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추석명절을 전후해 박근혜 대통령 다음으로 여의도 호사가 입방아에 자주 오른 인물이 둘 있다. 한 명은 ‘마약사위’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였고 또 다른 인사는 박 대통령의 유엔방문 중 동행하다시피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었다. 김 대표는 여당 내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고 반 총장은 여야를 통틀어 잠룡군 중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경쟁자다. 관건은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의 의중이 김 대표보다는 반 총장에게 가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면서부터다. 이럴 경우 차기 대선판은 더욱 더 안갯속일 수밖에 없다. 임기반환점을 돈 박 대통령은 임기말 권력누수를 경계해야 하고 그 첫 번째 착수는 여당내 차기대선 후보 관리임에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박 대통령 발 다시 부상하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을 심층 취재했다.

- 3박4일 7차례 만남 20분 비공개 면담 화두는…
- 대통령 ‘의중’읽은 친박 ‘반기문 대망론’ 재점화

<뉴시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망론’은 늘 존재했다. 하지만 ‘세계대통령’이라는 중차대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기문 대망론’은 국익적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침묵의 카르텔로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자제해왔다. 그러던 중 작년 중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반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군에 포함시켜 조사를 해 1위를 차지하면서 ‘반기문 대망론’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여야 의원들이 반 총장을 의도적으로 띄우면서 군불을 때기도 했다. 그러나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고 더 나아가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빼달라’는 요청도 했다.

게다가 올해 5월달 1년 9개월 만에 한국 방문을 할 당시에는 충청권 출신 기업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자살사건으로 국내 정치 상황이 어수선한 가운데 반 총장 친동생 반기상씨가 경남기업에 상임고문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반 총장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특히나 한국방문과 더불어 야심차게 준비했던 북한 개성공단 방문도 북측의 갑작스런 취소로 무산돼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면도 상했다. 이로 인해 반 총장의 대망론도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고 여야 정치권에서 관심도 멀어졌다.

청와대 발 대권플랜 vs 김무성 견제카드용

잠잠하던 ‘반기문 대망론’이 재부상한 것은 여의도가 아닌 청와대 발로 터져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을 전후로 뉴욕에 소재한 유엔을 3박4일 방문하면서 반 총장을 7차례나 만나고 유엔 방문 첫날에는 20분간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특히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유엔 무대에서 ‘찰떡호흡’을 자랑하면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 김무성 당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청와대 발 대권 플랜B’가 가동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유엔 방문 첫날 반 총장과 만찬을 가지면서 “북한이 핵에 대한 집착과 소극적인 대화 태도를 버리고 남북대화에 호응하고 평화통일의 길로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하자 반 총장은 “북한이 앞으로 도발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대화의 길로 나올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특히 반 총장은 ‘8.25 남북합의’에 대해서 “박 대통령의 끈기와 원칙에 입각한 남북대화로 고위급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높이 평가했다.

두 번째날인 9월 26일에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이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새마을 운동과 관련해 “제가 살던 마을과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박 대통령의 노력으로 새마을 운동을 개도국에 소개하고 공유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서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새마을운동이 회원국에 도입되고 실행되고 있어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찬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반 총장은 “맨해튼 중심에서 새마을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거나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는 말도 해 박 대통령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답변도 얻어냈다.

유엔무대에서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서로 챙기는 모습은 당장 반 총장의 ‘대망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때마침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SBS_TNS 성인남녀 1000명 대상)에서 반 총장은 21.1%의 지지율을 얻어 김무성 대표(14.1%)와 새정치민주여합 문재인 대표(11.2%)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의 측면지원에 따른 반 총장의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반 총장이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10월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그런 후보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반기문 대망론’에 힘을 실었다. 사실상 ‘국민공천제’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있던 김 대표를 겨냥한 친박 진영의 ‘김무성 대망론’에 대한 견제구가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반 총장의 행보가 친여권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못마땅한 모습이 역력했다. 박지원 의원은 10월1일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반기문 띄우기’ 반기문 총장은 ‘새마을 띄우기’”라며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 알지만 두 분의 띄위기는 과유불급입니다”라고 비꼬았다.

