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순찰대 호위 받으며 모델 동원해 원정 접대 받아

지난해 4월 MBC PD수첩을 통해 ‘스폰서 검사’ 의혹을 폭로한 정용재(53)씨가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이라는 책을 발간, 파문이 일고 있다. 정씨는 이 책에서 전·현직 검사들의 실명과 함께 술 접대·성 접대·촌지 등 검사 접대 관행과 내역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스폰서 검사’의혹 보도 당시 실명이 공개된 검사 외에도 50여명의 검사 실명을 적시해 놓아 법적 대응과 공방이 예상된다. 내용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검찰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스폰서 검사 의혹이 폭로된 이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다. 이후 검찰은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특검이 수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정씨는 전·현직 검사 100여명의 비리 의혹에 대해 진술했다.

스폰서 검사 특검 결과 뇌물수수·직무유기로 기소된 4명 외에는 모두 내사종결 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기소된 검사들도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돼 기소된 4명 전원 면죄부를 받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 생각

정씨는 이 책에서 폭로와 제보 이후 검찰로 인해 개인적으로 무너지고 삶 자체가 파탄에 이르렀으며, 처자식·어머님·형제 등 모두에게 가해지는 검찰의 보복에 정말 몸서리가 쳐지고 치가 떨린다고 토로했다. 이 책 제 1장에서 “폭로 이후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며 지냈다. 내가 지금까지 수백 명의 검사를 겪어왔지만 이렇게까지 야비하고 치졸하게 보복을 가할 줄은 몰랐다”며 “공익 제보라는 게 힘들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검찰을 상대로 하는 제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또 “지금 이 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내 주변 인물 누구를 겁박하고 있을지, 나를 옭아매기 위해 어떤 공작을 펼치고 있을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정씨는 20대이던 1980년대 중반부터 49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설회사를 경영하게 됐다. 정씨는 건설회사를 경영하면서 검찰이 위촉한 소년선도위원과 갱생보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와 더불어 향응 접대 자리를 만드는 등 진주와 부산 등 경남지역에 부임한 검사들의 스폰서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정씨는 검사들을 접대한 배경에 대해 “검찰에 보험을 든다는 생각도 했고 배경도 필요했다. 검사들이 으레 스폰을 요구하니까 안 해줄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정씨는 폭로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06년경 울산에서 황당하고 무리한 한건주의식 검찰수사에 말려들었다. 배신감과 분노감이 폭로의 계기였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동안 나름대로 검찰세계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자부해온 나조차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속수무책으로 똘똘 말리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검찰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오죽할까 싶었다”고 했다.

정씨는 이 책에서 스폰서 검사들에게 건넨 금품의 액수와 일시, 장소 등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촌지 건네

정씨는 한 달에 두 번씩 검사들에게 촌지를 지속적으로 건넸다고 주장했다. 지청장 100만 원, 평검사 30만 원, 사무과장 30만 원, 계장 10만 원을 비롯해 지청장 부속 소속 여직원, 각 검사 여직원, 전화교환원에게도 10만 원씩 제공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청을 떠나는 검사들에게 우선 전별금으로 30만~50만 원을 건넸고, 카페 등 술집 외상값도 다 갚아주었다”며 “특히 1986년부터는 평생 기억에 남으라고 금 3돈짜리 마고자 단추 두 개 한 세트를 선물했는데 검사들도 신기하니까 아주 좋아했다”고 밝혔다. 정씨에 따르면 30만 원 상당의 순금 마고자 단추 선물은 1991년까지 계속됐으며, 최소 30명의 검사들이 받았다고 한다. 정씨는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진 뒤에 그 순금 마고자 단추를 찾느라고 난리를 폈을 것이다. 명백한 증거를 찾아서 버려야 했을테니 말이다”고 비꼬아 말했다.

정씨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진주지청을 거쳐 간 검사 중 자신의 돈을 안 받아보거나 향응(술 및 성 접대) 제공을 안 받은 검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1995년 이후에는 주로 부산의 지검과 고검 검사들을 접대했으며, 부산고검은 모든 검사를, 부산 지검은 재직검사 60여 명 가운데 30명 이상을 접대했다고 주장했다. 퇴직 검사들까지 포함하면 한 번 이상 접대한 검사가 200명 이상에 이른다고 했다.


모델들 불러 원정 접대에 나서

정씨에 따르면 검사 스폰서 활동은 체육대회, 동반대회 등 행사비용을 대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당시 검사들은 갱생보호 위원 등을 맡았던 정씨에게 휴가 때나 손님이 방문했을 때 “스폰을 해 달라”고 전화를 해 왔다고 한다. 또 검사들과 회식 후 2차를 갔으며 당시 성 접대는 필수였다고 폭로했다.

정씨가 이 책에서 폭로한 성 접대 내용은 적나라하다. 검사 술자리 문화 중 바뀌지 않았던 것이 아가씨 젖가슴을 한번 적신 술이 ‘유두주’인데, 항상 술자리에서 그 행사를 했다고 꼬집어 말했다.

