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모텔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여자친구 사망 후 보험사로부터 2억 원 받은 뒤 고모에게 수천만 원 건네
경찰 “산낙지 등으로 기도 막은 후 빼내거나, 베게 이용해 기도 폐쇄 추정”


최은서 기자 = 지난해 인천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20대 여성의 질식사 사건이 1년 3개월여 만에 살해혐의가 짙은 사건으로 반전됐다. 경찰이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남자친구의 계획적 살인에 무게를 두고 보완수사를 벌인데 이어 검찰도 보완수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경찰은 산낙지를 먹다 기도가 막혀 숨진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후 경찰은 ‘딸의 남자친구가 보험금을 노리고 꾸민 일’이라는 유족의 주장에 1년여 간 집중 수사를 벌여 살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살해 혐의 입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피해자 시신이 이미 화장돼 검찰 수사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19일 인천의 한 횟집에서 윤모(23·여)씨와 윤씨의 남자친구 김모(30)씨가 낙지 4마리를 샀다. 두 마리는 썰고, 두 마리는 통째로 구입했다. 이 통낙지는 별도의 조리를 하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는 큰 낙지였다.

질식사 결론 후 시신 화장돼

낙지를 구입한 두 사람은 술을 산 뒤 인근 모텔에 오전 3시께 들어갔다. 1시간이 지난 4시께 모텔 카운터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김씨의 전화였다. 김씨는 “낙지를 먹던 여자 친구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를 빨리 불러 달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의 전화에 놀란 모텔 종업원은 김씨가 투숙한 모텔 방으로 뛰어갔다. 모텔 방안에는 윤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바닥엔 통낙지와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김씨는 종업원에게 “여자친구를 병원으로 옮겨야 하니 업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윤씨의 몸은 이미 차가운 상태였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후송된 윤씨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응급실에서 “딸이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온 윤씨 가족들에게 김씨는 “윤씨가 모텔에서 낙지를 먹다 목에 걸렸다”고 말했다. 윤씨가 낙지를 먹다 낙지 다리에 기도가 막혀 질식했다는 것이다. 뇌사상태에 빠진 윤씨는 16일 만인 지난해 5월 5일 숨을 거뒀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가 병원 입원 후 사망해 부검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병원에서 윤씨의 사인은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났다. 경찰 역시 모텔 종업원 증언 등을 종합해 ‘질식사’로 결론 내리고 내사 종결했다. 윤씨 가족들은 윤씨 시신을 화장(火葬)했고, 모텔 방안에 있던 증거물들도 사라졌다. 이렇게 사건은 사고사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보험금 노리고 여친 살해?

하지만 윤씨 사망 이후 타살 정황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윤씨의 사망으로 슬픔에 빠진 윤씨 가족 앞으로 생명보험 가입증서가 우편으로 왔다. 윤씨 가족들은 이 가입증서를 통해 윤씨가 사고 발생 일주일 전 2억 원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달에 13만 원을 납입해야 하는 보험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호학원을 다녔던 윤씨로서는 부담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더구나 생명보험은 사망 또는 일정한 연령에 이르기까지 생존할 것을 조건으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할 것을 약정한 보험이다. 이처럼 생명보험의 경우, 사망하거나 약정한 일정한 연령에 이르기 전 까지는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 윤씨 가족들은 23살의 어린나이에다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윤씨가 갑작스레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이 의아했다.

의문점은 이 뿐 아니었다. 가입 당시 이 보험의 법정 상속인은 직계가족이었으나 4일 후 김씨로 바뀌었다. 질식 사고가 발생하기 1주일 전에 생명보험 보험금 수령자가 김씨로 바뀐 것이다. 또 윤씨가 뇌사 상태에 빠져 있었던 4월 29일에도 보험료가 납부된 사실도 드러났다. 윤씨가 자신의 고모 딸에게 보험료를 송금해 고모 딸이 보험료를 대납한 것이다. 김씨가 보험금 수령통장을 개설한 것도 사건 발생 이틀 후인 4월 21일이었다.
김씨는 윤씨가 숨진 뒤 보험사로부터 2억 원을 받았고, 자신의 고모에게 3500만 원을 건네줬다. 이후 김씨는 윤씨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현재 김씨는 보험금의 대부분을 탕진한 상태다.

경찰관계자는 “윤씨가 든 보험의 보험설계사는 김씨의 고모로, 수익자 변경을 위한 서류인 배서신청서를 김씨에게 건네 준 것도 김씨의 고모다”라며 “공범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 의혹제기로 보완수사 나서

이같은 타살정황에 유족은 지난해 9월 “김씨가 거액의 보험금 수령을 위해 딸을 살해한 것 같다”며 살해혐의로 경찰에 김씨를 고발했다. 유족들은 ▲윤씨의 생명보험 상속자가 김씨인 점 ▲ 2억 원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한 김씨가 잠적한 점 ▲낙지를 자르지 않고 구입한 점 등을 들어 타살에 의한 사망임을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의 의혹제기로 사건은 ‘살해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에 경찰은 곧 재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김씨는 “낙지를 먹다 목에 걸리자 숨을 쉬지 않았다”며 “목에 걸린 낙지를 내 손으로 끄집어내기도 했다”며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시신을 화장해 부검을 통한 물증 확보를 할 수 없어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1년 남짓 사귀어 온 사이로 윤씨는 김씨와 결혼할 사이였다고 진술했으나 윤씨 주변인들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다”며 “낙지 등의 이물질을 윤씨 입에 넣어 기도를 막은 후 빼내거나, 베게 등을 이용해 기도를 폐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은 살해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짓고 지난달 25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