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속 호스트바

바야흐로 남녀평등의 시대에 들어섰다. 남녀의 성 역할 차이가 좁아지면서 남자가 하는 것은 여자도 다 하는 세상이다. 특히 그간 밤의 세계를 접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우후죽순처럼 밤 문화를 접하며 주 고객으로 변신하고 있다. 남성들에게 ‘룸살롱’이 있다면 여성들에게는 ‘호스트바’가 있다. 국내에서 호스트바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 업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따금 일부 언론을 통해 내부의 풍경을 비추지만 ‘수박 겉핥기’식에 머물 뿐이다. 호스트바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강남구 논현동 논현초등학교 근처에는 20여 개의 미용실이 있다. 저녁이 되어야 슬슬 근처 룸살롱에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는 아가씨들로 이 미용실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가씨들의 출근시간이 지나 약간 한산해 졌다싶으면 젊고 훤칠한 남성들이 하나 둘씩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로 ‘호스트’들이다.


동종업계 아가씨들 팁 후해

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는 이지훈(24·가명)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180cm가 넘는 키에 날렵한 턱선, 이름바 호남형 외모인 이씨는 호스트바에서 일한지 1년이 좀 넘었다.

그에 따르면 호스트바가 여성들의 유흥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하지만 지금껏 이곳을 찾는 이들은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나 부유한 30~40대 여성 등 주로 특수계층이 음성적으로 출입해 왔었다. 하지만 최근 일반 직장여성들뿐 아니라 20대 초반의 여대생까지 그 계층이 다양해졌다.

이씨는 호스트(일명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손님은 단연 안마시술소 여성이라고 밝혔다. 안마시술소 여성들은 일당으로 받은 현금이 많아 호스트바에서 돈을 뿌리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여성은 룸살롱 아가씨들이다. 이들은 안마시술소 여성과 마찬가지로 팁이 후해 선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안마시술소보다 ‘진상’이 많다. 이씨는 “룸살롱에서 남성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다른 남성들에게 되갚아주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는 단골인 룸살롱 아가씨가 술잔을 집어 던지고, 추잡한 행동을 요구했다. 평소 우리들과 잘 어울렸는데 의아했다. 같이 온 다른 아가씨가 ‘진상손님을 만나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라며 이해를 구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분풀이’를 한다하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돈 많은 사모님 간택 기대

그렇다면 선수들이 기피하는 여성은 누구일까. 이씨는 가정주부들이라고 답했다. 그는 “가정주부들은 주로 3~4명이 한 그룹으로 온다.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여성들이다보니 남편이 출장을 갔을 때 친구들과 날을 잡아 논다고 한다. 주부들은 매너가 좋아 상대하긴 편하지만 팁이 짜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아 선수들이 접대하기 힘들다. 갓 시골에서 상경한 듯 전혀 꾸미지 않은 손님도 꺼린다. 우리 선수들도 남자인지라 여자들이 좀 별로다 싶으면 서비스에 대한 열정이 반감된다. 그러나 돈 많은 사모님일 경우 사정이 다르다. 우선 그녀들은 차림새부터 부티난다. 삶이 권태로운지 조금만 색다른 것을 시도해 주면 좋아한다. 가끔 주변에 사모님의 ‘세컨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도 있다. 잘만하면 명품시계, 외제스포츠카는 물론 오피스텔까지 사주는 ‘통큰’ 사모님을 만나 한탕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남편들도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은 기본이라 서로의 바람기에 대해 너그러운 것 같다”고 전했다.


남자보다 여자진상 많아

“선수로 오래 일했으면 여자들이 많이 따랐을 것 같다. 여자친구도 많겠다”고 하자 이내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여자 만나기가 오히려 무섭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 번 호스트바에 발을 담그면 제대로 된 연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대다수 호스트바 출신들은 ‘여성공포증’을 호소할 정도라고. 대체 호스트바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선수들은 여성들을 이토록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할까.

