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유승민 전 원내대표. 박 대통령과 13일간의 전쟁을 치른 유 전 원내대표는 과연 20대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내년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유 전 원내대표 본인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배신자’ 이미지를 거꾸로 핍박받은 ‘피해자’로 역치시키며 원내대표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과연 대구 시민은 그렇게 받을 들일 것인지. 또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그가 생환하도록 좌시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은 특정인을 당선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공천 자체를 못 받게 할 수 있다. 설령 유 전 원내대표가 공천 신청을 하더라도 최측근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경선에서 탈락시킬 수도 있다. 내년 총선 시계가 속도를 낼수록 ‘정치인 유승민’의 선택도 촉박해지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의 선택지를 따져봤다.

- 수도권 출마, 신당 합류說에 “아닌데…”
- '차기와 차차기 사이' 선택의 기로에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유 전 원내대표가 직을 사임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절 고사하고 ‘묵언수행’중인 유 전 원내대표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영남일보에서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특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대구 동구을이 지역구인 유 전 원내대표의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과 관련해 TK 거주하는 1,18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30~31일 이틀에 걸쳐 여론조사를 벌였다.

우선 유 전 원내대표의 내년 총선 공천에 대해 응답자의 40.0%가 ‘공천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공천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36.9%로 3.1%p 근소하게나마 공천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잘 모르겠다’는 답변도 23.1%나 나왔다. 반면 새누리리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공천 반대’ 응답이 41.8%로 ‘공천 찬성’이 34.4%보다 7.4%p 높았다.

여야 중도층 ‘인기’ 새누리 지지층 ‘글쎄’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유 전 원내대표가 여당 원내대표로서 보수정권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청와대와 잘 소통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 전 원내대표가 사임하면서 토로한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다”, “진작 던지지 않은 것은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며 법과 원칙, 정의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피해자’ 입장을 강조했지만 대구시민은 박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결국 대구·경북의 이런 기류는 유 전 원내대표의 내년 공천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한편으론 중도 성향 야권 지지층의 지지로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한 것은 커다란 자산일 수 있다. 하지만 ‘배지’없는 정치인으로 유 전 원내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유 전 원내대표도 총선을 대비해 불가피하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비를 해야하는 처지로 몰렸다.

그렇다면 과연 유 전 원내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우선 수도권  출마설이 있다. 유 전 원내대표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데다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행보로 비춰질 공산이 높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3선에 안착하고 대선을 거치면서 올해 초까지 잠행을 해오다 비박계의 지원으로 원내대표에 당당히 당선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국회 원내대표 교섭단체 명연설과 박 대통령과의 ‘일전’으로 한때 집권 여당 차기 대권주자 1,2위에 오르면서 여야 중도층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수도권 그 중에서도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구나 야권 잠룡으로 구분되는 적지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병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유 전 원내대표 측에서는 “말도 안 된다. 죽어도 대구에서 죽는다”고 펄쩍 뛰며 선을 그었다.

이와 더불어 중도성향의 여야 지지층이 유 전 원내대표를 주목하면서 ‘신당창당 합류설’도 흘러나왔다. ‘천정배 신당 창당’이 호남에서 탄력을 받으면서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유 전 원내대표 영입설은 진작부터 존재했다. 그러다 지난 8월5일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빈소에 유 전 원내대표가 참석했고 그 자리에 역시 신당창당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과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이에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손 대표 왔지, 유 대표 왔지 신당창당 하나 하겠네”라고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면서 ‘비노비박 신당설’에 힘을 보탰다.

박 고문은 유 전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과 13, 14대 국회에서 함께했고 유 전 원내대표는 18대에서 국방위원회에 함께한 연으로 참석한 자리였지만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임 전 의장이 농담을 할 당시 ‘소이부답’하던 유 전 원내대표지만 ‘수도권 출마설’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의 또 다른 선택지는 ‘무소속 출마’ 카드다. 차기보다는 차차기를 노린 행보로 ‘TK 맹주’에 방점이 찍혀 있다. 만약 대구 지역구에서 중앙당으로부터 공천 배제를 당하거나 대통령 ‘복심’으로 여겨지는 최측근 출마가 기정사실화될 경우를 대비한 선택이다. 3선이나 한 자신의 지역구이고 대구 출신으로 미래권력의 잠룡으로서 무소속 출마를 감행해도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린 선택이다.

그러나 경선 전 당을 탈당해야 하는 만큼 명분이 중요하고 무소속 출마해도 ‘박근혜 vs 유승민’ 대결 구도를 벌여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그나마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나가 유 전원내대표가 진다고 해도 크게 잃을 게 없고 승리한다면 명실상부한 ‘포스트 박근혜’로서 위상을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 전 원내대표가 총선 전 박 대통령과 회동을 통해 ‘백기투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방법이다. 앞서 두 가지의 경우에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전면전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회동을 통해 차기 총선에서 정치적 행보에 대해 사전 조율을 통해 ‘윈윈하는’ 선택지도 있다. 그 연결 고리는 물론 대구라는 지역구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대구 수성갑, 김문수-김부겸 일전 준비

현재 대구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 지역구인 수성갑이다. 여야 잠룡으로 구분되는 TK 지역 출신으로 경북고-서울대 선후배이기도 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의원이 한바탕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는 여당 후보로 강은희 현 비례대표 국회의원에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박영석 대구MBC 사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쟁쟁한 후보군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양강 구도로 김 전 지사와 김 전 의원의 대결로 압축될 전망이다. 둘 중 한 명은 대구·경북 지역 맹주로 부상할 공산이 높다. 만약 김 전 지사가 승리할 경우 ‘포스트 박근혜’를 자처해 대선가도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 거꾸로 김 전 의원이 승리할 경우에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참패는 레임덕 가속화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지형 자체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파장이 크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김 전 지사나 김 전 의원의 당선이 달가울 리 없다. 이럴 경우 유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통해 판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방식도 유 전 원내대표 측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유 전 원내대표의 선택이 ‘나홀로 선택’이 아닌 상대가 있는, 그것도 살아있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선택지는 많을 수 없다.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후 공식적인 첫 모습은 지난 12일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북한 지뢰도발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확성기 재개가 전부냐”며 압박했다. 또한 유 의원은 청와대를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Mr 쓴소리’ 대통령과 2회전 돌입하나

청와대 NSC관련 유 전 원내대표는 “4일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알았다면 유관부서에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생각해야지 청와대 NSC는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비판했다. 청와대 콘트롤타워가 유명무실하다는 점을 부각시킨 셈이다. 이에 다음날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최고는 야당과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지금은 아군 진지에 혀로 쓰는 탄환인 ‘설탄’을 쏴서는 안된다”고 쓴소리를 보내 비박 친박 간 ‘쓰리쿠션’ 설전을 벌였다.

아직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유 의원의 정치적 선택지는 불투명하다. 당분간 청와대와 유 전 원내대표 간 냉기는 친박 비박 간의 관계를 점칠 수 있는 리트머스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유 전 원내대표의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쓴소리가 높아질수록 그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 전 원내대표의 선택에 따라 희비가 교차할 수밖에 없는 여야를 예의주시하는 배경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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