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아파트서 불타 숨진 남녀


서울의 한 아파트 계단에서 불에 타 숨진 40대 남녀가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현장에는 시너로 추정되는 휘발성 물질이 불에 타 그을린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두 사람이 휘발성 물질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근·등교 시간대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동네주민들은 아연실색했다. 두 사람은 도대체 왜 불에 탄 주검으로 발견됐을까. 동네 주민들을 공포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은 분신사건을 추적해봤다.

숨진 박씨 ‘살려 달라’ 비명…시너로 추정되는 물질에 의해 사망
경찰 “산악 동호회서 만난 사이로 내연관계 가능성도 배제 안 해”

지난달 30일 오전 8시 20분께 서울 관악구 보라매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모(46)씨와 박모(44·여)씨가 다툼을 벌였다. 박씨는 아파트 주민인 반면, 이씨는 아파트 인근 주민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분신’

당시 이씨는 등산화를 신은 등산복 차림으로 검은색 배낭을 메고 있었고, 박씨는 정장차림으로 출근길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고성이 오가던 중에 박씨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그 뒤를 이씨가 뒤따랐다.

155cm의 왜소한 체격의 박씨는 건장한 체격의 이씨를 피해 “살려 달라”고 계속 외치며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박씨는 “엄마”를 부르짖는가 하면 “살려달라”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거듭 소리쳤다.

이 소리에 놀란 이웃 주민이 현관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이 이웃주민의 눈에 온 몸이 흥건하게 젖은 이씨와 박씨가 눈에 띄었다.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한 이 주민은 현관문을 닫고 작은방 창문을 열어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어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분신’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이웃 주민이 두 사람을 목격한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아파트 4층과 5층 사이에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찼다. 화재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아파트 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하는 등 일대에 큰 소란이 일었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했고 이씨와 박씨의 분신으로 인한 화재임이 밝혀졌다. 계단에서 분신한 탓에 두 사람의 시신은 동네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돼 경악을 안겨 줬다. 출근과 등교 시간대에 벌어져 학생들도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포와 충격에 빠진 주민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주민들은 여전히 공포와 충격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모(40·여)씨는 “뜬 소문이 동네에서 떠돌고 있다. 무섭고 끔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당시 ‘사람 살려라’는 고성이 들렸는데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누구 하나 말리지 못한 것 같다. 5층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모(49)씨는 “치정 사건으로 소문이 났다”며 “두 사람 모두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 내연관계였는데 박씨가 더 이상 만나주지 않자 이씨가 찾아와 분신을 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42·여)씨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김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같은 것이 뚝뚝 떨어진 상태로 여자가 뛰어오고 덩치 큰 남성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고 하더라. 이 주민이 너무 무서워서 현관문을 닫고 경비아저씨를 부르는 사이 불이 나버렸다고 이야기해줬다”며 “경비아저씨가 이 주민의 현관문을 두드리며 빨리 내려가라고 종용했고, 누군가가 두 사람에게 붙은 불을 소화기로 진화하고 있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 묻자 대부분의 주민들이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말하며 언급을 피했다. 김모(41·여)씨는 “아파트 분위기가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질러도 누구 하나 뛰쳐나와 도와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편 경찰은 치정이나 원한에 의한 살해 후 자살 또는 동반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는 한편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히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산악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이로 내연관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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