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인 고 유수호 전 의원의 장례식으로 정치권이 한바탕 요동을 쳤다. ‘TK 물갈이설’로 청와대와 앙금이 사그라들지 않은 가운데 유 의원 부친의 장례식이라는 점에서 당초 박 대통령과 ‘화해무드’가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묻어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의 부친상에 조화를 보내지 않으면서 이상기류가 형성됐다. 사실상 유 의원의 조문정치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여전히 박 대통령의 ‘배신자’라는 감정이 남아있다는 메시지를 TK지역에 분명하게 던졌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조문 정치에 박 대통령의 조화정치로 대응하면서 TK민심을 둘러싼 두 인사 간 한 치 양보없는 대혈투가 재차 예고되고 있다.

- 청와대發 TK 물갈이설 현실화 하나
- 靑 조화 안보내 ‘TK민심’ 반유승민 정서 확산

<뉴시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부친 고 유수호 전 의원의 장례식이 지난 10일 엄수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유 의원 부친상이라는 점에서 여권 내에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조문할지 그리고 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낼지 최대의 관심사였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청와대 참모와 각료 출신들의 TK출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TK물갈이론’을 두고 친박 비박 간 신경전이 높아지는 시점이었다.

이런 가운데 유 의원의 부친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은 조문정치로 들끓었다. 일단 3일동안 유 의원을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만도 113명으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수와 맞먹을 정도로 대거 조문했다. 또한 여야 정치인을 포함한 정관계 법조인 인사들을 합할 경우 3000여 명이 빈소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명록만도 15권에 달했다. 당초 ‘조화와 조의금’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조화도 300여 개나 도착했다.

청와대 화환·조화 대통령이 직접 챙겨

또한 박 대통령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유 의원을 위로하는 인사들도 많았다. 특히 국회법 통과과정에서 ‘소원’해진 김무성 대표와의 관계 복원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이날 김 대표는 유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유 의원이 어려운 일은 전혀 없다. 유 의원은 우리 새누리당의 아주 중요한 자산”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대표는 또 “승민이하고 나는 형과 아우 사이”라며 친밀감을 강조했다.

유 의원을 정계에 입문시킨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역시 빈소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유 의원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유 의원의 정치적 시련기를 맞고 있는 것과 관련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번씩 겪는 아픔, 성장통 아닙니까?”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유 의원에 대한 호의적인 조문정치가 퇴색하게 만든 것은 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지 않았고 청와대 참모중 단 한 명도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참석하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오히려 청와대 전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과 조원진 의원은 빈소에서 ‘TK물갈이론’을 주장해 초상집 분위기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그동안 청와대는 문대성 의원 모친상(11월6일),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 부친상(2015년 4월),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부친상(2015년 4월)에는 어김없이 박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냈다. 청와대에서는 조화를 보내지 않은 것과 관련해 “관례상 국회의원의 경조사에 조화를 보내지만 상대방 측에서 조화를 사양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 보내지 않기로 했다. 상주 측에서 사양하는데 보낸 전례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조문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5월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딸 결혼식에는 ‘화환과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고 청첩장에 밝혔음에도 박 대통령은 화환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는 오히려 유 의원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배신자’ 감정이 가슴 깊게 남아 있다는 표식이 됐다. 특히 박 대통령의 경우 역대 대통령과 달리 화환이나 조화를 보낼 시 친필 사인을 한다는 게 여권 내 정설로 알려져 있어 더 신빙성을 높게 만들었다.

TK민심, “대통령 힘들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이뿐만 아니라 부고장이 날아온 8일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사의표명이 있으면서 ‘청와대 발 TK물갈이 설’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정 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대구동구갑 출마자로 거론되고 있는데 바로 유 의원 지역구와 인접해 있다. 사실상 청와대 참모들과 각료 출신의 도미노 총선출마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TK지역 의원들뿐만 아니라 TK민심 역시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박 대통령의 ‘배신자’ 발언 이후에 원내대표직을 자신 사퇴한 유 의원에 대한 대구민심은 동정론과 TK대표 주자로서 믿음이 존재했다. 이는 당내 경선 경쟁자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과의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두자릿수 이상 이기는 것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조화정치’를 통해 ‘유승민 비토론’을 재확인시켰다는 점에서 대구 민심 역시 요동치고 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유 의원 부친의 발인인 10일날 국무회의에서 “국민 여러분은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혀 ‘총선 심판론’까지 들고 나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권과 TK지역에서는 박 정권에서 복무하다 총선에 출마하는 인사들을 지지해달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는 유 의원을 포함해 대구 경북에서 ‘무늬’만 친박이나 ‘가박’(가짜 친박)을 골라내고 대폭 물갈이를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민심은 확실하게 ‘반유승민 정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유 의원 부친상에 다녀온 한 여권 인사는 “택시를 타고 대구 민심을 알아봤는데 ‘유 의원이 당선되면 박 대통령이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부터 ‘감히 박 대통령에게 대드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한 기사는 ‘유 의원이 김부겸이나 천정배 야권 인사들과 손잡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할 정도로 민심이 안좋았다”고 소개했다.

대구 민심이 박 대통령 쪽으로 힘이 쏠리면서 대구 수성구에 출마하는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에게도 유탄이 튀는 분위기다. 김 전 의원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일전을 앞두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TK민심을 자극하면서 역시 ‘대구에서 야당 의원이 당선되면 대통령이 힘들어진다’는 여론이 형성돼 내년 총선에서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무엇보다 TK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의 ‘배신자론’이 1탄이었다면 2탄 격인 ‘진실한 사람을 뽑아달라’는 발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우려감이 더 짙다. 대통령의 신분 상 중립적인 위치를 지켜야 하지만 만약 ‘박근혜 키즈’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한번 대국민 호소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근혜 키즈’ 위기 시 핵폭탄 발언 가능성

여권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괜히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며 “자신이 보낸 인사가 낙선될 위기에 처할 경우나 국정이 국회 때문에 계속 난맥상을 겪을 경우 ‘남은 임기 2년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재차 대국민 읍소를 할 수 있고 대국민 위기의식을 확산시켜 지지층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총선 5개월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던질 카드가 무엇인지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