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여부를 두고 법무부와 검찰이 대립하기도 했던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가 구속 수감된 지 8개월여가 됐다. 1심 재판에서 징역 7년형을 받고 현재 2심이 진행중인 송교수는 건강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는 “감옥에서 고혈압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며 “천식으로 호흡곤란을 겪어 위험한 순간을 넘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재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연구방법인 내재적 접근법에 대해 “법률가들이 언급할 문제가 아니라 학자들의 논쟁이 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씨는 또 노동당 입당과 정치국 후보위원 논란과 관련 “노동당 입당은 30년 전의 일로 입국에 따른 관례적인 것으로 했을 뿐 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 동안 잊고 살아왔던 문제”라며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음이 이미 밝혀진 상태다”라고 밝혔다.

- 송 교수가 구속 수감된 지 8개월이 다 되어 간다. 건강은 괜찮나.▲건강문제가 심각하다. 겨울에 고혈압이 생겼다. 혈압지수가 상당히 높다. 또 알레르기에서는 천식이 있다. 한 번은 밤에 발작을 일으켜 위험했었는데 다행히 넘긴 적도 있다. 사실 발작을 일으키기 전날 면회를 갔더니 호흡곤란이 있다고 말했고, 얼굴이 창백했었다. 교도소측에 응급환자이니까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다음날 새벽에 호흡곤란을 느껴 큰일 날 뻔했다.

- 교도소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밖의 공기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 운동시간인 1시간이 하루의 낙이라고 한다. 40년 가까이 의자생활을 하다가 바닥에 앉아있으니 허리가 아파서 서서 책을 읽고 있다. 업이 글쓰는 일인데 집중이 잘 안돼 힘들어한다. 요새는 힘든 책은 안 읽고 중국어 회화공부를 하고 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학자다.

- 송 교수는 37년만에 귀국했는데, 귀국당시 분위기는. ▲사실 오늘 같은 일은 상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을 했으면 안왔다. 왜 왔겠는가? 그 동안 준법서약제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고, 송 교수는 아버지 임종도 보지 못했다. 예전 문익환 목사 추모사업회의 ‘늦봄 통일상’시상식 때는 3시간 전에 귀국이 무산돼 공항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이번엔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시대도 많이 변했고, 노무현 정권도 들어섰으니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이번 아니면 영영 기회가 안될 수도 있으니 와야 된다고 말했다. 김지하 시인도 독일과 한국을 왕래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귀국을 독려했다.

- 조사를 받을 것이란 예상은 하지 않았나.▲분위기는 좋지만 노무현 정권이 그리 힘이 있는 정권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우리 문제로 인해서 외교문제가 벌어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노무현 정권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설사 귀국을 못하더라도, 영영 기회가 없더라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귀국 전 성명 때 우리는 조건없는 귀국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세가지 안을 냈다. 하나는 베를린 현지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두번째는 공항에서 약간의 조사를 받는다. 세 번째는 호텔에서 조사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첫 번째 것을 택했다. 왜 가능성이 없는 것을 하려고 했겠는가?

- 변호인 입회가 논란이 됐었다. ▲귀국 당시 공항에 도착하니까 우리는 내리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됐는데 국정원 직원 수 십명이 밖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공항에서 국정원측과 합의 보기를 그 날 환영만찬을 참석한 뒤 다음날 변호사 입회 하에 조사받기로 했다. 당연히 지켜질 줄 알았지만 국정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 1심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 받았다. 당시도 그렇고 2심 재판에서도 송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북한 연구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교수신문에서 한국사회의 학문적 이론으로 20가지를 선정했다. 내재적 접근법은 그 중 하나였다. 이는 법정에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 학자들이 내재적 접근법에 대해서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는데 계속 이 문제를 가지고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것은 말이 안된다. 법률가들이 언급할 문제가 아니라 학자들의 논쟁이 되어야 한다.

- 송 교수가 남쪽만 비판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고 윤이상 선생도 가끔 송 교수에게 종종 왜 남쪽만 비판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송 교수는 ‘나는 북에 가면 손님이다. 손님이 이것, 저것을 물으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남쪽은 고향이 있고 자라온 곳이자, 글도 남쪽에다 쓰고 책도 남쪽에서만 나온다고 말했다.

