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궁한 처지에 몰리면 정의(正義)를 내세운다. 정의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글자 그대로 바르고 옳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사회가 이 정의의 뜻만 지켜지면 정말 살만한 세상일게 틀림없다. 모든 면이 바르게 행해지고, 옳게 이루어지는데 무슨 시빗거리가 생기고, 물고 뜯기로 서로를 증오하고, 죽기 살기로 다툴 일이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 뿐 아니라 이미 고대부터 이 정의의 원칙은 그저 입으로 내뱉는 수식어에 불과 했기 때문에 세상은 약육강식(弱肉强食) 논리로 지배돼 왔다. 약한자는 강한자에게 빌붙지 않고는 그 생명마저 부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자의 거드름과 오만방자함은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약자의 비굴함은 더욱 처량 맞아졌다.

근래 빚어진 갑(甲)질 논란이 어떤 개혁성과라도 낼 것처럼 여기저기서 핏대를 올리지만 애초부터 무망한 논쟁이었다. 만약 성과를 내는 일이 생긴다면 을(乙)들의 똘똘 뭉쳐진 힘으로 갑을 기 죽여서 자기들이 거꾸로 갑 노릇을 하는 일이다. 소위 ‘노동귀족’이란 말이 왜 생겼겠는가. 이걸 놓고 부당한 ‘갑질’을 길들이고 정의를 이뤘다고 보는 민중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바로잡고 사회 목탁이 되겠다고 분연히 일어선 우리 언론 현실 또한 정의사회 목탁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내 중심가에 거대한 사옥을 가지고 그 위용을 자랑하는 일컬어 ‘메이저 언론’들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라, 해당 언론사의 좌,우 성향에 따라 정치면의 신랄함과 공격논리는 가슴을 뛰게 할 정도다. 같은 사안에 관해 어떻게 그렇게까지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그런데 경제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뭔가 특정 재벌기업과의 아주 드물게 빚는 이해 충돌에 의한 공격기사 말고는 재벌기업을 앞장서 고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보기가 흐린 날 밤하늘의 별 구경하기보다 힘들다. 왜냐고 묻지 않아도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그대로다. 거대한 조직이 위용을 유지하자면 대기업의 홍보 조직이 쏟아 붓는 광고예산에 의지할 도리밖에 없다.

인터넷시대에 옛날처럼 독자들의 월정 구독료로 웅대한 조직을 유지하기는 날고뛰는 재주로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대기업이 이런 언론 사정을 꿰뚫고 오히려 언론사들을 길들이고 가지고 노는 시대다. 혹 어쩌다가 작은 언론에 한방 얻어맞으면 그 즉시 ‘찌라시’로 매도하고, 곧바로 거대 로펌을 통한 소송전을 벌인다.

가뜩이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난한 신문이 이에 맞서자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그러니 감히 대기업 비리나 정치권력의 일탈을 고발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입에 재갈을 물어야 한다. 이런 정황이 오늘 대한민국 정의를 세워야할 언론의 비참한 현실이다. 물론 강자들의 어망에 걸려드는 귀퉁이 신생 유사언론이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런 정통성 없는 유사언론이 빌미가 돼서 가난한 옳은 언론들이 도매값으로 넘어가는 뼈아픈 현상을 호소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 중소언론들이 약자로 기죽어 지내는 사회에서 진실 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단은 없다. 국민은 지금 진짜 ‘갑’의 횡포가 어떤 것 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업 광고에 의존해서 위용을 유지하는 언론이 정의를 회복하기는 불가능한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아가는 길은 약자의 굴복뿐이란 사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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