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울요(尉?)가 쓴 병법서 ≪울요자(尉?子)≫와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는 ‘천금불사 백금불형(千金不死 百金不刑)’이라는 구절이 있다. 즉, 천금을 뇌물로 바치면 죽은 목숨도 살리고, 백금을 주면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뇌물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는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배고파서 빵을 훔친 죄로 19년을 살아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우리 국민의 80% 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뇌물의 대명사가 된 ‘천금불사 백금불형’과 대한민국 사법불신의 대명사가 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맷 타이비는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라는 저서에서 가난이 죄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을 해부했다. 조직적인 사기로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은 경미한 질서교란 행위 때문에 감옥에 가는 현실을 대비시켰다.

더 늦기 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권력무죄 서민유죄’인 일그러진 우리 사회 시스템을 바로 잡아야 한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법치주의는 서서히 퇴색하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팽배해지고 실패한 자·가난한 자·약한 자를 범죄자로 가두고, 성공한 자·부유한 자·강한 자의 위법 행위는 눈감아 주는 ‘정의 상실’의 사회가 되면 그 공동체는 존립이 도전받을 수 있다.

전관예우는 전관비리다. 공동체를 해체시킬 수 있는 심각한 ‘사회 병폐’요, 사법 신뢰를 깎아먹는 ‘원흉’이기도 하다. 돈 많은 의뢰인과 전관 변호사가 결탁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면 이 땅의 사법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사법부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최근 집권당 김무성 대표의 사위 이모 씨에 대한 판결을 두고 여론이 분분하다. 중독성이 강한 코카인, 필로폰, 엑스터시, 대마초, 스파이스 등 구할 수 있는 마약은 모두 구한 그는 2011년 12월부터 작년 6월까지 무려 2년 6개월 동안 서울 강남의 클럽이나 강원도 리조트, 자신의 승용차 등에서 15회에 걸쳐 마약을 투약했다 한다.

구속기소 되었으나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60시간과 40시간의 약물치료 수강명령이 내려졌다. 이를 두고 초범이지만 상습범으로 보이는 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전관예우’가 적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사위 이모 씨에 대한 판결은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상당수는 그가 집권당 대표의 사위가 아니었어도, 그의 변호인이 전관이 아니었어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겠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의 최교일 변호사는 선임계를 내지 않은 채 ‘몰래 변론을 해왔다’는 의혹에 휘말려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관예우를 노린 이모 씨와 총선 공천(경북 영주시)을 원하는 최 변호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할까. 당시 수사를 맡았던 서울동부지검 간부는 최 변호사와 함께 근무했던 이력이 있고, 재판이 열린 서울동부지법의 법원장은 최 변호사와 고교 동문이기 때문이다.

왼손에는 평등의 저울과 오른손에는 양날의 칼을 들고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동상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등의 저울’은 합당한 처벌을 할 것을, ‘양날의 칼’은 심판권을 남용하지 말 것을, ‘눈가리개’는 공정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돈의 논리에 붙잡혀 강자의 논리에 충실히 봉사하는 법률가들에게 최근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마스크를 쓰고 정체를 공개하지 않은 채 노래 실력을 뽐내는 ‘복면가왕’ 프로 시청을 권한다. 대법관·헌법재판소 재판관·법무부 장관·검찰 총장 등 퇴직 고위공직자의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전관예우 방지 관련 법률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성공과 부만을 중시하고 실패와 가난을 무시하는 세태가 변해야 공동체가 건강해 진다. ‘부자에게는 죄값이 껌값이지만 서민에게는 목숨값’이라는 푸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회가 국민이 행복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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