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딸 투신자살케 한 폭력남편 2심서 법정구속

지난해 5월 전라남도 해남군의 진도대교에서 30대 여성이 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유서가 단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자살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채 그대로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유서와 진단서가 뒤늦게 발견돼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남편 최모(43)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풀어줬다. 유가족들은 즉각 항소했고, 수원지법 제6형사부(재판장 정일연 부장판사)는 지난 8일 1심 판결을 뒤집고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법정 구속했다. 가정폭력으로 아내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의 전모를 되짚어봤다.

이씨는 2002년 2월 전남편과 이혼 한 후 최씨와 2005년 1월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잠시에 불과했다. 이씨가 이혼 후 전 남편으로부터 위자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최씨가 알게 된 다음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23장 유서 뒤늦게 발견… 1심 재판부 ‘집행유예

최씨는 수시로 돈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고 이씨를 폭행했다. 최씨의 폭력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폭행은 물론 흉기를 휘두르기까지 했다. 최씨는 부부싸움을 하다 흉기로 이씨의 무릎을 찔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으며 이씨와 전 남편사이의 자녀인 의붓딸(9)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이씨는 잦은 폭력을 견디다 못해 별거하기로 결심하고 지난해 4월 초 두 딸을 데리고 전남 해남군의 친정집으로 갔다. 하지만 이씨는 한 달 후인 같은해 5월 14일 낮 12시 40분께 최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5살짜리 딸과 함께 진도대교에서 투신해 숨졌다.

이씨의 갑작스런 자살 동기는 좀처럼 파악되지 않았다. 결국 이씨 모녀의 투신자살 사건의 동기는 5개월 후인 같은해 10월께 해남 친정집 장롱에서 A4 2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풀렸다.

이씨는 이 유서에서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호소했다. 이 유서에는 “지칠 대로 지쳤고 저런 행동을 지켜볼 수가 없어 자살로서 누명을 벗으려 한다. 남이 보지 못하는 폐쇄된 가정 안에서의 횡포를 다 밝혀 달라. 남편 최OO를 엄벌해 달라”며 남편의 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와 함께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다쳐 치료받은 병원진단서와 진료기록도 남겼다.

유가족은 곧장 최씨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가정폭력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판결에 유가족들은 실의에 빠졌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이씨의 친오빠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의여성의전화도 전국 지부에서 가해자 처벌 서명을 벌여 3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행유예 처벌은 너무 관대하다’며 서명에 동참했다.

2심 재판부에 유가족들은 의견서를 제출했고 한국여성의전화도 의견서와 함께 시민들의 서명지를 전달했다.


2심 재판부 “원심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

2심 재판부는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부싸움 중에 화가 난다는 이유로 물건 등을 사용해 처와 어린아이에게 상해를 가하는 등 범행의 수단과 방법이 매우 좋지 않다”며 “이씨가 상당 기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고, 최씨의 가정폭력이 이씨가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 하나의 이유가 됐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원심의 형(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는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판결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며 “1년 6개월의 실형은 이씨와 자녀들이 당했을 고통에 비한다면 턱없이 작은 형랑이지만, ‘남편 최OO으로 인해 죽는다’는 이씨의 호소가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이어 “가정 폭력 가해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가해자에게 관대한 관행을 없애고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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