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新방석 열전’


유흥에 문외한 이들에게 방석집은 이불집, 솜틀집과 엇비슷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업계에서 방석집이란 접대부와 술, 질펀함 그 이상의 서비스가 있는 은밀한 공간을 일컫는다.

70년대 말까지, 시장 통 어귀에는 서민들의 밤 문화를 책임진 속칭 ‘니나노 집’이 있었다. 니나노 집은 방안에 술상을 차리고 작부와 함께 음주가무가 가능했던 곳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술꾼들의 영욕을 달래줬다. 유흥가의 ‘시대정신’을 타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 여전히 성업 중인 방석집의 실태를 추적해봤다.

니나노집이 60∼70년대 서민적인 유흥 공간이라면, 방석집은 부유층의 유흥 문화였다. 당시 방석집은 밀실정치의 대명사인 요정을 일컫던 은어였다.

하지만 요정정치 시대가 막을 내림에 따라 방석집도 함께 쇠퇴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서양식 고급술집이 늘어나면서 서울 근교의 대형 요정으로 그 모습이 변모했다.

그러나 현대의 방석집은 성매매가 포함된 질펀한 저가 유흥문화의 대명사로 변질됐다. 방석에 앉아 술상을 받는 영업 방식만 같을 뿐 술상에 접대부 가격을 더해 흥정하는 변태 업소로 변했다.

2011년 3월, 유흥가 호사가들에 의해 방석집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질퍽한 방석집의 현장은 진행형인 것이다.


SEX 선택 아닌 필수 “그곳이 어딘데요?”

지난 3월 13일 서울 이문동 인근. 정차된 차들과 통행하는 차들이 길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차량의 행렬을 향해 업장의 아가씨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눈길을 보낸다. 붉은 형광등을 배경으로 한 업장 안쪽에는 가슴을 겨우 가린 20∼30대의 아가씨들이 상품인양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둔 아가씨들은 호객행위를 하지도, 치기 어린 운전자의 눈길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 듯 건조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한다. 이곳은 이문동 일대의 방석집이다.

업소들은 간판마다 ‘백합’이나 ‘장미’ 등 두 글자 업소명이 주를 이룬다. 취중 손님을 배려한 그들만의 약속인 듯 보인다. 빛을 가리는 두꺼운 커튼과 아가씨, 유리에 썬팅 된 맥주, 양주라는 글자가 붉은 불빛에 투영될 뿐이다.

방석집은 두서너 명의 남성이 소주를 한 잔 걸친 상태에서 가는 2차성 술자리가 주를 이룬다. 그만큼 자정에 가까운 시간부터 한창일터인데, 늦은 시간임에도 짝문을 열고 들어가는 손님의 모습은 흔치 않다.

아가씨 비를 술값과 따로 계산하는 여타 유흥업소와는 다르게, 방석집에는 술값에 아가씨비가 포함되어 있다. 방석집을 가는 이들이 말하는 가장 큰 메리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술값에 각종 변태쇼와 함께 그 자리에서 성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손님을 가장해 한 업장 문 앞에서 흥정을 시작했다. 30대 아가씨로 보이는 상대방은“한 상에 40만 원”이라 짧게 대답한다. 애프터에 대해 묻자 “된다”고만 대답한 뒤, “들어갈거냐 말거냐”고 채근하는 통에 자세한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단지, 그녀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질펀한 방석집이 변했다?

이문동 방석집을 다녀왔다는 진오현(가명·30)씨는 “방석집인줄 알고 갔는데 룸에서 쇼도 없고, 2차도 인근 모텔에 간다”고 불평을 터뜨렸다. 이곳 방석집 촌은 붉은 형광등을 이용해 방석집의 형상을 띄고 있지만, 결국 성매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근 여관으로 2차를 나가며, 상대 여성에게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석집의 전통적인 영업 형태가 변한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튿날 집창촌 관계자를 찾았다. 집창촌 관계자 황준민(가명·45)씨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방석집도 많이 죽은 것으로 안다”며 “방석집의 영업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정의 내리기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황씨에 따르면 유흥업 종사자들도 방석집의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그는 “10∼50여 업장이 모여 소규모 촌을 이뤄 장사하는 방석집은 전국 곳곳에서 눈에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역별로는 서울 미아리 텍사스 일대, 성남 중동 일대, 대전 유천동 일대, 군산 화재사건 현장 일대, 포항 서부시장 일대 등의 업소가 방석집에 속한다.

방석집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업소로는 오비집이라 불리는 속칭 꽃마차 집이 있다. 서울에 유명 오비집은 사가정 역 일대, 아현동 고가 일대, 신림동 복개천 일대, 목동 곰달래 길 일대 등에 덩치 큰 오비집이 촌을 이루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두 업태의 구분이 힘들다는 것이 황씨의 전언이다.

이튿날 새벽, 취재진은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이모(35)씨와 함께 중동으로 향했다. 예전 성남 중동의 모습은 유리창 너머 세라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이었다. 세라복, 나레이터 복을 입은 아가씨가 있는 성남은 명실공히 국내 최초의 코스프레 방석집이었다.

이씨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중동은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협소한 골목을 중심으로 양쪽의 업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씨는 “성매매특별법 이후 많은 업장이 노래방, 노래주점 등의 간판을 달게 되었다”고 전한다.

성남의 경우, 곳곳의 문을 걸어 잠근 업소를 제외하고 10여 곳에서 아가씨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씨는 “허리 숙여 인사하며 적극적인 호객을 일삼는 아가씨들은 종적을 감췄지만, 은밀한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리로 된 업장의 입구는 일반인 눈높이까지 불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사람이 있는지 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동이 틀 무렵, 골목을 지나가도 호객을 하는 아가씨는 눈에 띄지 않았고, 이에 취재진은 한 업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리문 안쪽에는 야시시한 홀복을 입은 두 명의 아가씨가 웅크려 있었다. 그녀들은 취재진을 목격하자 술 취한 목소리로 “우리 사람 맞아”라는 말을 되뇌었고, 더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골목을 서성이다 업장에서 나오는 공현구(가명·32)씨를 만나 2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잘 모른다”며 한참을 손사래 치다 “예전이야 벗은 채로 놀았는데, 요즘은 근처 모텔에 가서 2차를 하고 나온다”고 귀띔했다.


업주들, 종업원 밖에서 성매매 유도

서울 신림동과 성남 중동의 방석집은 모텔 촌을 끼고 형성돼 있다. 취재진 확인 결과, 업장에서의 성매매 대신 가까운 모텔로 2차를 보내는 수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장에서는 일체의 성매매가 사라진 대신, 업장 밖으로 여성을 내몰아 성매매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씨는 “게다가 모텔 대실비를 손님이 부담해야 한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집창촌은 세금을 내지 않고 촌을 이뤄 영업한다는 이유로 철퇴를 맞았다. 반면 방석집은 버젓이 간판을 걸고 세금을 내며 성매매를 자행하고 있다. 순찰차를 세워 경찰에게 이곳의 성매매 여부에 대해 아는지 물어봤다. 담당 경찰은 “이곳에서의 성매매는 없어진 것으로 안다”고 짧게 대답했다.

[배성철 마이너뉴스 기자] snim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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