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말단에 꽃이 피고, 대도시엔 기가 흩어진다

손학규 - 이재오 - 오세훈 (첫째줄) 김문수 - 정동영 - 정몽준 (두째줄) 김두관 - 정세균 - 박지원 (셋째줄)

조상의 묏자리는 가문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풍수지리다. 그보다 더 중대한 변수가 있다. 죽은 자의 혈(穴)인 묏자리 못지않은 것이 산자의 출생 혈이다.

한민족의 정기(精氣)는 백두산이 원천이다. 백두산 천지의 저수량은 소양강 댐이 만수였을 때보다 많은 물이다. 2000m 이상의 허공에서 어마어마한 수량이 짓누르고 있다. 천지의 엄청난 수압이 한반도 백두대간을 따라 수맥 곳곳에 실핏줄처럼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지사.

전기(電氣)는 말단에서 불꽃이 튀기며 스파크가 터진다. 백두산이 민족정기의 원천이라면 백두대간은 크고 작은 줄기요, 꽃은 지리산 해양 쪽이 말단이다. 금오산, 팔공산, 가야산 등은 만개한 꽃의 형상을 띠고 있다. 백두의 정기가 대양(大洋)의 수기(水氣)와 인접했으니 그야말로 분기탱천(憤氣 天)할 기세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 큰 기업인들도 지리산 말단 산자락에서 태어났으니 그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대한민국의 승천룡들의 생가를 살펴보면 의미심장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자. 박 전 대통령의 출생지는 경북 구미다. 금오산(金烏山) 아래다. 까마귀란 뜻의 ‘금오’산이다.

까마귀는 영물(靈物)이다. 새 중에는 드물게 어미 새를 봉양한다. 합심하여 독수리를 물리치는가 하면 죽음의 사신(死神)을 미리 영접하는 영물이다. 그래서일까. 박 전 대통령도 피부가 검다. 앞날을 내다본 그의 근대화 치적은 폄하할 수 없다.

가야산과 팔공산 자락에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가 위치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도 태백산맥 남부 말단에 자리하고 있다. 영남 말단에만 기가 집중된 것은 아니다. 백두 기의 흐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거제대교(1971)가 놓아지고 진도대교(1984)가 건설됐다. 섬이 육지가 돼 막대한 백두대간의 기가 흘러들어가 불꽃을 튀겼다. 그래서인지 호남의 지리산 말단에도 꽃이 피었다. 거제의 외포리 출생 김영삼, 신안군 하의면 출생 김대중의 승천이다.

옛말에 말(馬)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고 했다. 대도시엔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는 흩어진다. 사람도 흐르고 돈도 흘러 사분오열 산산이 새나가 고일 틈이 없다. 이는 민첩하고 똑똑한 인물이 넘쳐나지만 이상하게 뚝심에 밀려 막판에 낙마하는 이유가 아닐까.


우아한 연꽃엔 뿌리가 약하다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 오겠다.”

이렇게 외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민주당의 새 당 대표로 당선됐다.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 후보의 3파전에서 예상 밖의 신승을 거뒀다. 2007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정동영에게 패한 뒤 화려하게 복귀해 설욕을 한 셈. 그는 비로소 한나라당 ‘전학생’이란 꼬리표를 뗀 것이다.

그의 정적들은 ‘미지근하고 색깔이 없다’고 날을 세운다. 이를 의식한 손 대표는 최근 ‘온화’에서 ‘강성’ 이미지로 탈바꿈 중이다. 천막농성, 민심 대장정, 영수회담 거부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야성(野性)의 발톱을 다듬고 있다.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론’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발 빠른 정책대결을 벌이고 있다.

손 대표의 얼굴상은 도학자의 풍모에 시민운동가형 정치가를 연상시킨다. 손 대표는 진흙탕 정치판 속에서 핀 우아한 연꽃이다. 그러나 연꽃은 뿌리를 박지 못한다. 물위를 이리저리 떠돈다. 민심은 흐르는 물이다. 잠룡으로서 손대표가 승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뿌리다. 정치적 기반을 말함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민심대장정을 떠난다. 그러나 뿌리를 박지 못하는 ‘국민 생활 속으로’는 취약한 당내 기반의 고육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당대표가 된 작금, 나 홀로 민심 대장정은 경계대상이다. 민심뿐 아니라 당심에도 몸을 낮춰야한다. 민주당 잠룡들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 당대표’란 결과로 귀착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 뿌리를 튼튼히 내려야한다.


