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찾아낸 ‘그 놈 목소리’


승용차 기어 중립상태 놓고 차량 강물에 빠뜨려 살해
4년 전에도 타살 정황 포착…음성분석으로 범행 덜미


최은서 기자 = 보험금을 노리고 위장결혼한 뒤 아내를 살해한 조직폭력배의 범행 전모가 4년 만에 들통났다. 이 조직폭력배는 처음부터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인터넷 미혼모 사이트에서 살해대상자를 물색했다. 이 조직폭력배는 임신 중이던 미혼모 여성을 유혹해 혼인신고를 하고 수억 원의 보험에 가입한 다음 결혼 10여 일 만에 살해했다. 만남에서 살해까지 걸린 시간은 2개월에 불과했다. 당시 사건은 단순 사고사로 결론 났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하지만 최초 신고자를 밝혀내지 못해 의혹만 남긴 채 수사는 중단됐다. 남편의 치밀한 사전준비로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결국 유일한 단서였던 ‘신고 전화 목소리’ 때문에 범행 일체가 드러났다.

광주S파 조직원 박모(30)씨는 2007년 2월 아내와 이혼한 뒤 인터넷 미혼모 사이트에 “두 딸을 키워 줄 보모를 구한다”는 광고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살해 대상자를 물색하기 위한 눈속임용 광고였다. 박씨는 이 광고를 보고 연락해 온 미혼모 김모(당시 26세)씨에게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박씨는 “함께 살면 임신 3개월째인 아이를 잘 보살펴주고 생활비도 내가 마련하겠다”며 “전처가 재산에 대해 법적조치를 해올 수 있으니 빨리 결혼해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자”고 김씨를 속였다.

미혼모 사이트서
살해대상 물색


박씨는 김씨와 만난 지 20일 만인 5월 23일 혼인신고를 마쳤다. 이렇게 사전 준비를 마친 박씨는 일주일 뒤 3개 보험사에 김씨 명의로 생명 보험 2건과 교통사고보험 1건을 가입했다. 김씨가 사망하면 4억4000만 원을 박씨 자신이 챙기기 위해서였다. 박씨의 주도면밀함은 이뿐 아니다. 그가 가입한 3개 보험 중 하나는 휴일에 사망하면 1억 원의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는 특약이었다. 이에 박씨는 범행 실행 날을 현충일인 6월 6일로 정했다.

6월 6일이 되자 박씨는 “운전연수를 시켜 주겠다”며 전남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변으로 아내를 유인했다. 운전 미숙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내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드들강변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세피아 승용차 기어를 중립상태에 놓고 차량을 밀어 강물에 빠뜨려 김씨를 살해했다.

(여기서 김씨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박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살해방법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태연히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5일 뒤 경찰서 지구대를 직접 찾아가 아내 가출신고를 했다. 박씨는 또 조직폭력배인 친구 양모(30)씨에게 “차량이 발견되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며 “드들강변에 차량에 빠져있다고 신고하면 800만 원을 주겠다”고 119와 112에 신고하게 했다. 이에 양씨는 “남평읍 드들강 근처에서 투망질로 낚시를 하던 중 강에 빠진 승용차를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신고는 같은 해 6월 19일과 20일 두 번에 걸쳐 이뤄졌지만, 아내가 6일에 실종됐다고 신고했기 때문에 특약을 적용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박씨는 보험금 4억4000만 원 중 2억 원을 수령했다. 한 보험사가 박씨가 생명보험 가입 시 아내 명의를 도용했다며 2억4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자 박씨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단 하나의 단서
‘최초 신고자 음성’


경찰은 양씨의 신고로 같은 해 6월 20일 차 안에서 숨진 김씨를 드들강변에서 발견했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운전 연습을 하러 갔던 아내가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당시 박씨의 사인은 ‘익사’로 결론났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무엇보다도 드들강변은 15° 경사의 좁은 비탈길로 운전연습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큰 길에서 떨어진 외진 곳이라는 점도 의문을 샀다. 이 뿐 아니었다. 사고가 난 시간이 오후 11시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차량은 라이트도 켜져 있지 않았다. 또 사고차량 창문이 모두 열린 상태였음에도 탈출 시도 흔적은 어느 곳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는 특별한 외상 없이 익사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박씨가 조직폭력배인데다 채무에 시달렸고 보험사기전과가 있다는 점도 의심을 샀다.

당시 경찰은 박씨의 범행으로 보고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결정적 물증을 잡지 못한데다 최초 신고자를 파악하지 못해 벽에 부딪쳤다. 경찰은 또 타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CCTV 분석, 통신수사 등을 벌였으나 박씨의 치밀한 사전 준비로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은 단순사고사로 내사 종결됐다.

이대로 묻힐 뻔 했던 박씨의 범행은 광주서부서가 조직폭력배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중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경찰의 조폭 리스트에 오른 박씨가 2007년 드들강변에서 발생한 변사사건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경찰이 확인한 것이다. 경찰은 또 사건 당시 신고를 했던 남자 목소리가 양씨와 유사하다는 제보를 받게 됐다. 이후 경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에 경찰은 신고 당시 목소리 녹음 파일과 양씨와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국과수에 보내 목소리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국과수 음성분석결과를 토대로 양씨를 추궁해 “교도소 동기인 박씨의 부탁으로 119와 112에 신고했다”는 자백을 확보했다. 또 국과수 음성 분석결과 양씨가 신고를 하던 당시 옆에서 들리던 작은 목소리가 박씨의 목소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수사가 재개된 사실을 눈치 챈 박씨는 양씨에게 목소리 변형수술을 강요하는 한편, 경찰 수사에 발각되지 않도록 시외로 도피하라고 종용했다. 박씨는 또 “범행 사실을 말하면 가족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음성이 단서가 돼 4년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사건을 해결했다”면서 “박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나, 통화기록 등을 정밀 분석하는 등 증거 보강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박씨를 살인 및 보험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양씨를 살인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최은서 기자]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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