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서 와인 마시며 귀가 여성 기다렸다


물수건 갖고 다니며 지문 지우고, 타인 신분증 훔쳐 들고 다녀
와인에 삼겹살, 라면까지 먹는 등 제 집처럼 활보하는 대범함


최은서 기자 =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들을 상대로 연쇄 성폭행을 일삼은 일명 ‘송파·광진 발바리’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2008년 7월부터 최근까지 3년여 동안 송파와 광진 일대 주택가와 원룸가를 돌며 강도행각과 성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현관문이나 창문이 열려있거나 방범창이 설치돼 있지 않은 집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들은 두려움에 피해 사실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단순 절도범으로 검거됐던 이 남성은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다 경찰이 확보한 DNA 자료에 범행 일체를 털어놨다.

주택이나 원룸에 잠입했다 귀가하는 여성들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금품을 훔친 혐의 등으로 지난 3일 구속된 김모(39)씨는 송파·광진 일대를 종횡무진했다.

빈집에 침입해 1박2일 머물러

직업도 거주지도 없었던 김씨는 찜질방이나 PC방을 전전하다 퇴근시간이 되기 전에 빈집이나 여성이 혼자 살만한 집을 물색했다. 옥탑방이나 저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관문이나 창문이 열려있는 집이 김씨의 표적이었다. 마른 체구의 김씨는 주로 열린 창문을 통해 빈집을 드나들었다. 김씨는 잠긴 창문이나 현관문도 도구 등으로 떼어내 손쉽게 침입했다.

김씨는 빈집에 침입했다 남성이 귀가하면 금품만 훔쳐 달아나고, 여성이 들어오면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했다. 특히 김씨는 빈집에 침입한 후 옷장과 신발장 등을 살펴보고 여성이 혼자 사는 흔적이 발견되면 집 주인이 귀가할 때 까지 기다렸다 성폭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2008년부터 7월부터 최근까지 5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욕을 채워왔다. 김씨는 성폭행을 저지른 뒤 스카프나 벨트 등으로 피해 여성들의 팔 다리를 묶어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 못하게 했다.
빈 집안으로 침입한 김씨는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했다. 김씨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식사를 하고, 와인이나 소주를 마시며 여성의 귀가를 기다렸다. 김씨는 마치 주인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며, 라면을 끓여먹고 고기를 구워먹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빈 집에 침입한 후 집 주인이 귀가하지 않으면 침대에서 태연히 잠들었다 아침에 빈 집을 나섰다. 특히 연휴기간에는 한 집에서 1박 2일을 머무르기도 했다.

김씨는 영업이 끝난 가게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영업을 마친 식당에 들어가 현금을 훔친 후 빈 식당에서 태연히 삼겹살을 구워먹고 소주를 마셨다.

김씨는 33차례에 걸쳐 노트북과 승용차 열쇠 등 72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는데 이 돈으로 고급 호텔에 투숙하기도 했다.

DNA 자료 들이밀자
혐의 인정


이처럼 송파·광진 일대 피해 여성들이 늘어났지만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에 난항을 빚었다. 경찰은 이 일대서 발생한 성폭행 5건 범행 현장에 남겨진 DNA가 모두 일치해 동일범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2003년 성폭행을 저질러 5년간 복역하다 2008년에 만기 출소한 김씨의 DNA 정보는 보관돼 있지 않아 김씨는 경찰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DNA 채취법)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또 범행 시점이 2003년으로 오래전이라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착용하거나 보호관찰 등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도면밀한 김씨의 행각도 경찰 수사를 어렵게 했다. 김씨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물수건 등으로 창문과 현관문, 물건 등을 깨끗이 닦아냈다. 김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창문으로 침입 시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창틀에 수건을 덮어두기도 했다. 김씨는 또 훔친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후 수건으로 현금지급기에 남겨진 자신의 지문을 일일이 닦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씨가 범행을 저지른 주택가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많았고, 김씨가 훔친 신분증을 소지하고 다닌 점도 경찰 초동수사를 가로막은 장애물이 됐다.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하던 경찰은 지난 1월 김씨가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는 장면이 찍힌 CCTV 화면을 확보했지만 김씨가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데다 흐릿하게 찍혀 수사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후 경찰은 김씨가 영업이 끝난 가게 창문을 뜯고 현금을 훔치는 CCTV를 확보했다.

경찰은 또 절도 피해자의 노트북이 판매된 곳을 확인해, 절도 피해자 신분증이 사용된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신분증이 없어진 절도사건 피해자를 추가적으로 확보해 피해자들의 명의가 도용된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 추적하면서 김씨의 덜미를 잡게 됐다.

절도 혐의로 지난달 28일 대전의 한 PC방에서 붙잡힌 김씨는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강력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이 성폭행 현장에서 확보한 DNA 자료를 토대로 추궁하자 김씨는 범행일체를 털어놨다. 경찰은 김씨의 추가 범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추궁 중이다.

경찰관계자는 “여성이 혼자사는 원룸을 대상으로 퇴근 시간 전 창문을 통해 미리 침입한 후 귀가한 피해자를 강도 강간한 사건”이라며 “외출과 취침 전 문단속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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