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 정도 묻어놔야 진정한‘도박사이트’ 운영자?”

뉴시스

전라북도 김제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7800만 원이 발견돼 세간이 떠들썩하다. 밭 속에 묻힌 거금의 출처는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벌어들인 돈이었다. ‘마늘밭 사건’은 마늘밭 주인인 이모(53`·무직)씨가 근처서 일하던 중장비 기사 안모(52)씨에게 도둑질 누명을 씌우려다가 드러났다. 밭에 묻어둔 거금이 사라졌다는 신고에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 돈은 이씨의 큰 처남(48)이 2009년 당시 이씨에게 맡긴 돈이었다. 돈을 맡기곤 큰 처남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잠적했다. 이번 사건에 시민들은 인터넷 불법 도박장 실태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이씨의 첫째 처남과 둘째 처남(43)은 홍콩과 중국에 서버를 둔 불법 도박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들은 사이트 운영을 위해 운영본사, 루트본사, 총본사 등 7단계 조직을 구성하고 이용자들의 판돈을 단계적으로 나눠 가졌다. 사이트 내 도박 게임은 포커, 바둑이, 맞고 등이었다.

이들의 불법 도박 사이트 거래액은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1540억 원까지 쌓여갔고 이들은 환전 수수료 명목으로 170억 원 정도를 챙겼다.

하지만 2009년 집중된 경찰의 단속으로 더 이상 운영을 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이 2009년을 ‘불법 도박 근절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시행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1년 내내 단속을 진행했고 2만9000여 건의 불법 도박 운영 실태를 포착했다.

결국 2009년 말 둘째 처남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첫째 처남 역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잠적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당시 처남 형제는 경찰의 수사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도박 사이트로 벌어들인 돈을 이미 매형 이씨에게 넘겨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씨 또한 처남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처남 형제들의 행각에 관련돼 있었다.

처남 형제는 막대한 자금을 수시로 5만 원권으로 바꿨다. 그리곤 2009년 4월부터 2010년 5월까지 한 번에 10억여 원씩 10여 차례에 걸쳐 5만 원권 돈다발을 이씨에게 보냈다.


이씨 300평 대형금고 장만해

돈을 건네 받은 이씨는 자신의 아파트 다용도실과 침대 밑 등 집안 곳곳에 보관했다. 하지만 돈은 점점 감당할 수 없이 많아졌다. 그러자 이씨는 다른 ‘대형 금고’로 땅 속을 생각했고 전라북도 김제시 구금면 선암리의 마늘밭을 사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곤 2009년 5월, 8000만 원에 마늘밭 990㎡(300평)을 사들였다.

선암리가 이씨의 눈에 들었던 이유는 이곳이 10여 가구정도만 살고 있는 한적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거주하는 전주시 덕진동과 30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선암리가 ‘학식 있는 양반’마을로 알려진 점 등을 고려해 이곳을 선택했다.

땅 주인이 된 이씨는 곧바로 컨테이너 박스부터 구입했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5만 원권이 가득찬 페인트 통과 김치통을 차례차례 묻었다. 작업은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 이뤄졌고 지난해 6월부터 올 3월까지 진행됐다.

이씨는 플라스틱 통과 김치통을 묻은 자리 위에 조경 소나무나 매화나무를 옮겨 심어 위장했다. 또한 마늘 외에도 상추, 깻잎 등을 심어 거금이 숨겨진 마늘밭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씨가 마늘밭 밑에 있는 거금을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이 지키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금 일부를 개인 용도로 쓰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진 이씨는 지난해 7~8월 마늘밭자금 중 일부인 4억 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돈을 인천 송도 아파트 구입비와 개인 생활비에 사용했다. 4억 원 중 이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금액은 2억8000만 원이었다.

이씨가 처남들에게 건네받은 모든 돈을 마늘밭에만 묻은 것은 아니었다. 이씨는 아들에게 11억9900만 원을 건네기도 했고 아들은 받은 자금을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보관했다.

또한 아내에게 1억1500만 원을 아파트 금고 속에 맡아두게 했다.