‘폴더 인사’ 초심 기억하라

극렬한 진보에서 전향한 이재오는 이명박 대통령(MB)을 도와 킹메이커가 됐다. MB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권력의 축이 됐다. 평탄치 않았지만 그래도 정상까지 승승장구한 그는 4대강 총대를 메다가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하고 벼랑 끝에 떨어졌다.

2년 3개월 동안의 정치적 유랑과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지난 7월 ‘섬김의 정치’를 외치며 재보선에 당선돼 여의도로 돌아왔다. 곧바로 특임장관에 임명된 ‘왕의 남자’는 야당을 찾아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넙죽 90도 직각 인사, 일명 ‘폴더’ 인사를 했다. 정치판에서 정적에게 그런 행동은 공손을 넘어 섬뜩하기조차 하다.

사람들은 ‘하심(下心)’일까, ‘쇼맨십’일까 입방아를 찧었다. 이재오 장관은 작년 예산날치기 통과를 진두지휘했다. 작금 그는 대통령의 개헌 언급에 총대를 메고 있다.

나는 젊은 시절 1년 반 동안 세신사(목욕관리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모든 사람은 ‘때’가 있다는 것. 때란 피부 각질이면서, 한편으로 시(時)를 말한다. 또한 오늘 밀어도 또 내일 때가 나오니 항상 밀어야한다는 것.

그는 본인 입으로 대권을 말한 적이 없다. 킹메이커와 충직한 신하에 만족한다는 무언의 웅변만 있다. 그러나 당내 ‘박근혜 대항마’가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그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친이’의 수장이 되어있다. 결전이 불가피하다.

남에게 직각 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90도 직각 절이 진심인가. 또는 그때 초심을 간직할 수 있을까. 그의 승천여부는 바로 그 초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수기(水氣)를 묘용하면

젊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체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첫 번째 연임, 서울시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디자인 서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창의와 디자인을 시정에 도입해 회색도시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로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독설가들은 전통을 콘크리트로 바르고 영어로 치장하는 일이 ‘뉴서울’이냐고 비꼬았다. ‘광화문 광장’이 그 기폭제가 됐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추억을 뽑아버리고 무려 475억 원의 콘크리트를 쏟아 부은 공사는 교통체증에 시달린 운전기사들이 나라님이 계시는 코앞에서 불평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급기야 열대소나기 한방에 광화문은 전례 없는 ‘호수’로 잠겨 버렸다.

본래 자연하천이던 청계천을 처음 정비한 인물은 태종 이방원이다. 하천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으면서 풍수지리상 수기(水氣)를 받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청계천의 모습은 영조 때 완성됐다. 수인성 전염병을 막고 백성들에게 일감을 제공했다.

복개된 청계천을 걷어낸 것은 2003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었다.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를 걷어내는 복원 사업으로 서울시장 최대의 치적이 됐다. 청계천 복개와 보수 공사가 MB에게 모자란 수기를 공급해 승천의 못이 됐다면, 광화문 ‘호수’는 과연 오 시장에게도 승천의 호수가 될 것인가.


가운데서 좌우를 잡아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해부터 행보가 심상치 않다. 우군인 집권당 최고 당수인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연발하고 있다. 청와대 측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야당 대변인이나 할 법한 비판을 연이어 쏟아낸 이유는 분명하다. 6·2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을 꺾은 차기 대권후보로서 인지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 또 하나는 전 경기도 지사 출신의 손학규 대표의 추억을 지우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김 지사는 가장 진보적인 사람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으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좌에서 우로 유턴한 김 지사. 중앙무대에서 확고한 이미지를 심고 잠룡으로서 승천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이끌 중도의 길을 가느냐에 달려있다. 적어도 보수와 진보 양쪽 견제 세력으로부터 변절이란 십자포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내쳤으면 잡지 말고, 잡았으면 놓지 말라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DJ와 친노의 통합의 상징이었다. 양 세력에 가장 거부감이 없는 인물. 그러나 작년 당권 도전에서 3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정 최고위원의 입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청렴하고 스캔들이 없는 정 최고위원. 그러나 ‘2%’부족하다는 평가는 왜일까.

