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지난해 7.30재보궐 선거 참패 후 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은 당내 정치적 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한때 새정치 세력을 등에 지고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였고 당 대표까지 지냈지만 ‘공부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 안 의원이 지난 9월2일 혁신안 중앙위 통과 13일 전이자 추석 한 달을 앞둔 시점에 반란의 칼을 치켜들었다. 첫 번째 타깃은 ‘혁신은 실패다’며 김상곤 혁신위를 향했다. 두 번째는 문재인 대표로 재신임 철회를 요구했다. 동시에 호남신당 창당 주역인 천정배 의원과 전격회동하면서 탈당도 불사할것처럼 연기했다. 시작은 ‘나홀로 싸움’으로 외로웠지만 친문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비주류 대표 주자로 각인되는 효과를 봤다. 안 의원의 느닷없는 ‘반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대권 주자로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지적부터 탈당을 위한 수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 의원 ‘반란의 시작’과 ‘끝’을 분석해봤다.  

- ‘혁신=실패’부터 ‘재신임 철회’… 잘 짜인 시나리오
- 2012진심캠프 사람들 첫 회동, 세 확장 후 반격카드 준비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안철수 의원과 함께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정치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학습력은 무서울 정도로 누구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안 의원이 정확하게 정치권에 발을 디딘 지 9월 19일로 3년차에 접어들었다.

2012년 9월 19일 안 의원의 대선출마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안 의원이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한 것은 2013년 4월 25일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때다. 이후 당대표직을 짧게나마 지냈다. 보통사람이면 초선이라고 무시할 수 있지만 안 의원의 지근거리에서 알고 지냈던 인사들 견해로는 안 의원이 여의도 정치에 어느 정도 ‘감’은 가질 충분한 시간이라는 평가다.

그래서일까. 안 의원은 1년2개월의 긴 침묵을 깨고 차기 대권주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단초는 문재인 당 대표가 지난 재보궐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성된 김상곤 혁신위였다. 안 의원은 9월2일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거론하며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혁신위를 통해 변화를 보여줬어야 했다”며 “그럼에도 국민의 공감대는 거의 없다. 혁신은 실패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철수 ‘정치학습력’ 도마 위에 올라

당내 비주류 리더격인 김한길, 박지원, 이종걸, 박영선 의원 등이 ‘하고 싶었던 얘기’였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얘기’를 안 의원이 먼저 꺼낸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안철수의 반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안 의원은 김상곤 혁신팀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당해야 했다. 지방선거전만 해도 ‘안철수 사람’으로 여겨지던 김 혁신위원장이 당장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도 당을 책임졌던 사람들이 혁신의 반대편에서 자신의 기득권, 자신의 정치를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안 의원을 겨냥해 쓴소리를 날렸다. 김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전직 당 대표를 지낸 분으로서 당 위기에 일말의 책임이 있으리라 본다”며 “성급하게 무례한 얘기”라고 격한 표현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문 대표를 압박했다. 안 의원은 9일 문 의원이 ‘재신임’과 혁신안 통과를 연계하자 이에 반대하면서 같은 날 호남발 신당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 전격회동을 가졌다. ‘여차하면 탈당해 신당창당 세력과 함께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문 대표에게 던진 셈이다. 당연히 ‘통합’과 ‘화합’을 내세운 문 대표가 다급해졌다.

안 의원은 ‘혁신은 실패다’고 말한 이후 혁신안 통과를 위해 소집된 ‘중앙위 연기’와 ‘재신임 철회’를 요구하며 비문세력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안 의원의 갑작스런 도발에 문 의원은 공개편지를 보내며 성의를 보였다. 급기야 안 의원의 요청으로 중앙위 소집 전날인 15일 저녁 문 대표와 전격 회동이 이뤄지면서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을 연상시키며 정치적 존재감을 한껏 높였다.

2012년 후보 단일화 ‘역전현상’ 노린 安

물론 그 자리에서 문 대표는 ‘재신임 투표 철회는 추후 논의한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아 평행선을 유지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정치적 이득을 확실하게 본 사람은 안 의원이라는 평가가 힘을 얻었다. 두 사람의 입장차이만 확인된 이후 16일 당 중앙위는 최고위원제 폐지 등 지도체제 개편 및 100% 국민경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당헌 개정안을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인준했다. 이로써 ‘혁신안이 거부되면 응당 책임을 지겠다’며 승부수를 던졌던 문 대표는 1차 관문을 통과하면서 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문 의원 역시 중앙위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혁신안 통과가 재신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추석 이전까지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는데 당의 단합화 통합을 위한 일인 만큼 계속해서 논의 하겠다”고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안 의원은 “사실상 대표 진퇴를 결정하는 자리로 변질됐다”며 중앙위에 불참했다. 이밖에 해외 국감에 참여 중인 김한길 전 대표, 정세균 전 대표 역시 불참했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박주선 의원 등은 표결 도중 퇴장했다.