- 황장엽씨의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들었다’는 증언이 1심 판결에 영향을 미쳤는가. ▲황씨의 증언도 아니고 김용순 위원장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본 것도 아니다. 황씨의 증언은 증거 능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 과거 황씨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당시 재판부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장에 그런 말을 썼다. 또 북한 체제의 구조상 고 김용순 위원장도 정치국 후보위원을 알 수 없는 자리라고 들었다. 비공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씨가 변호사가 신문하니까 화를 내면서 자기가 여기에 온 것은 앞으로 송 교수와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왔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 노동당 입당문제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 ▲입당 문제에 대해 우리를 초청했던 분들도 왜 사전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30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또 북에 처음 갔을 때 그쪽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관례상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에 한 것뿐이다. 송교수는 남쪽에 부모가 있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연구 목적으로 방문했기에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일부 언론에선 부인도 모르게 숨기고 있었다고 보도했는데 왜 몰랐겠는가. 잊고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남북간 냉전시대가 끝나고 화해분위기로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렇게 문제 삼을 만한 일인가?

- 북으로부터 받은 지원금도 논란이 됐다. ▲자꾸 돈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목적이 분명했다. 개인 돈으로 착복하지 않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런데도 자꾸 그것을 따지고 들었다. 2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서강대 강정인 교수도 검찰과 재판부의 같은 질문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미국에 있는 많은 사립대학들은 한국정부에서 돈 받아서 연구했다며 그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학문적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적합한 말이다.

- 국내외 구명운동이 활발하다. ▲1심 선고 후 해외 50여개 언론이 보도하는 등 관심을 가졌다. 위르겐 하버마스, 노암 촘스키, 독일의 대통령 후보였던 함부르휘어 자민당 당수, 에곤 바하 등 많은 저명인사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국내에서도 김세균, 신정환, 박호성 교수 등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자들이 적극적이다.

- 1심 선고 후 독일로 갔는데 주변 분들의 반응은.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분을 우연히 만났다. 그 분이 송 교수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었다. 서울대 교수가 와 송 교수 상황을 물었더니, ‘거물급 간첩’이라며 ‘7년형도 적게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그 분이 윤이상 선생과 송 교수의 김대중씨 구명운동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밤늦게 찾아와 밥 좀 달라고 해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묻자, 김대중씨 구명 운동을 위해 제네바에 갔다가 마지막 비행기타고 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자기 주머니 돈 털어가면서 없는 시간 내 그렇게 열심히 구명운동을 했는데 김대중씨는 대통령 때 그 분들을 위해 한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송 교수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항의했다고 했다.

- 고 윤이상 선생과 친분이 깊었나.▲윤 선생님과 한 식구처럼 지냈다. 그 분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굉장히 크셨던 분이다. 윤 선생님 돌아가시고 한 축이 무너진 것처럼 슬펐다. 많은 사람들이 송두율이란 인간을 제2의 윤이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 한쪽에서 극단적인 친북 인사로 몰리고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법정에 앉아서 송 교수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분노하고, 한편으로는 슬퍼진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문제삼는 것은 너무 폐쇄적이다. 5년 10년 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웃게 될지, 울게 될지 답답해진다.

“한국은 송교수 문제 잊으려 하는가”

재판참석 독일변호사 슐츠씨 밝혀지난 16일 송두율 교수 2심 재판정에 외국인 변호사 한 사람이 참석했다. 독일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 한스-에버하르드 슐츠(Hans-Eberhard Schuitz·61)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독일의 ‘공화주의 변호사협회(RAV)’ 등 독일 법조계를 대표해 송두율 교수의 공판을 참관하고 송 교수에 대한 무죄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4일 방한한 슐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구명활동을 펼친 뒤 18일 귀국했다.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에 따르면 슐츠 변호사는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송 교수를 양심수로 규정했다. 전세계에서 모두들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데 한국에 와보니 모두들 송 교수 문제를 잊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인권위에서는 송 교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물었다는 것. 슐츠 변호사는 또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송 교수 1심 판결문과 관련 “송 교수가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이유로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어느 곳에서도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단지 황씨의 전언을 근거로 판결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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