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봉 뒷돈 받은 경찰간부들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최근‘함바(건설현장 식당) 브로커’유상봉 씨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2010년 이래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했던 유 씨는 집행유예로 석방된 틈을 타 전직 경찰간부와 고위공직자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4년 만에 또’… 들끓는 함바비리
경찰간부들은 왜 유 씨의 덫에 걸렸나?


소위 권력형 비리를 일컫는‘게이트(Gate)’에는 언제나 거물 브로커가 연결돼 있다. 이들 거물 브로커는 권력의 실세나 최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민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챙겨왔다.


세간에 알려진 거물 브로커로는‘최규선 게이트’로 알려진 최규선 씨가 유명하다. 김대중 정부 당시 최 씨는 여권 실세와 친분을 과시하며 권력에 줄을 대려는 관료·정치인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전횡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5년에는 법조 브로커 사건인‘윤상림 게이트’가 터졌다.


고졸 출신의 브로커인 윤 씨가 검찰과 군은 물론 정치권과 친분을 과시하며 사기, 공갈, 알선수재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윤 씨는 국회의원은 물론 경찰 최고위층과 현직 판사에 이르기까지 정·관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을 자랑했으며, 당시 검찰은 총 58건의 범죄 사실에 대해 기소할 정도로 그가 저지른 범죄와 청탁 대상은 광범위했다.


이른바 ‘함바(건설현장 식당) 브로커’ 유상봉(69·구속기소)씨도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최근 유 씨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2010년 이래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했던 유 씨는 집행유예로 석방된 틈을 타 전직 경찰 간부와 고위공직자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심재철 부장검사)는 17일 ‘함바 브로커’ 유 씨에게서 뒷 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 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전직 경찰 총경 S(64)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S씨는 작년 유 씨로부터 “공사 현장의 식당 운영권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다. 그는 S씨의 경찰 인맥을 등에 업고 사업상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대영(59) 부산환경공단 이사장에 대해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김도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오전 허 이사장을 상대로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18일 오전“금품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갈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허 이사장은 부산시 도시개발본부장으로 근무하던 작년 2∼5월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알아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브로커 유 씨에게서 10여 차례에 걸쳐 9천여만 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지난 8월 허 이사장의 집과 공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구속해야 할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24일 허 이사장과 유 씨에 대해 각각 뇌물과 알선뇌물수수,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검찰은 작년 4∼6월 유 씨로부터 8천800만 원을 받아 챙긴 전직 경찰 총경 J(60)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 이승규 영장전담 판사는 “범죄사실의 주요 부분에 대한 소명이 있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유 씨가 국무총리실에 장기간 파견 근무 경력이 있는 J씨의 인맥을 이용해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따내려 한 것으로 보고 금품을 받은 공무원이 더 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 씨는 2013년 9월 9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작년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같은해 7월 사기 혐의로 다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5개월 남짓 석방된 사이 범행을 반복한 셈이다.


유 씨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최영 강원랜드 사장, 경찰 출신인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에게 함바 수주나 민원 해결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2010년 11월 구속기소됐다. 이듬해 12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사이 또 사기행각을 벌였다가 출소 이후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유 씨는 카멜레온이었다. 알려진 이름만 3개, 직업은 상대에 따라 종횡무진 바꿨다. 그는 회사 5∼6곳의 대표 직함이 박힌 명함과 끝자리가 다른 ‘유상준’, ‘유상균’ 등 가명을 번갈아 사용해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주변에선 잘 나가는 60대 노신사로 기억하는 유 씨가 실은 이중, 삼중 생활을 하며 경찰간부, 정치인, 고위공직자, 공·사 기업체 임직원, 광역단체장 등에게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살포해 마당발 인맥을 쌓아왔다. 향우회 등 고향을 활용한 호남 출신 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유지한 게 유 씨 인맥의 원천이었다.
그는 평소‘형님 동생’으로 다진 인맥을 통해 건설사로부터 함바 운영권을 따낸 뒤 그의 매제와 처남 등 가족을 포함한 수십명의 2차 브로커에게 이를 팔았다. 2차 브로커는 실제 함바를 운영할 업자들에게 운영권을 다시 파는 형태로 사업을 해왔다. 그들은 억대의 알선료를 내고도 운영권은 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2010년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본명이 유상봉임을 세상에 고한 유 씨는 이같은 교묘한 사기 행각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휴대전화(대포폰)를 무려 13개나 사용했다. 이름과 직업을 수시로 바꾼 탓에 사건에 연루됐던 당사자들조차 그가 누구인지 헷갈렸을 정도였다. 