이후 마늘밭 실체와 이씨의 개인적인 운용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는 듯했지만, 이씨의 조바심이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이씨는 올해 초부터 몰래 빼돌린 4억 원의 출저를 들키지 않기 위해 궁리했다. 5월 말이면 둘째 처남이 1년 6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돌아온 처남이 없어진 4억 원의 행방을 물어볼 것이 뻔했고 이씨는 이에 대한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미련했던 자작극

처남의 눈밖에 날 것을 걱정한 이씨는 4억 원의 출저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마음 먹고 안씨를 대상자로 삼았다. 안씨는 몇 달 동안 이씨의 지시에 따라 마늘밭 근처에서 조경작업을 벌이던 중장비 운전기사였다.

지난 2월 이씨는 “지난해 9월 마늘밭에 묻었던 김치 통에 17억 원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 7억 원이 사라졌다. 어디 갔는지 아느냐”며 안씨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씨는 안씨에게 수시로 다가가 돈의 출처를 물어보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아예 “그 돈은 조폭의 돈”이라는 말로 협박하기도 했다. 시달림을 견디다 못한 안씨는 지난 8일 경찰에 이씨를 신고했다.

안씨는 “이씨가 나를 7억 원을 훔쳐간 범인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적이 없고 억울하다”며 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안씨의 신고로 말미암아 경찰은 조사를 시작했고 ‘마늘밭 검은돈’의 실체는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안씨의 신고를 받은 날부터 김제 경찰서는 이씨를 조사했다.

경찰은 이씨에게 “17억 원 중 7억 원이 없어졌다는 게, 무슨 말이냐”라고 물으며 자금의 유무와 출저를 추궁했다.

이에 이씨는 당황했고 경찰의 질문에 횡성수설 했다. 묻어 뒀던 돈이 본래 17억 원이 아니라 27억 원이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씨 증언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밭 인근을 뒤졌고 마늘 쓰레기 뭉치에서 비닐로 싸인 통을 발견했다. 그 통에는 3억 원이 들어었있다. 3억 원의 발견으로 이씨가 처음 말했던 7억 원의 실마리는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경찰은 돈의 출저가 의심돼 이씨를 재차 심문했고 이씨는 그 돈이 범죄 수익금이라고 자백했다. 결국 이씨는 지난 9일 범죄수익 은닉죄로 체포됐다.

하지만 이씨는 “3억 원이 발견된 장소에 대해선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먼저 3억 원과 이씨의 증언이 일치 하지 않은 점을 놓고 추가 뭉칫돈 은닉여부를 수사 했다. 초반 수사 대상은 이씨의 가족들이었다.

경찰은 이씨를 체포한 지 몇 시간 만에 이씨의 아들을 찾아가 심문했고 승용차에 있던 11억9900만 원을 압수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3억 원을 발견했던 장소 부근의 마늘밭을 파헤쳐 10억 원을 발견했다. 이씨 아파트를 조사해 금고에서 발견한 1억1500만 원까지 합치자 24억 원까지 늘어났다.


첫 째 처남 체포하면 자금 실체 드러날 듯

그러던 중 경찰은 이씨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이들의 매형이라는 점까지 알아냈다. 때문에 마늘밭 수사는 더 강화됐다. 이씨 처남들의 도박수익자금을 매형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10일 경찰은 이씨의 마늘밭을 압수수색했다. 굴삭기 2대를 동원해 파헤쳤다. 이때 추가적으로 입수한 금액은 86억6000만 원이었고 지난 8일부터 압수한 금액을 합치면 총 110억7800만 원에 달했다. 경찰은 이 자금을 처남들의 불법도박수익 자금이었던 170억 원의 일부로 파악했다.

1차 불법도박자금은 모두 거둬들였지만 경찰은 이후 수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나머지 60억 원과 첫째 처남의 실마리가 아직 잡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애초의 자금이 170억 원인 것도 더 조사해 봐야 알 일이고 남은 자금이 60억 원이 아닐 수 있다”고 밝혔다. 수십 명에 달하는 처남들의 불법 도박 사이트는 직원들만 수십 명에 달해 상당수가 관리비로 빠져나갔을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경찰은 나머지 자금의 행방을 알기 위해 첫째 처남에 대해 수사망을 넓히고 있다. 도피 잠적 중인 첫째 처남이 나머지 60억 원을 생활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은 이씨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수사, 5만 원권 22만여 장에 묻어있는 지문을 감식, 이씨 아파트의 지난해 CCTV 수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출소를 앞둔 둘째 처남을 상대로도 나머지 자금과 첫째 처남의 행방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한편 경찰은 이씨가 수차례 국제전화를 한 점 등을 미뤄 첫째 처남이 외국에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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