문 의원과 안 의원의 대권 신경전 1라운드는 문 의원이 1차 관문을 통과하면서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다. 문 대표의 복안은 국민과 당원을 대상으로 한 재신임 투표를 23과 24일 실시하고 추석 직전에 발표해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말끔하게 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 의원 역시 문 대표와 ‘맞장’에 물러설 뜻이 전혀 없는 모습이다. 그동안 문 대표의 ‘재신임 정국’에 맞서 ‘나홀로 반란’을 하던 안 의원 곁으로 침묵하던 비문·비주류 세력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장 안 의원의 ‘혁신안=실패’ 발언 이후 조국 서울대 교수이자 혁신위원은 14일 트위터를 통해 “당인이라면 정당한 당적 절차를 존중하라”며 “그리고 그 절차에 따라 당헌 또는 당규로 확정된 사항만큼은 지켜”며 “그게 싫으면 탈당하여 신당 만들어라”는 발언이 비문세력을 결속하게 만들었다.

이에 문병호 새정치연합 의원은 “너무 무례하고 오만하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당원들이 정말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당원도 아닌 분이 당 대표까지 지낸 분에 대해 ‘당을 떠나라, 신당을 만들어라’하는 것은 무례하다”며 “당원들이 ‘너무 월권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고 일갈했다.

박지원 의원과 안 의원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박 의원은 17일 “문재인 대표는 재신임 제안을 철회해야 한다”면서 “당내에서 안철수 의원 등 다수가 반대한다면 이제 문재인 대표는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재신임 투표 철회를 촉구했다.

또 다른 비주류 인사는 차라리 이참에 탈당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탈당파’로 분류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박주선 의원은 “당이 회생에 대한 노력없이 분란만 커지는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당에 머물만한 명분이나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대책이 없지 않겠느냐”고 탈당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0일 신당창당선언을 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안 의원의 신당 합류를 공식제안하기도 했다.

‘세’(勢)없이 ‘대권 없다’ 안철수 선택은…

안 의원이 문 대표와 혁신안과 재신임을 두고 일전을 벼르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안철수 전 캠프에 몸담고 있던 한 인사는 “세력”이라고 밝혔다. 이 인사는 “안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3무 정책을 폈는데 네거티브, 조직,돈 없는 선거였다”면서 “그러나 내부적으로 조직을 챙기지 못한 것은 안 의원도 매우 후회하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를 몸으로 느낀 안 의원은 정치를 하면서 ‘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세 확장에 나서기 위한 것이지 ‘몸값 올리기’차원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안 의원은 대선출마 선언 3주년인 9월19일 진심캠프에서 팀장을 맡았던 인사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넣어 모임을 제안해 가졌다. 그동안 안 의원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전 캠프 인사들과 개별 만남을 가졌지만 집단적으로 모임을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안 의원은 전당원 혁신토론회를 통해 전국 순회를 돌 예정이다. 물론 자신의 새정치를 한때 지지했던 세력들을 재결집시키기 위한 복안이 깔려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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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2012년 데자뷔?

- ‘통 큰 양보론’ 이번에도 없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큰형님론’, ‘통 큰 양보론’을 내세우면서 차기 대권에 대한 강한 욕심을 내비쳤다. 급기야 안 의원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고 문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당시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야권후보 단일화’ 프레임에 갇혀 승부를 펼쳐야 했다. 그 당시에도 현 재신임 정국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우선 안 후보가 ‘문 후보와 만날 의향이 있다’고 전격 밝혔고 문 후보는 당일 응답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찻집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결과는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한 자리로 끝났다.

실제 당시 양측은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디테일 싸움’(단일화 룰 협상)을 펼쳤다. 양측은 ‘특사 담판’까지 시도하면서 절충점을 찾았다. 우선 문 후보 측은 ‘양자 가상대결+적합도 조사’를 제안했고 안 후보 측은 ‘양자 가상대결+지지도’로 맞섰다.

이에 제3안으로 ‘칵테일안(양자 가상대결+지지도+적합도)이 나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안 후보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다”는 말을 남긴 채 대선후보직을 사퇴했다. 2012년 대선은 미완에 그쳤고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지 못해 결국 정권교체도 실패했다. 이번에는 어떨지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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