓이 게시해 놓아 위조된 신분증과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암암리에 끌어 모았다.

안씨는 위조를 의뢰하는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신분을 확인했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신분 확인을 거쳤던 것이다. 위조를 의뢰하는 사람의 신분이 확인됐다고 판단되면 연락처와 사진, 주민등록번호 등 위조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인적사항을 메일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수사기관 단속망 철저히 피해

위조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지면 안씨는 전화 연락이나 이메일을 통해 건당 30만~95만 원을 입금하라며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위조를 의뢰한 한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안씨는 한국어가 능숙해 대화나 메일을 주고받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씨의 범행은 치밀했다.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공개된 일반 사이트를 개설하지 않았다. 임시로 블로그를 개설하거나 회원 가입 절차를 거쳐야하는 카페를 개설해 위조 의뢰자를 모집했다. 일정한 수의 의뢰자를 모집하면 발각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해 곧바로 카페나 블로그를 폐쇄했다. 경찰 관계자는 “안씨가 검거되어야 위조 의뢰자의 수 등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위조 의뢰자들이 돈을 입금한 금융계좌를 파악해 계좌를 추적했다. 하지만 안씨가 생활비로 금액 중 상당수를 사용한데다 환치기 수법을 이용해 총 금액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조 의뢰한 이유도 각양각색

한씨 등 위조 의뢰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이들이 위조를 의뢰한 이유도 천차만별이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영어능력시험성적표, 졸업증명서 등 위조를 의뢰한 신분증과 자격증 수도 다양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 운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트럭 운전사는 생계 곤란에 직면했다. 때문에 신분증 위조는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 결국 이 트럭운전사는 본인의 인적사항이 아닌 타인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운전면허증 위조를 의뢰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이민을 갈 수 없었던 외국 이민 희망자도 있었다. 이 이민희망자는 영어실력을 늘리는 대신 국제영어능력시험(ISLTS) 성적표 위조를 택했다. 심지어, 보다 높은 보수를 꿈꾸었던 골프장 직원은 티칭프로테스트를 거쳐 정당하게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고 ‘티칭 프로 골프 자격증’을 위조했다.

몰염치한 집주인도 있었다. 이 집주인은 자기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세입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세입자의 인적사항으로 주민등록증을 몰래 위조한 뒤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제출하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며 신분증을 위조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한 40대 남성은 사회생활을 할 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들이 자신을 어리다고 무시하는데 불만을 품고 신분증 위조를 의뢰했다. 이 남성은 신분증 상 나이를 3살 많게 위조해 재취업하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타인 명의 도용

경찰 조사결과 위조를 의뢰한 사람 중 대부분은 타인 명의를 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인의 인적사항을 알아내 무단 도용한 것이다. 또 자기 마음대로 숫자를 조합해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본래 주민등록번호에서 ‘태어난 년도’만 바꾸는 식으로 숫자를 임의대로 조합한 것이다.

경찰은 안씨가 의뢰자들이 준 인적사항을 토대로 불법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공문서 등을 위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안씨는 공공기관의 공문서가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 점에 착안 해 불법 제작된 첨단 복제 장비를 이용했다. 이같이 정밀한 작업을 통해 위조가 이뤄져 진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위조된 다양한 공문서, 신분증 등은 전문가가 보더라도 진위여부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정교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위조된 신분증의 밀반입도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X-RAY 투시기 검색 등 통관절차가 까다로운 항공화물은 배제했다. 대신 통관이 항공화물에 비해 쉽고 배송이 빠른 일반 소화물을 택했다. 그 중에서도 전화기나 키보드, 책 등 화물 속에 위조 신분증을 끼어 넣어 교묘하게 밀반입했다. 경찰 관계자는 “항공화물에 비해 상세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악용했다. 위조 신분증을 전화기 속에 넣었는데, 전화기에 넣을 경우 전자키판이 주민등록증과 흡사해 X-RAY 투시기를 거치더라도 적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은 안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 공조 수사 등을 통해 안씨를 검거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유사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세관 등 관계기관과 공조를 강화해 국제화물을 통한 위조신분증 밀반입 사범을 지속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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