중국 당나라 몰락의 도화선이 된 ‘안녹산의 난(일명 안사의 난)’때 나온 말이다. 난이 평정된 뒤 현종의 명령으로 형장에 끌려가던 절도사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주 일부휴(一不走 一不休). 차라리 난에 뛰어들지 말 것을, 이왕 뛰어들어 안녹산 편에 섰으면 끝까지 버텨야 할 것을…”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절도사는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유정(有情)한 자는 예술로 남고, 무정(無情)한 사람은 역사에 남는다고 했다. 정치는 무정한 사람들의 잔치다. 부자지간에 피를 흘리는 것이 권력 아니던가. 칠 때 치고, 손잡을 땐 손잡는 분명한 명함이 정 최고위원의 승천을 결정할 것이다.


1점의 문턱을 넘어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흠잡기란 쉽지않다. MBC 앵커 출신으로 세련된 외모와 달변, DJ 정권시절 통일부 장관으로서 개성공단을 세운 아이디어와 정책 추진력, 호남권과 당권 장악력, 대중인지도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다.

89점은 1점이 모자란 A학점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A학점인 학생들이 종종 있다. 자신을 A학점 학생이라고 착각하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나 80점이나 89점이나 같은 B학점으로 평가받는 것이 현실.

88점과 달리 90점이 되는 1점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다. 아홉수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한 ‘임팩트’가 있어야 1점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잠룡과 승천룡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 초심을 잃지 말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인자도 부러워하는 ‘2인자’다.

“아무리 똑똑한 영의정이라도 내시를 못 이긴다.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다.”

그의 독특한 2인자 철학은 DJ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올려놓았다. 두 대통령은 가고 그만 남았고 여전히 가장 막강한 현존 ‘킹메이커’다. 지난해 5월 원내대표가 된 뒤 청문회 준비를 진두지휘, 5차례 연속으로 후보자를 낙마시켰다. 혹자는 현 정치판을 ‘박지원 천하’라 평하기도 한다. 그는 추억의 잠룡이 아니라 꿈틀대는 현룡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 했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처음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정략(政略)과 묘용(妙用)의 달인(達人) 박지원. 술수가 잦으면 초심을 잃기 쉽다. 그의 사원(思源)은 언제일까. 아마 미국시절이 아닐까. 그때 먹은 마음으로 끝까지 가야한다. 얼굴에 한이 서리면 이루기 어렵다.


덕망을 쌓아야

2002년 노무현에게 국민경선에서 패한 뒤, 정몽준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킹메이커’가 됐다. 그런 부담을 털고 정 의원은 축구 외교를 내세워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최근 2022년 월드컵 대한민국 유치가 실패로 끝이 났다. 다시 한 번 월드컵신화를 기대했던 희망이 물거품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5선 당선마저 실패했다.

하늘은 꽃과 열매를 한꺼번에 주지 않는다. 하늘이 한 인물에게 부(富)와 귀(貴)를 동시에 주지 않는 것일까. 고(故) 정주영회장의 한을 풀 것인가, 부자지간의 대물림 회한이 될 것인가.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 얼마나 덕을 갖추느냐가 승천의 관건이 아닐까.


하늘의 운이 필요하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29세에 경남 남해 고현면 이어리 이장(1988)부터 출발했다. 1995년 남해군수, 2003년 44살에 ‘새파란’ 행정자치부 장관, 다시 경남도지사로 승승장구했다. 그래서일까. 유일하게 위로부터 공천받은 장관직은 추풍낙엽이 돼버렸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여소야대 정국아래서 국회에서 해임안이 통과된 것이다. 7개월도 안되서 불명예 퇴진한 이후, 노무현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연이어 낙선했다. 노무현 후광이 사라진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꺾어 당당히 경남도지사로 당선됐다.

김지사는 풀뿌리 권력이다. 남들처럼 기댈 후광이 강하지 못하다. 잠룡 서열 자격으로는 과하다는 평가도 상당하지만, 나이를 고려할 때 잠재력 또한 만만치 않다. 대통령은 장관이나 도지사 자리와는 다르다. 오직 한 자리뿐이다. 혹 승천을 꿈꾼다면 지금까지 행보에서 크게 달라져야하는 이유다.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하늘의 운을 받을 인물인가, 아닌가.


#차길진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대표(63)는 숱한 예언을 적중시킨 영능력자로 통한다. 박정희 서거, 노무현·이명박 당선을 미리 알렸고, 지난해 “두 개의 큰별이 떨어진다”며 노무현·김대중의 서거를 암시하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서해교전, 2010년 천안함 사고와 연평도 사건을 정확하게 예언해 정치와 국제정세는 물론,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사실상 세상만사를 내다봤고, 맞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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