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판 ‘욕망의 불꽃' 제 꾀에 넘어간 며느리


“시동생과 시누이 부부의 불륜관계 캐내 달라”
후계 경쟁 남편에 힘 실어 주려 뒷조사하다 덜미


경영권 분쟁에서 남편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게 할 목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시동생 측의 뒤를 캔 중견그룹 맏며느리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씨는 남편이 시동생과 시누이 남편 때문에 회장인 시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뒷조사를 통해 약점을 잡으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벌가 며느리가 자신의 남편을 그룹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쓴다는 점에서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과 닮은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국내 첨단소재 제조업 분야 중견그룹인 한국화이바그룹 회장 맏며느리 이모(49)씨가 시동생 측의 사생활 뒷조사를 한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한국화이바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 이씨는 한국화이바그룹 창업주의 맏아들인 자신의 남편이 경영권 다툼에서 밀린다고 판단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시댁식구
일거수일투족 밀착감시


이씨는 자신의 남편인 조 모 사장이 시동생과 시누이 남편 때문에 조 회장의 신임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조 사장은 경영관의 차이와 사업 방향 등을 두고 조 회장과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조 회장은 2009년 조 사장의 한국화이바와 한국신소재 경영권을 거둬들였다. 이후 시동생 측의 한국화이바 그룹 지분이 늘어나 남편 측 지분을 바짝 뒤쫓자 이씨는 불안해졌다.

이에 이씨는 시동생에 치명타를 입히기로 결심한다. 시동생 측근인 시누이 남편과 동서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은 이씨는 시동생을 흠집내기 위해 지인이던 회계법인 사무장 백모(55)씨에게 “시동생과 시누이 부부의 불륜관계를 캐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불륜관계를 밝혀내기만 하면 이들에 대한 조 회장의 신임이 단숨에 무너지리라 판단했다. 또 이를 통해 남편이 그룹 경영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백씨는 심부름센터에 이씨의 시누이 남편과 동서의 불륜관계와 하루일과, 금융거래내역 등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다. 심부름센터는 시동생과 시누이 부부의 하루 일과를 비롯해 불륜 정보를 캐러 다녔다. 하지만 이씨의 기대와는 달리 불륜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심부름센터는 시누이 남편과 동서의 인터넷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동식 저장장치에 저장해 이씨에게 전달해줬다. 심부름센터는 시동생 측근의 인터넷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시누이 남편이 가입한 21개의 인터넷 사이트와 동서가 가입한 4개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고 메일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이씨가 만족할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이씨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이씨는 하나은행 서울 연희동 지점의 VIP 담당직원 원모씨에게 “시어머니와 시동생 등 시댁식구가 가입한 금융상품, 예금거래내역 등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원씨를 매수해 시어머니와 시동생 등의 금융거래정보를 17회에 걸쳐 무단으로 열람했다.

심부름센터가 시누이 남편과 동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함에도 쓸만한 정보를 캐지 못하자 이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씨의 불만제기에 심부름센터는 사진을 조작해 제공하기도 했지만 이씨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심부름센터에
환불 요구했다 부메랑


이씨는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며 그동안 심부름센터 측에 건넨 사례비 환불을 요구해 돌려받았다.

완전범죄로 끝날 뻔 했던 이씨의 시댁식구 뒷조사는 결국 들통이 나고 말았다. 이씨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심부름센터 대표 김모(35)씨가 이씨의 시누이 남편에게 “이씨가 시댁 식구들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며 폭로해 이 사실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최근 아내의 태도를 수상하게 여긴 조 사장이 아내의 뒷조사 사실을 눈치 채고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를 전해 듣고 분노한 조 회장이 며느리를 검찰에 고발해 이씨가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5단독(정진원 판사)은 지난 30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이씨와 함께 개인 정보를 빼낸 백씨와 김씨에게도 같은 형을 선고하고 금융거래정보를 넘긴 원씨에게는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