정·관계에선 그를 ‘유상준’으로 불렀다. 법적으로 본명을 사용하도록 돼 있는 정치후원금을 낼 때조차 그는 유상준이란 이름을 썼다. 유 씨가 후원금 500만 원을 낸 민주당 조영택 전 의원 후원회 은행계좌에도 입금자가 유상준으로 찍혀 있었다.


유 씨의 금품 로비는 기부금 등 선의로 포장돼 이뤄졌다. 유 씨는 2008년 7월 자신의 아들 명의로 설립한 ㈜원진씨엔씨 대표이사 유상준 명의로 경남 통영시의 문화예술단체에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급식업체와 고속도로 휴게소 몇 곳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통영시청 관계자는 “한 노신사가 아무 조건 없이 1억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고, 중소기업의 선행으로 알려져 지역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경찰에서 유 씨는‘유상균’으로 통했다. 그의 가명에 경찰도 감쪽같이 속았다. 한 경찰간부는“유상균이 당시 캄보디아에서 주택사업을 하고 있고 1년에 한두 차례 국내에 들어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또 건설업체 사장 등을 만날 때는 ‘어깨’ 같은 사람 여러 명을 데리고 다녔던 것으로 알렸다.


2차 브로커들 중에는 실명이 아닌‘유 회장’, ‘유 영감’ 등으로 그를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유 씨는 금품을 거부하는 경찰에겐 직접 찾아가서 책상에 돈 봉투를 두고 사라지는 식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거나, 경찰 간부에겐 룸살롱 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간부는 “2009년 유 씨가 모 인사의 소개로 찾아온 뒤 현금 200만 원을 책상 위에 놓고 가 되돌려 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현찰 꺼리면 상품권 등 맞춤형 로비”

유 씨와 10여 년 이상 거래 관계를 가져왔다는 L씨는 “유 씨가 현금 말고도 상품권, 명품시계, 고급만년필 등 다양한 형태의 뇌물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고 말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유 씨는 함바 운영권을 따기 위해 사전에 전·현직 경찰 간부와 정·관계 인사, 공기업 사장 등 로비 대상 인물들이 선호하는‘입맛에 맞게’ 뇌물 목록을 정한 뒤 명품시계와 같은 고가의 선물 및 수억 원 상당의 상품권 등을 가지고 로비를 벌여왔다고 밝혔다.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했던 유 씨는 자신의 친·인척 등에 통해 서울과 부산, 대전 등 대규모 건설현장이 밀집한 도심지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총경 이상 경찰간부와 고위공직자 등의 로비 성향을 분석해 현금 뭉칫돈을 건네는가 하면, 향후 계좌추적 등 ‘뒤탈’을 우려한 정·관계 인사들에게는 설과 추석 등 명절에 맞춰 2∼3억 원대의 상품권을 수천∼수만 장을 구입해 로비를 벌여왔다.


 유 씨가 친분이 깊은 인사는 직접 만나서 선물 등을 전달하고, 그 밖의 유력 인사 등에게는 친·인척 등을 동원해 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L씨는 “높으신 분들은 현찰을 주면 안 받는다. 그래서 명절에는 2∼3억 원어치 상품권을 준비해 경찰간부와 고위공직자, 공기업 사장과 건설사 임직원 등에게 무조건 선물 공세를 한다는 말을 유 씨 최측근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유 씨의 또 다른 주변인물인 P씨는 “유 씨는 운영권을 따낼 수 있는 제일 힘 센 사람을 찾아 로비를 했다”며 “청와대도 별도로 관리하고 다닌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면서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민원을 재빠르게 해결했고, 통이 커서 건설회사 직원들에게도 선물을 많이했다”고 말했다. 

