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노벨 생리의학과 물리학 두 분야의 공동수상자 5명 중 일본인 3명과 중국인 1명이 포함되었다. 일본은 노벨 과학부분에서만 21번째 수상자를 냈다. 중국은 과학 부분에서 첫 번째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우리와 같이 한자(漢字)를 쓰고 유교문화권인 두 나라에서는 노벨 과학 수상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한 사람도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수상은 노벨상에 상처만 남겼다며 국제적으로 조롱당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돈 주고 성사시켰으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일본과 중국이 노벨 과학부분 수상자를 배출하자 우리나라에서는 자괴감(自愧感)이 쏟아져 나왔다. 노벨 과학분야 수상자를 길러내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도 제시되었다. 단기성과 집착 보다는 장기적인 투자, 과학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 조성, 기초과학 진흥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노벨 과학분야 수상자 양성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대목이 있다. 과학자들이 전문 분야에 평생 몰두하는 끈덕진 근성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은 두뇌가 명석하고 회전이 빠르며 약삭바르다. 그래서 경제성장도 약삭바르게 빨리 달성할 수 있었고 “한강의 기적”도 일궈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전문가들에게는 전문분야에 미련스럽게 집착하는 근성이 결핍되어 있다. 가시적인 단기성과에 집착한다. 너무 약삭바른 탓인지도 모른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 80) 기타사토대 명예교수는 지방대 출신이고 학창시절 스키선수였다. 그는 미생물 연구를 위해 항상 지갑에 미생물 샘플 봉지를 갖고 다니며 퇴근할 때나 출장 갈 때나 흙을 채취했다. 유명 제약회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저개발 국가들의 감염병 치료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 공로로 그는 윌리엄 캠벨 미국 드루대 명예교수(85), 중국 투유유(85·여)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중국의 투유유 연구원은 베이징 대학 의대 재학시절부터 천연 약물 연구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 1955년 위생부 산하 중국전통의학연구원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한 분야만 파고들었다. 그는 박사 학위도 없고 중국 과학자에게 붙이는 최고 명예인 원사(院士) 선정에서도 탈락되었다. 그의 연구팀은 1971년 항말라리아 효가가 있는 100%의 칭하오(개똥쑥) 추축물을 발견할 때까지 190차례나 실패를 거듭했다. 바보스러울 정도의 끈기 발휘였다.

미국·유럽이나 일본 학자들에겐 전문분야만 평생 깊이 파고드는 근성이 강하다. 그런 특성은 내가 50년 전 미국 유학 당시 절감했다. 나는 처음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 연구 서적들을 며칠 뒤졌다. 미국·유럽학자들이 쓴 연구 저서들 중엔 특정 분야 연구대상에 평생을 바쳐 연구하며 수십년 걸려 저술한 방대한 서적들이 많았다.

일본은 어떤가 궁금해 일본 측의 서적들도 찾아보았다. 일본 연구서적들도 거의 미국·유럽 수준만큼 한 가지 전공분야에 깊게 파고들었고 방대했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21명 배출은 과학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 조성 등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일본 과학자들이 한 가지 연구분야에 평생 매몰되는 연구자 개개인의 질긴 근성이 차곡착곡 쌓아올린 결과이다.

가시적이며 단기적인 효과나 노리는 약삭바른 두뇌만으로는 “한강의 기적”은 일궈낼수 있어도 노벨상을 탈수는 없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네 탓”만 할 게 아니다. 연구 분야에 바보처럼 수십년 매달지 못하는 “내 탓”부터 해야 한다. 일본의 오무라 교수나 중국의 투 연구원처럼 30-40년 동안 미련스럽게 집착하는 근성을 우리 과학자들도 체질화 해야 한다. 거기에 노벨상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