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 피해자들의 피눈물이 해안가에 넘친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피눈물이 해안가에 넘친다
  • 이창환 기자
  • 입력 2011-06-07 14:37
  • 승인 2011.06.07 14:37
  • 호수 892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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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집중조명’ 악마들이 운영하는 직업소개소

인면수심 고용자들 “일하러 오는 사람이 없는 걸 어쩌라고”
새우잡이·양식장 인근 도시에 하이에나처럼 도사리고 있어

[이창환 기자] =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적발된 인신매매단들은 수년 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소형어선, 양식장 등에 팔아넘겼다. 적발된 이들은 인신매매 전체 시장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인신매매단은 일을 구하려는 지적장애인, 노숙자, 신용불량자 등을 속여 이득을 챙겼다. 일부 소형어선, 양식장 종사자들은 인신매매인 것을 알면서도 지적장애인 등을 고용했다. 지적장애 2급 이었던 권모(29)씨는 새우잡이 배, 김 양식장, 가두리 양식장에 팔려 다니며 노예 생활을 했다. 권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인신매매단의 수렁에 빠져 비극적인 나날을 보냈다.

교통사고 휴유증과 뇌경색을 앓고 있던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권씨는 가출이 잦았다. 생활고와 스스로에 대한 심적 갈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아버지 역시 장애인 판정을 받고 있던 터라 권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2008년 7월에도 권씨는 부산 일대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소소한 일거리를 찾거나 술을 마시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권씨는 인신매매를 일삼던 박모씨. 문모씨. 김모씨 눈에 띄였다. 박씨 등 3명은 권씨에게 접근해 호의호식과 일자리를 약속하면서 꼬드겼다.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권씨를 군산의 모 양식장으로 팔아넘겼다. 그곳에서 권씨는 3개월 동안 강제 노동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폭행과 감시에 시달렸다. 이후 권씨는 목포, 해남 소재 김 양식장, 가두리 양식장에 팔려 다니며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2008년 시작된 양식장 강제 노동은 지난 3월까지 이어졌고, 권씨는 20개월 동안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했다. 권씨를 넘겨 받은 양식장 업자들은 처음 전달한 계약금으로 권씨의 임금을 모두 지불했다는 뻔뻔한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권씨는 지난 3월 7일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고, 곧바로 목포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부산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목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또다른 인신매매자 김모씨가 팔아넘길 대상들을 물색하고 있었다. 김씨는 권씨에게 다가가 “내가 운영하는 주점에서 쉬다 가지 않겠나. 좋은 직업도 소개시켜 주겠다”면서 꼬드겼다.

일개미 기다리는
개미귀신처럼 잡아먹어

김씨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권씨는 단란주점에 머물러 있으면서 김씨가 제공하는 양주와 안주 등을 먹었다. 김씨는 권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성매매까지 제공했다. 이틀 만에 빚은 340만 원 까지 불었고 김씨는 돌변해 권씨를 협박했다.

김씨는 “빚을 갚으려면 새우잡이 배를 타야한다”고 하면서 권씨를 새우잡이 배 선주 이모씨에게 340만 원에 팔아넘겼다. 그리고 이씨는 권씨를 자신이 고용한 새우잡이 선원들 사이로 던져 놓았다.
새우잡이 배를 탄 권씨는 전보다 더 심한 고초를 겪으며 노예 생활을 해야했다.

하루 종일 퇴약볕 아래서 중노동을 해야 하는 양식장 작업도 보통사람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새우잡이는 이보다 더했다. 매일 15시간 이상 작업에 내몰리는 것은 기본이고 잠도 3~4시간 밖에 재우지 않은 것으로 악명 높았다.

새우잡이 배는 고용자들의 탈출을 우려해 짧으면 6개월, 길면 10개월 이상 항구로 돌아오지 않았고 물자는 상고선을 이용해 조달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권씨는 선원 셋에게 수시로 괴롭힘을 당했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심지어 선원들은 권씨의 양손과 목에 줄을 매달아 끌고 다니며 집단 폭력까지 휘둘렀다. 이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권씨 얼굴에 가래침을 뱉기까지 했다. 권씨의 얼굴과 몸에는 항상 피멍과 출혈 자국이 가득했다.

수난 속에 찾아온 한줄기 빛

지난달 2일 늦은 오후 권씨는 선원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우잡이 배에 끌려온 지 50일만에 처음 찾아온 기회였다.

통화에 성공한 권씨는 아버지에게 “매일 폭행당하고 있는데 구출해 달라. 배 위인데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사정했다. 아버지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부산해양경찰서에 신고했다.

