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정 : 더 비기닝’을 통해 본 탐정업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신직업 육성 추진 계획’에 ‘사립탐정’으로 불리는 ‘민간조사원’(Private investigator)을 포함시켜 육성·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조사원 합법화에 맞춰 교육과정과 자격시험을 도입할 계획이다. 민간조사원 자격시험은 단계를 거쳐 엄격하게 실시하고,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결격사유를 검증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을 뿐 국회에서 아직까지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해 탐정 관련 서비스가 전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지난해 신직업으로 육성·지원 발표
국회서 좌절된 ‘탐정법’, 10여 년간 논의만 무성


지난 24일 영화‘탐정 : 더 비기닝’(감독 김정훈, 제작 (주)크리스픽쳐스,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2006년‘제8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당선작으로, 탐정물을 표방한 코믹범죄추리극이다. 프로파일링 동호회장 출신으로 미제사건 카페를 운영하는 강대만(권상우 분)은 현실에서 친구 준수가 일하는 경찰서 강력팀을 기웃거리다가 쫓겨나고 아내의 잔소리 폭탄을 맞으며 사는‘찌질한 남자’다.


한때 화려한 경력으로‘광역수사대 식인상어’로 통했으나 밀려난 형사 노태수(성동일 분)의 눈에도 대만은 한 마리‘똥파리’일 뿐이다.


어느날 대만은 준수와 친한 형의 부인이 살해당하고 준수가 용의자로 몰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준수의 결백을 믿는 대만과 태수는 비공식 합동 작전에 나선다. 마음은 한국의 셜록 홈즈지만, 몸은 무릎 조건반사도 안 되는 남자, 화려한 과거와 자존심만 남은 남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뭉쳤다가 갈수록 그럴 듯한 시너지효과를 낸다. 영화‘탐정 : 더 비기닝’처럼 만약 현실에서 사립탐정이 활동한다면 장기미제사건이 해결되고 강력범죄가 줄어들까. 한 금융공기업이 2007년 이후 해외 탐정을 고용해 해외 은닉자산 5910만 달러(689억 원 상당)을 찾아낸 성공사례가 있다. 회수를 완료한 금액은 1390만 달러였으며, 탐정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회수금액 대비 0.5%, 소송 과정에서 변호사들에게 지급한 수수료는 회수금액의 10.7%(149만 달러)였다.


이같이 예금보험공사(이후 ‘예보’로 지칭)가 최근 해외 탐정들에게 9000만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예보가 탐정들에게 지급한 돈은 2007년 6월 이후 올해 7월까지 140회에 걸쳐 7만6357달러(8900만 원 상당)에 달했다.


예보 관계자는“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를 파산시킨 주범들의 해외 은닉자산을 찾아내기 위해 해외 사설 탐정을 고용했다”고 밝혔다.


예보는 부실 금융사가 파산했을 때 예금보험금을 지급하고, 해당 금융사를 정리하거나 부실 관련자에게 책임을 추궁해 자금을 회수하는 역할을 맡는 회사다.


중앙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금융사에 의뢰해 이들 부실 책임자가 보유한 부동산과 예·적금, 보험금, 주식 등을 찾아내 압류나 가처분 등을 통해 투입된 자금을 회수한다. 문제는 부실 책임자들이 이런 추적을 회피하고자 해외에 숨기는 자금이 늘어나면서부터 생긴다. 국내에선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금융사 시스템을 통해 보유 재산이 추적되지만 해외에선 이런 방식이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보는 숨긴 자금을 찾아내기 위해 부실 책임자의 출입국 기록이나 재외국민등록내역, 해외송금 내역을 조회한다. 이를 통해 해외 은닉 정황이 나타나면 해당국가의 탐정을 고용해 은닉 자산을 찾아낸다.


국내와 달리 상당수 국가에서 탐정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공인된 직업이지만 이들에 대한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33개국이 탐정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 속 탐정 ‘셜록 홈즈’로 유명한 탐정의 원조국가 영국은 역설적으로 2000년대 들어 탐정의 역할을 제한했다. 2001년 영국은 자유롭게 개설할 수 있었던 탐정 사무소 운영을 국가기관이 자격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영국의 탐정자격증 발급기관인‘경비산업공사(SIA)’는 탐정의 숫자를 제한했으며, 2003년 이후 탐정 총원이 단 한 명도 늘지 않았다.


사립탐정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은 민간조사업 활동에 관대한 편이다. 변호사사무소와 보험회사 등과 함께 의뢰인 관계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문 탐정이나 사설 경비업체 등 형태도 다양하다.
탐정소설이 발달한 일본은 의외로 ‘탐정’이란 직업이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다.


2007년 6월 관련 기관이 만들어진 이후에 정부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위법 활동을 할 수 없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최소한의 정당방위권만 주어진다.


이와 상대적으로 국내 사립탐정(민간조사원)은 그동안 관련 법안이 없는 탓에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심부름센터나 흥신소 등의 상호를 걸고 개인의 뒷조사를 하거나, 부부 간의 불륜 증거를 수집하는 등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립탐정에 대한 논의는 1998년 15대 국회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하순봉 의원(한나라당)은‘공인탐정에 대한 법률’을 입법 추진했지만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 이상배 의원(한나라당)과 최재천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민간조사법안’이 다시 등장했고, 18대 국회에서도 경찰 수사과장 출신인 이인기 의원(한나라당)과 강성천 의원(한나라당)이 민간조사원 합법화에 관한 개정법률안과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들은 관련 부처 간 의견차가 심해 법제화되지 못했다.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신인 윤재옥 의원(새누리당)과 국군기무사령관 출신인 송영근 의원(새누리당)이 발의한 법안 두 건이 제출돼 있다. 지난해 정부는“탐정의 자격과 업무범위 등에 대한 근거를 입법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4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탐정의 육성은 국무조정실, 법무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추진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탐정업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논리다. 그러나 10여년간 논의만 무성했을 뿐 아직까지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해 탐정 관련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로‘공인탐정 민간조사원 가이드’를 출간한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송하성 교수(한국공공정책학회 회장)는 사립탐정의 합법화에 대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과 검찰은 나설 수가 없어 사건 기록을 열람해 해결해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며“경찰의 만성적인 수사인력 부족을 해결해줄 방안인 동시에 전국의 경찰 관련 학과 졸업생 약 1만7000여 명을 위한 신규 일자리 창출, 은퇴한 경찰관들에게 재취업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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