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왜 끊기 어려울까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영화 <베테랑>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무소불위, 안하무인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역)가 마약에 중독된 모습이 짧은 시간, 큰 화면을 가득 채운다. 차 안에서 자신의 팔에 주사기를 꽂는 조태오. 불안한 듯 몸을 떨며 말하는 그는 마약중독자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조태오가 마약 주사기 한 방에 무너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관객들의 평이 잇따르고 있다. 각종 약물, 도박, 성(性) 등 다양한 대상에 중독된 이들의 위험성을 <베테랑>이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 속 중독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 실태를 취재해 봤다.

정신적 스트레스, 충동이 그 시작
범죄로 연결되기도…치료 필요해

최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수가 2013년 7만7038명에서 2014년 7만7904명으로 전년보다 866명 증가했다. 증가폭이 크진 않지만 대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다. 알코올중독자에 대한 정부 부처 기관의 관리 및 민간 병원·전문가 등이 증가했지만, 중독자들의 수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4년 환자 7만7904명을 성별로 보면 남성이 80%(6만2560명)를 차지해 여성(1만5344명)보다 4배 더 많았다. 연령별로 보면 20세 미만이 전년대비 19.3%로 가장 많이 증가해 청소년의 알코올중독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코올중독만이 문제가 아니다. 도박, 마약, 성매매 등 불법 행위에 중독된 이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경우도 많았다. 유명인들의 도박·마약 중독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중독 증상’에 관심이 쏠렸다. 현재 마약류 관리 위반으로 모 힙합가수와 여자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중독의 심각성에 경각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독의 대상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중독 대상 다양해져

서울시 ㄱ구 모 병원에서 일하는 40대 의사 A씨.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것 없는 고소득자인 그는 고급 취미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고급 외제차를 모으는 것. A씨 부인이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는 이유다.


A씨 가족은 주택담보대출을 꾸준히 갚아야 하는 형편이다. 자가로 살고 있는 그의 집은 사실 대출을 받아 산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경제 문제는 주택담보대출만 갚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빚이 많은데 대부분 A씨의 ‘고급 취미’ 때문에 생겼다.


그의 아내는 사치품 소비를 줄이고 빚을 먼저 갚기를 원한다. 하지만 A씨의 집에는 각종 외제차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A씨가 빚을 갚는 데 돈을 먼저 쓰기보단, 할부로 외제차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인들은 A씨가 아이가 있는 집의 가장이지만, 집안 살림보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에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대부분 ‘그 정도면 중독’이라며 한 목소리로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업계 종사자인 30대 남성 B씨도 A씨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는 성매매 여성과의 하룻밤을 주기적으로 즐긴다. 자신이 버는 돈에 비해 ‘과도한 지출’을 일삼는다는 게 문제다. 억대 연봉을 버는 그에겐 다달이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이 빚은 모두 ‘성매매 여성’ 때문에 생겼다. B씨는 상위 1%만 간다는 고급 업소를 찾는다. 한 달에 기본적으로 두 번 이상 고급 업소에 간다. 이런 생활을 수년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빚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B씨는 빚만 남은 자신의 경제상황 및 생활패턴을 오히려 정당화한다. 그는 “내 꿈은 45살에 25살의 순수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라며 “그 전까지는 이렇게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주변 지인은 그의 생활과 이런 가치관에 질색을 하며 “일상생활이 영위되지 않을 정도로 특정 대상에 집착하는 수준이 일정 이상이 되면 중독이라고 하는데, B의 경우는 정말 중독 같다”고 말했다.


또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주변 사람들 중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특정 대상에 ‘중독’ 증상을 보인다”며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한 곳에 집착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도 심하다 싶으면 상담이라도 받으라고 조언한다”며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중독 증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존엔 마약, 도박, 인터넷 등에 중독된 사람들을 ‘중독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독된 대상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A, B씨의 사례 외에도 시계 등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는 데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혹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대상이나 행위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 응한 ‘몰래카메라(몰카) 중독자’의 고백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는 해당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찍을 때의 성공하는 쾌감 한 번, 또 공유하면서 내가 이런 걸 해냈다고 얻는 쾌감 한 번’ 때문에 몰카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중독의 원인으로 ‘쾌감’을 언급했는데, 많은 중독자들이 상담 치료 중 중독의 원인으로 이를 지목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여러 이성의 은밀한 부분을 몰래 촬영했다는 ‘몰카 중독자’. 그는 충동에서 시작한 몰카가 어느새 중독이 됐다며, 현재 몰카에 중독된 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또 그의 인터뷰는 중독 심각성 및 치료의 당위성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독 분야 한 전문가는 “중독의 개념은 사실 명확한 수치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특정 대상에 집착하는 등의 상태를 보이면 일반적으로 중독자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사실 돈을 주고 어떤 물건을 구매하는 등 ‘거래관계’일 경우, 기존에는 중독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최근 약물이나 도박 외에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는 등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일 때에도 중독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 전문가는 A, B씨의 경우도 ‘중독자’라고 보며 “이들의 중독 증상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거나, 가족 등 주변인들에게 물질적·심리적 피해를 과도하게 준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중독자라고 판단될 때, 전문가들은 심리 상담 치료를 권한다.
 