해양경찰은 선박출입항 관리시스템을 통해 권씨의 소재를 파악한 후 즉시 구출에 나섰다. 다행히 권씨는 선박출입항 관리시스템에 정보가 기록돼 있었다. 해양 경찰은 어선들의 출입항을 관리하기 위해 항구마다 경찰을 배치해 선원들의 정보를 입력한다.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선원들은 출입항이 허가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선원 셋을 체포한 경찰은 다음날부터 권씨를 데리고 다니며 행적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찰은 권씨가 기억해낸 단서를 토대로 권씨를 팔아넘긴 일당들을 잡아들였다. 경찰은 “권씨가 군산, 목포, 해남 소재의 양식장 위치를 기억해내지 못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절망

2008년 권씨를 팔아넘겼던 박씨 등 3명은 직업 안정법과 영리유인 전과가 있던 자들이었다. 직업소개소를 차리는 것이 까다로운 것을 알았던 이들은 지인의 명의를 빌려 직업소개소를 차렸다. 그리고 과장광고를 내보내면서 지적장애자, 노숙자, 신용불량자, 사업에 실패한 이들을 끌어 모았다. 광고를 믿고서 찾아갔던 지적장애자 등은 일손이 부족한 새우잡이 배, 양식장으로 넘겨졌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팔려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 팔려나가게 되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채 중노동을 했고 운이 좋은 경우에만 탈출에 성공했다.

박씨 등 3명은 수년 간 수백 명을 인신매매하면서 1억4400만 원의 이득을 챙겼다.

지난 3월 권씨를 팔아넘긴 김씨 역시 불법 직업소개소를 차려 권씨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등쳐먹었다. 김씨는 광고를 내놓고 기다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택시운전을 겸업하면서 인신매매 기회를 넓혔다.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등을 주로 찾아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대상을 물색 했을 때는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단란주점에 데려갔다. 술을 제공하고 성매매를 알선해 큰 빚을 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김씨는 그 빚을 이용해 포섭했던 이들을 끊임없이 팔아넘겼다.

2008년부터 지난달까지 김씨는 29명을 인신매매 하면서 총 3억 원 이상의 이득을 챙겼다.

내 직업은 노예가 아냐

몇 년 간 지독한 수난을 겪었던 권씨지만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인신매매자 박모씨에게 붙잡히고 만 것이다.

부산 일대에서 인신매매를 벌이던 박씨는 지난달 9일 권씨를 유인해 그날 바로 해남 양식장에 넘겨 버렸다. 권씨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지적장애까지 있던 탓에 정상적인 작업수행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권씨를 넘겨받은 업주는 6일 만에 권씨를 포기하고 다시 인계하기로 결정했다.

박씨는 어쩔 수 없이 권씨를 흑산도에 있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업자로 활동하던 택시기사 A씨에게 “권씨를 태워 흑산도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해남 양식장으로 찾아가 권씨를 태웠고 둘은 지난달 15일 흑산도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권씨는 줄곧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전화할 곳을 찾았다. 자신의 위급함을 경찰에 신고하기 위함이었다.

지난달 권씨를 새우잡이 배에서 구출했던 경찰은 며칠 동안 권씨와 동행하면서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넸다.

당시 경찰은 몇 번이고 “이 명함을 꼭 잘 간직하고 항상 숨기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연락하라”고 강조했다. 절대 명함을 보여주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택시에서 내린 권씨는 “잠시 전화하고 갈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서 택시기사를 안심시킨 후 경찰에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권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권씨에게 “택시기사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수화기를 건네받은 A씨는 가던 길을 돌려 권씨를 부산해양경찰서로 데려다 줬다. 경찰은 권씨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은 최근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이뤄지자 특별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인신매매단의 행적을 추적했다. 권씨와 같은 피해자를 구출함과 동시에 인신매매 집단을 뿌리 뽑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인신매매 수사 진행은 쉽지 만은 않았다. 피해자 대부분이 가족 또는 지인들과의 관계가 요원한 소외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신매매단에게 넘겨지더라도 실종 신고를 받지 못해 오랜 기간 몸과 정신을 혹사당했다.

경찰은 최근 발생 하는 범죄에 대해 “과거에는 무차별 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휘둘러 낙도에 팔아넘겼지만, 최근에는 오갈 데 없는 이들을 꼬드기는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와 같은 2급 지적장애인들은 탈출하거나 신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1급 지적장애인들의 경우 이 같은 실행이 불가능하다.

한 줌의 희망을 가지고 일자리를 찾던 사회적 약자들은 악랄한 인신매매 업자들 때문에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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