유독 섹스와 술을 좋아했던 K검사는 성접대를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쌍방 합의하에 자기 파트너하고 즉석 섹스를 하는 아가씨에게 2차비를 다 몰아주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K검사가 자원했고 병풍 뒤에서 아가씨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실제로 성관계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짓을 하는 광경을 병풍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우리는 박장대소 했다”고 정황을 설명했다.

정씨는 검사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촌지 수수를 당연하게 생각했을 뿐 아니라 술자리에서 낯이 뜨거울 정도로 난잡하게 놀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사들이 룸살롱 안에서 마요네즈나 고추장을 이용하여 아가씨들을 희롱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얼마나 짓궂게 놀았던지 아가씨들이 검사 방에는 들어가지를 않으려 했다”며 “내가 겪어본 바로는 검사들은 타 집단에 비해 접대 등과 관련해 ‘죄의식’이 바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델들을 불러 원정 접대에 나섰던 정황도 기술해놓았다. 모델들이 접대를 위해 부산에서 진주로 내려올 때 고속순찰대의 호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정씨에 따르면 모델들을 진주 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불렀는데, 진주에서 검사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갈 때도 고속순찰대에서 호위를 해줬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의 룸살롱으로 모델들을 불러서 놀았는데 폭탄주에 이어서 유두주도 마시고 2차(성 접대)도 갔다”고 주장했다.


인사 이동 후에도 지속적 접대 요구

정씨는 ‘스폰서 인계’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는데 “관계를 맺은 검사들이 다시 이쪽에 부임하면 자연스럽게 연락을 한다. 또 검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 이쪽으로 부임하는 검사에게 스폰서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정씨는 진주지청을 거쳐 간 검사들을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정씨는 P검사와 만나면 항상 2차로 룸살롱을 갔고 성접대도 했다고 주장했다. 검사 접대는 2009년에도 이어졌는데 2009년 5월 L검사가 카페에서 여사장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사장에게 자기 무릎에 앉으라고 했고, 뒤에서 끌어안은 뒤 가슴을 만졌다. 심지어 치마 속을 더듬자 여사장이 거부했다”며 “여사장이 몇 번이나 항의하고 하지 말라고 했지만 L검사는 막무가내였다”고 했다.

정씨는 경남 지역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접대를 받았던 검사들이 서울 인사이동 후에도 지속적으로 접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서울 지검 검사들이 토요일 비행기로 사천에 도착해 일요일에 지리산을 등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리산에서 출발이 늦어진데다 일요일이라 차량까지 밀려 비행기를 타지 못할 상황에 이르자, 모든 승객이 탑승한 후 비행기 이륙시간을 30분 이상 지연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당시 사건을 취재한 정희상(48) 기자와 구영식(41) 기자가 정씨의 구술을 정리·기술한 책이다. 정씨는 지난해 말 사기 및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복역 중이다. 저자들은 정씨가 수감상태에서도 일거수일투족이 검찰에 감시 대상이었다며 검찰의 출간 저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안동교도소로 이감되기 직전 부산구치소에 있을 때 정씨의 구속을 지휘한 부산지검 검사가 이 책 초고를 손에 넣으려고 구치소 내 정씨의 방에 들이닥쳤지만 간발의 차이로 원고를 우편으로 보낸 뒤여서 허사로 끝났다고 했다”고 밝힌 것이다.


경각심 불러일으키고자 책 펴내

이 책을 출간한 김이수 편집주간은 “스폰서 검사에 대해 특검을 실시했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물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처벌받은 검사는 단 한명도 없다. 국민들은 ‘힘 있는 사람들은 역시 다 빠져 나가는구나’란 절망감을 느꼈다”며 “검찰이 진정한 개혁의지를 가지고 처신했다면 이 책을 낼 이유가 없었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스폰서 검사라는 문제를 다시 환기시키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검사들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하면 재판 진행 과정에 따라 대응할 것이다. 어떤 검사는 실명을 밝히고 어떤 검사는 이니셜 처리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정씨가 접대한 검사들의 실명을 과감히 밝혔다”며 “실명으로 거론된 검사들 중 억울한 분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명백히 입증을 할 경우 배려해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정아씨 자전 에세이 ‘4001’과 함께 실명을 거론하는 폭로성 회고록으로 묶어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과 ‘4001’은 책의 성격이 명백히 구분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은 공익 고발 차원의 책으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4001’의 경우 팩트를 자기중심적으로 확대하거나 왜곡하면서 자기변명을 함과 동시에 타인을 공격한 의도를 가진 것이다. 그 의도가 너무 강해 사회적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면서 “이 책의 경우 정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익고발 차원의 메시지를 던진 것인데, 기자들이 탐사보도 차원에서 검증을 하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 충분한 의미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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