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노숙인, 언제쯤 빛을 볼까


어느덧 겨울은 지나 봄을 바라보고 있지만 노숙인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변함없이 춥기만 하다. 96년 만의 한파였다는 올 겨울, 대중들은 종종 노숙인들이 동사 했다는 사건을 접했다.

지난 2월 15일에는 노숙인을 역 밖으로 내보내 사망에 이르게 한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이 재판부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이 사건은 노숙인를 비롯한 사회 빈민층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역사회가 이들에게 갖는 관심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이자 때론 시민들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노숙인들의 24시를 따라가봤다.

서울역 4호선 노숙인 사망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역 직원들이 구조를 요하는 사람을 구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관련법은 철도 안전과 역사 내의 노숙 금지이기 때문에 유기죄로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사건 당시 장모(44)씨는 만취한 상태였고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다. 밖에서 자는 것을 목격한 서울역 직원은 119구급대에 신고했지만 119요원은 장씨의 “괜찮다”라는 답변에 돌아갔다. 이후 그 곳에 방치된 장씨는 골절과 장출혈로 사망했다.

네티즌들은 검찰이 이 사건을 서울역 관계자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보였다. “노숙인 사회문제를 해당 역 관계자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장씨처럼 거리 노숙 생활을 하다 사망한 사건은 최근에도 몇 차례 있었다. 지난 1월 16일 부산 해운대 근처서 발견된 이모씨, 같은달 19일 서울역 부근에서 발견된 유모씨, 2월 초 제주도 과수원에서 발견된 60대 남성까지 모두 거리 노숙 중 사망했다. 이들 사건은 마땅한 대책 없이는 매년 되풀이될 일이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와 사회단체들은 ‘희망의 집’, ‘중간의 집’,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 ‘부랑인 시설’, ‘노숙인 쉼터’ 등을 통해 숙식을 제공하지만 거리 노숙인 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국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와 홈리스연구회 등의 민간단체 조사에 따르면 전국 거리 노숙인은 1516명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1145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부산 158명, 대구 157명 순이었다. 2009년 기록했던 1260명 보다 높은 수치다. 노숙인이 여럿 보이는 곳은 서울역 대기실과 용산역, 지하철1, 3호선 환승역, 을지로입구역, 송파구 가락시장 등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거리 노숙인들은 금천구를 제외한 24개의 지역구에서 모두 조사됐고 공원과 하천에도 3~20명 정도 생활하고 있다.


용산구 최대 밀집 지역

노숙인이 되는 원인은 실직과 부채 등의 경제문제, 가정불화와 불우한 가정환경, 음주 건강문제, 저학력으로 인한 실직 등 다양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노숙인 조사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노숙인 문제를 대응하는 시작”이라며 “수치에 맞는 진료소와 급식소 등의 제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정신과 전문의는 언론을 통해 “1차 서비스 제공으로 거리 노숙인들을 주거 쉼터와 자활, 사회진출로 이끌긴 어렵다”고 말했다. 악조건 속에서 생활해 기초대사율이 현저히 떨어져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의는 “거리 노숙은 의지의 저하로 연결되므로 그 청산이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노숙인들의 생존 법칙은 시민들에게 피해로 전해지기도 한다.


시민들이 무서워하는 존재

거리 노숙인 들이 많은 ‘주요 지하철’은 노숙인들로 인한 악취, 기물파손, 쓰레기로 매번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역에서 1년 반을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한 이모(26)씨는 통행 방해와 화장실 점거가 겨울철 주된 민원이라며 노숙인 관리의 대표적 고충을 ‘냄새’와 ‘통행 방해’로 들었다. 특히 역 안으로 들어오는 노숙인을 내보내거나 통로에서 자는 노숙인을 깨우는 것은 항상 반복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씨는 “밤 11시 이후에는 자게 놔두지만 그 전에는 조치를 해야 한다. 지나가는 행인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역 내에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는 것 또한 행인들에게 피해를 줘 제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하철 내의 노숙인 문제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라면 포장지, 음식물 찌꺼기 등의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은 물론 지하철 곳곳의 지형지물들을 물품 보관소로 이용해 그것을 처리하는 일 또한 고역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노숙자와 행인들 사이에, 혹은 노숙자들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경찰이 출동하기도 하지만 경찰도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잠깐 중재가 되더라도 또 언제 문제가 야기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이씨는 “서울역 4호선 장씨 사건 때문에 상부로부터 ‘깨우는 노숙인 중에 반응이 없는 이들은 즉각적으로 119에 신고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지만 개중에는 귀찮거나 술 취해 잠들어 대답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지하철 노숙인 문제는 도무지 해결될 기미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 난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며, 밤낮 폐지를 주우며 일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은 노숙인 또한 여럿 봤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공원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최근 부각되는 장소는 강북구 일대다.

노숙인들은 한신대 내 운동장, 삼각산공원, 미아역 부근, 수유1·3동과 번1동 놀이터 등에 주로 모인다. 강북구의 한 놀이터에서 본 노숙자만도 20~30명일 때가 있다. 강북구 공원에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종교단체의 무료급식, 깨끗한 놀이터, 텃새 부재 등이 꼽혔다.

부근 주민들은 악취, 음주, 추태에 불편을 호소하지만 쫓아낼 법적 근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현재 대책으론 부족해

자녀를 가진 한 부모는 “OOO공원은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의 주요 놀이터 였는데 거리 노숙인들 때문에 발길이 끊어졌다. 대낮부터 음주·흡연은 물론 노상방뇨도 거리낌 없이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 추위, 음식과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내몰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 또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는 1차적 지원을 하면서 생활을 재개할 의지를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서기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생필품 등의 구호품을 제공하는 것과 응급진료가 급선무지만 ‘성프란시스대학’, ‘고용지원센터’등의 2차 과정 또한 있다”고 말했다. 성프란시스코 대학은 인문학 교육을 통해 배우지 못한 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고용지원센터는 직업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 과정이다.

이 센터 자활기획 담당자는 “자활 사업을 통해 거리 노숙인을 접고 고시원, 숙소 생활을 하면서 생활미화 노동을 재개한 이들이 있다”면서 “돈을 모은 이들은 군밤,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부 시스템 비판도 많다. 특히 ‘특별근로 참여자수 확대’, ‘노숙인 일자리 계약기간과 보수 안정’, ‘참여희망자들의 능력과 직업에 따른 배치’등은 조속히 정착돼야할 과제로 나타났다. 사회단체들은 “적극적인 정책은 현 상황을 개선시킬 수도 있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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