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장에 팔려간 지적장애인


[최은서 기자]= 생활정보지에 과대광고를 내 수십 명의 남성들을 유인, 서해안 일대 양식장에 팔아넘긴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일당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이른바 ‘노예각서’를 강제로 쓰게 한 뒤 남성들을 외딴 섬 양식장에 매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지난해 8월부터 서해안 낙도 지역 어선과 양식장에 넘긴 사람은 모두 29명. 이중 전남 군산시의 한 김양식장에 넘겨졌던 지적장애인 이모(27)씨는 중노동에 시달리다 양식업자에게 호소해 가족에게로 무사히 돌아갔다. 이들 일당의 꼬임에 빠져 낙도에 인신매매 당한 이씨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 봤다.

이씨는 특별한 이유 없이 자주 가출을 했다. 판단력이 부족한데다 이씨를 돌봐줄 수 없을 정도로 가정환경이 열악했던 탓이다. 이씨는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지능(8.8세·IQ 68)을 가진 지적장애자다. 이씨는 가출 후 숙식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선원이던 이씨 아버지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씨와 함께 직업소개소를 찾아가던 기억 때문이었다. 이씨는 직업소개소를 가면 돈도 받고 숙식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여겼다.

지난해 10월, 또 다시 가출한 이씨는 부산의 한 생활정보지에서 ‘월수입 150~300만 원 보장, 숙식제공’이라는 광고를 보고 부산 구포역 부근의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단돈 150만 원에 팔려가

이씨가 찾아간 직업소개소는 박모(44)씨가 타인명의를 빌려 등록한 불법 유료직업소개소였다. 직업을 구하려고 하는 이씨에게 박씨는 “돈 벌면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 있다”며 꾀어냈다. 가출로 가진 돈이 모두 떨어진데다 묵을 곳도 없었던 이씨는 박씨의 회유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씨의 꼬임에 빠진 이씨는 전남 진도군의 한 낙도 양식장에 가게 됐다. 하지만 양식장 업주가 이씨의 지적장애를 문제 삼아 거절하자 이씨는 박씨의 손에 끌려 부산으로 갔다.

박씨는 부산에 도착한 이씨에게 노예각서를 강제로 작성하게 했다. 이씨는 서툰 맞춤법으로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겠다. 열심히 일하고 사장님이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경찰서에 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직접 적고 이름을 쓴 후 지장을 찍었다.

또 다시 이씨가 끌려간 곳은 전북 군산시의 낙도. 하루 단 한 편의 배만 오가는 외딴 섬이었다. 이씨는 단돈 150만 원에 낙도의 한 김 양식장에 팔아 넘겨졌다. 박씨는 이씨가 빚이 있는 것처럼 꾸며 급여에서 공제하는 수법으로 돈을 갈취했다.

양식장에 팔린 이씨는 낙도 김 양식장 인부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하지만 이씨는 수일간 배를 타는 등 중노동을 해야 하는 환경을 견디다 못해 3차례나 탈출을 시도했다.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에 숙소를 빠져나갔지만 섬인데다 교통수단이 마땅히 없어 번번이 실패했다. 더구나 이씨는 배타는 곳을 찾지 못할 정도로 지적능력이 떨어졌다.


‘아빠 보고싶다’ 호소

뒤늦게 이씨가 지적능력이 떨어지고 새벽마다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양식장 업주는 이씨를 불렀다. 양식장 업주가 새벽마다 숙소를 빠져나가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배가 보이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아빠가 너무 보고싶다”고 호소했다. 이씨가 낮은 지적능력 때문에 혼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양식장 업주는 이씨의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결국 이씨는 35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선원인 이씨 아버지는 한 달에 5일 정도만 집에 머물러 이씨의 가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이씨가 갈 만 한 곳을 수소문 하던 차에 양식장 업주에게서 연락이 와 이씨를 찾을 수 있었다. 아들과 재회한 이씨 아버지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찰조사에서 박씨는 “이씨가 지적장애인인지 눈치 채지 못했고 노숙자인 줄 알았다”며 “각서도 이씨가 직접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조사결과 박씨는 생활정보지에 과대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온 39명의 남성을 한 사람에 100만~150만 원씩 받고 소형 어선이나 서해안 낙도 양식장 등지에 팔아넘겨 3900만 원의 부당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장부에 팔아넘긴 남성들의 인적사항, 받은 돈 을 빼곡히 기록해두는 것은 물론 보낸 곳을 지도에 표시까지 해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관계자는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지적장애인을 영리도구로 삼은 박씨의 비인간적인 범행은 결코 용서될 수 없다”며 “빚을 진 상태에서 인권이 멸시당하는 유사사례가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전국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