이에 이씨는 “남자들이 룸살롱에서 노는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여성 고객들은 호스트를 선택하는 ‘초이스’를 한다. 여기까지만 남성 룸살롱과 같다. 일단 초이스가 끝나면 분위기를 녹이고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기초게임’이 시작된다. 이른바 ‘얼음게임’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손님과 파트너가 얼음 한 개를 완전히 녹일 때까지 입에서 입으로 키스를 하며 주고받는다. 게임의 룰은 없다. 반드시 자신의 파트너와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으면 그에게 게임을 제안할 수 있다. 이후 분위기가 고조되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진풍경이 펼쳐진다. 선수의 몸에 술을 뿌린 후 핥아먹는 것은 얌전한 수준이다.

호스트바에서 인기있는 놀이는 바로 ‘왕게임’이다. 나무젓가락을 사람 수 만큼 준비한 뒤 그 중 한 개에 특정 표시를 해둔다. 그리고 사람들이 돌아가며 젓가락 하나씩 뽑는다. 표시된 것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 왕은 손님이나 선수 중의 누군가를 지목해 명령을 내리는 강력한 권한이 생긴다. 왕의 명령은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일명 ‘벌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명령의 수위는 무제한, 종류는 셀 수 없다. 남녀가 뒤엉켜 야릇한 체위를 연출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파트너와 속옷을 바꿔 입는 벌칙도 있다.

일명 ‘369’게임은 여성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벌칙으로 옷을 하나씩 벗게 되는데 멤버들 전원이 누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로 나체가 되면 더 이상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선을 넘는 행위들도 일어난다”고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모두가 알몸이 되면 고객들은 좀 더 강력한 벌칙을 선호한다. 심지어 선수들의 성기를 억지로 발기 시켜 그곳에 얼음통을 걸어보라는 짓궂은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얼음통을 제대로 걸지 못하면 ‘힘이 약하다’는 등 온갖 구박을 준다. 호스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임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자위·스와핑 등의 요구 ‘난감’

그의 설명에 입을 다물지 못하자 옆에 앉아있던 또 다른 호스트 김성준(23·가명)씨는 “그 정도는 약과다. 진상고객은 ‘자위행위쇼’까지 시키기도 한다. 어느 날 나와 동료들이 ‘초이스’되어 기분 좋게 룸에 들어갔더니 손님들이 모두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그 후 테이블 위에 현금 100만 원을 길게 늘어놓은 뒤 ‘자위를 해서 사정한 길이만큼 돈을 가져가라’는 황당한 제의를 했다. 돈에 상관없이 그런 짓은 정말 하기 싫지만 우선 손님이 원하는 것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랐다. 술도 마시지 않고 깔깔대는 여자들 앞에서 자위를 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치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질펀한 유흥의 끝자락에는 성매매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 고객은 ‘2차’를 요구하는데 화대는 보통 50만 원이 넘는다. 더러는 전용 파트너로 지정되기도 한다.

고객들의 2차 요구 중 호스트들이 싫어하는 것은 뭘까. 이씨는 ‘스와핑’이라고 답했다. 그는 “가끔 호스트바에 남자친구 혹은 애인을 데리고 오는 여성이 있다. 그런 룸에 초이스 돼서 들어가면 ‘오늘 밤 셋이서 같이 자자’는 제의를 해온다. 대부분 고객의 요구를 거절하지만 노골적인 요구를 계속할 때는 난감하다”고 했다.


당국, 처벌 기준 애매모호

이처럼 호스트바 내부에서는 사회통념에서 크게 벗어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 식품위생법은 유흥접객원을 ‘부녀자’로 규정해 놓아 호스트바를 단속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스트는 접대부로 분류 되지 않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뒤 호스트바로 바꿔 남성접대부를 고용해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 셈.

2008년 식품위생법이 개정됨에 따라 일반음식점이나 단란주점에서 접객행위를 하면 남자 접대부도 처벌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 경찰은 호스트바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

경찰 측은 “시간당 팁을 받고 일하는 호스트들도 있고 외부에서 여자 손님을 데려와 함께 술을 마신 뒤 술값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는 걸로 보인다”며 “어디까지 처벌해야 할지 확실한 기준이 모호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경찰 측은 “호스트바 자체가 교묘하게 영업 중인 데다가 성매매나 음란행위 등은 아주 은밀히 이뤄지고 있어 신고나 첩보 없이는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단속 상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호성 기자] ilyoz@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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