범죄 발생 가능성 높아
 
자신이 ‘몰카 중독자’였다고 밝힌 남성의 경우, 몰카 자체가 범죄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외제차 수집에 열광하는 A씨와 성매매 업소 여성와의 하룻밤에 중독된 B씨 모두 ‘자신의 행위가 지나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둘과 같은 업계 종사자이자 국내에 한두 개밖에 들어오지 않는 ‘억 대의 고급 시계’ 수집가 C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충동, 습관에서 시작된 자신들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점을 인식했다.


잘못 인식이 곧 절제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했던 행동을 하지 못할 경우, 중독자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범죄 행위를 벌이기도 한다. 실제 A씨의 경우, 자신의 외제차 수집을 지적하는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가 늦은 밤 경찰서에 가야 했다. 이는 가정폭력에 속한다.


최근 정신병원에 입원한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범죄 행위가 논란이 됐다. 그들은 입원 중 병원을 빠져 나와 술판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이탈이 문제가 됐던 이유는 다른 사람을 폭행하고 청와대에 폭파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관리하는 병원 측에 대한 비판도 쇄도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신병원에 입원한 중독 환자의 경우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신보건법 제23조 자의입원 규정에 의하면 중독 환자들은 병원에서 외출·외박이 자유롭다. 병원에서 환자의 퇴원 등을 제한할 수 없는 이유다. 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건도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제도의 이런 허점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에 따르면, 그들은 아침까지 술을 마신 뒤 병원에 들어가 잠을 잔 뒤 오후에 다시 술을 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 중독전문가는 “약물이나 행동 등에 중독된 사람들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며 “단기 치료만으로 중독 증상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 및 관리 기관은 중독자들의 생활에 소홀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선입견, 부실한 관리 

전문가들은 정신적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 모습 중 하나가 중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 조성남 교수는 “중독은 결국 정신건강의 문제”라며 “중독자가 주기적으로 상담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중독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 등 치료기관이 과거보다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내에선 미흡한 실정”이라며 “그들을 위한 제도 정착 및 확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지가 여러 중독자들을 만나본 결과,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정신적 문제’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또 일부 중독자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다른 몰카 중독자의 경우 처음 여성의 신체를 도촬한 계기로 ‘스트레스’를 꼽았다. 취업 스트레스와 연이은 면접 탈락을 겪던 중, 지하철에서 우연히 도촬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A씨 역시 고급 외제차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로 ‘스트레스’를 말했다. 그는 페이닥터가 된 뒤 토요일까지 출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수술 집도가 하루일과를 꽉 채운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생활이 A씨에게 스트레스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외제차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현재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상담 치료를 왜 받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중독자는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병원에 가 상담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진짜 괜찮아질까 싶기도 하다”며 상담 치료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정신 건강을 위한 상담 치료는 결국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치료를 받다 도중에 그만두는 중독 환자들이 꽤 되는데, 그렇게 치료를 하면 효과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심평원 심사평가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알코올 사용 장애로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 중 1개월 이내에 병원을 재방문한 환자는 17.9%였다. 이후 2개월째 된 환자는 8.7%, 3개월째 5.7%로 개월이 지날수록 재방문한 환자의 수치 감소 폭이 컸다. 5명 중 1명의 환자만이 퇴원 후 치료를 계속한 셈이다.


조 교수는 “실제 중독자들을 상담 치료를 해보면, 그들이 병원에 오는 걸 꺼리긴 한다”며 심평연 자료에 신빙성을 더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주위 인식을 신경 쓰는 데다, 자신들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익명의 신종 마약 중독자는 실제로 올해 모 병원에서 상담 치료를 받았다. 해당 병원 간판엔 ‘중독’이란 표현이 들어가지 않아 심리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를 포기했다. 병원에 다닌다는 소문이 회사 내에 퍼진 것이다. 회사 내 한 직원이 우연히 이 중독자가 병원에 오가는 것을 목격했고, 이후 말이 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중독자는 해당 병원을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 정신 상담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한국 내에선 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며 “특히 마약에 중독됐던 과거가 탄로 나기라도 하면 회사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독 재활을 중점적으로 치료하는 한 병원에서 만난 다수 중독 환자들의 반응과 외견은 비슷했다. 모르는 사람이 대기실에 있을 경우, 간호사와의 대화를 꺼린다.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등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들 중 한 남성은 “누구나 무언가에 중독될 수 있기에 중독자를 보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그런 선입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독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가운데, 중독자들의 재활을 돕는 치료 기관 역시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기관에 대한 지원 및 확대를 말하며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에 좀 더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중독범죄 및 중독치료 관련 기관의 역할 및 중독자들을 상대로 한 관리도 현행보다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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