로비의 집중 타깃 왜 경찰로 정했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 씨가 그동안 로비의 집중타깃을 왜 경찰로 정했는지 등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4일 건설현장식당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 씨가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경찰고위직들을 집중적인 로비대상으로 삼은 것은 건설 공사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소위 ‘어깨’들의 실력행사를 막을 수 있는 경찰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건설현장식당업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특별한 인·허가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도 꼽았다. 최근 유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P씨는 “건설현장의 식당 운영권은 사업 시행 과정에서 인·허가권이 필요하지 않아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며 “각종 민원 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을 경찰로 보고 이들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소인 M씨는 “특히 건설현장은 특성상 지역의 ‘어깨’들이 판치는 곳이기 때문에 경찰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유 씨, 고위직이 연결해주면 서장실 찾아 청탁
         
희대의 사기꾼 유 씨의 기상천외한 로비 수법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로비는 대담하고 치밀했다. 유 씨는 이미 안면을 튼 경찰간부를 통해 다른 경찰간부를 소개받는 등 광범위하게 인맥을 관리해왔다. 경찰들에게는 평소 용돈을 하라며 찔러주는 등 호감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초 A경찰서 서장실. 당시 서장이던 K서장은 경찰청장인 G씨로부터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찾아갈 테니 한 번 만나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서장실로 찾아온 사람이 바로 브로커 유 씨였다. G 전 청장과 친분이 두텁다고 강조한 유 씨는 관내 한 건설현장의 함바 운영권을 따내고자 K서장에게 현장소장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3년이 지난 2009년 여름에도 유 씨는 K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K서장은 B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유 씨는 대뜸 관내에 모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소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탁을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유 씨는 K서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G 전 청장을 만나러 가는데 부탁할 게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충남지방경찰청의 Y총경도 이와 비슷하게 유 씨와 만났다. D경찰서장으로 있던 2006년 당시 경찰청 차장이던 G 전 청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뒤 유 씨가 서장실에 찾아와 H제철 건설현장의 함바 운영권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K서장과 Y총경이 유 씨와 접촉한 내용은 지난 2011년 1월 11일 경찰청이 전국의 총경 이상 간부들로부터 취합한 ‘유 씨 접촉여부 자진신고서’에 담겨 있다.


K서장과 Y총경뿐 아니라 유 씨와 접촉한 사실을 시인한 간부들은 모두 “(유 씨와) 만나기는 했지만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사실은 절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이 자진신고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유 씨는 G 전 청장과 꽤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셈이다. 또 이런 관계를 이용해 건설현장이 있는 곳의 서장과 만나 함바 운영권을 따내려 시도했다.


더구나 유 씨는 자신이 접촉하는 경찰서장들에게 G 전 청장을 통해 승진문제 등 그들의 개인 민원 해결을 약속하며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K서장은 “유 씨가 G 전 청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부탁할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승진 부탁이라도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Y총경도 당시 자신이 감찰 조사가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유 씨가 알고 G 전 청장에게 말해 잘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G 전 청장과 친분을 내세워 경찰서장들을 쥐락펴락한 여러 정황을 볼 때 유 씨가 접촉한 경찰서장은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 유 씨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이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유 씨를 만났다고 자진신고한 전국의 총경 이상 간부 41명 가운데 유 씨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고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 씨를 안다고 자진신고한 이들은 모두 돈을 받지 않은 사람들일까. 이처럼 유 씨의 ‘검은돈’을 받은 사람이 굳이 자진신고를 할 까닭이 없는 만큼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유 씨의 돈을 받고 청탁을 해결해준 경찰간부들을 더 찾아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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