사실 반 총장은 야당과 인연이 깊은 인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반 총장은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고 이어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나섰을 때 노무현 정부는 외무부에 그의 당선을 위해 TF팀을 구성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이력으로 반 총장은 새정연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야권 내에서도 반 총장이 정계에 입문하고 차기 대선에서 도전을 할 경우 여당보다 야당행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 인사들은 거의 없다.

潘 대선출마 금지법 발의 추진…무산

이로 인해 새정연에서는 한때 반 총장의 출마를 견제하기 위해 ‘연속해서 5년’을 국내에 거주해야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있게 하는 법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대통령 피선거권 자격을 얻으려면 현행 선거법에서는 평생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해야 된다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을 ‘계속해서 5년 이상’으로 바꾸자는 법안이 작년에 거론된 바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지난 2006년부터 10년째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반 총장은 대선 출마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법안을 준비했던 새정연 백재현 의원은 대통령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기 위해 1년 전쯤 입법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현재는 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야권 내에서는 반 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인 박 대통령과 친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경우라도 대권 출마 선언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단 반 총장이 ‘제2의 고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력이 필요하다. 물론 충청지역 여권 성향의 의원들과 친박 의원들이 가세할 경우 반 총장의 대망론은 활화산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내년 총선에서 ‘반기문 마케팅’이 최소한 충청지역에서 통해야 하는데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선거 마케팅’ 하는 행태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란 역풍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세력이 갖춰져 있다고 해도 대선의 길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일단 반 총장의 임기는 2016년 말로 끝이 난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업적은 전 코피아난 총장처럼 뚜렷하게 눈에 띄질 않는다. 심지어 대한민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이면서 북한 개성공단도 방문하지 못했다. 코피아난 전 총장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반 총장은 후보자로서 거론되고 있는 정도다.

현재 유력한 노벨평화상 수상후보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또한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점도 아픈 대목이다. 충청권 일부 의원들과 친박계 의원들이 가세한다고 해도 주류는 비박계다. 한국을 떠나 있은 지 10년이고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 바람을 타고 지난 대선에 급부상했지만 끝내 기성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중도에 포기했다.

무엇보다 평생 공직자로서 임명직에 익숙해 있는 인사가 권력투쟁을 통해야 하는 대선판에 익숙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정치적 맷집이 기존 후보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박 대통령이 지원을 한다고 해도 출마자의 권력의지가 중요하다. 대권 우물가까지는 끌고갈 수 있으나 물까지 먹여줄 수는 없는 게 권력 속성이다. 대선 준비 기간이 매우 짧다는 점도 단점이다. 4월부터 8월 사이 대통령 경선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시간도 촉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이 주목받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역대 대통령 탄생과정을 보면 시대의 흐름이 있었다. 군부정권 종식 이후 YS는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었고 DJ는 지역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정치’인 3김 정치의 종식을 알렸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부흥의 염원으로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이자 최초 여성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통일·외교 시대적 부응…그러나 권력의지는…

여권에 정통한 한 인사는 “차기 대선에서 주목할 변수는 경제부흥과 외교, 통일이 최대 화두가 될 공산이 높다”면서 “무엇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국가 지도자로 될 공산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반 총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올인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10월2일 오준 주유엔한국대표부 대사는 “지난번 개성공단 방문이 취소된 이후 반 총장은 다시 그런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역할을 하고 또 필요하면 북한을 방문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여권 일각에서 반기문 대선 출마관련 ‘방북’을 통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이끌고 북핵 협상에 진전을 가져올 경우가 최상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임기말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바야흐로 청와대발 반 총장의 대망론이 잘 짜인 각본처럼 착착 움직이고 있는 형국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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