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혁 경무관 추서 및 추모 53주기 기념 연극 ‘충주시대’


윤지환 기자 = 경찰청은 지난 8월 26일 오후 3시 경찰청 대강강 대청마루에서 고(故) 차일혁 경무관 등 7명에 대해 추서 임용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차 경무관의 유족 차길진 외 20여명의 유족과 차장, 국, 관 장등이 참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고(故) 차일혁 경무관 함께 심현무 총경, 이병년 총경, 김봉서 총경, 김용현 총경, 안순득 총경, 정영종 경사가 추서 임용되었다. 이날 행사는 차 경무관의 일대기를 요약한 동영상 시청한, 임명장 수여, 고인들의 유품 관람 순으로 진행되었다.

국가와 국민 위해 헌신한 전사·순직경찰관 적극 발굴해 추서

경찰청은 6월부터 국가보훈처에 전사·순직경찰관으로 등록된 2100여명에 대해 공적을 심사해 우선 적합하다고 인정된 237명을 추서했다. 기타 추서 대상자는 지방청별로 추서식을 열고 임명장과 계급장 등을 전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전사·순직경찰관을 적극 발굴해 추서를 추진하고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서식 이틀 뒤인 지난 28일에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는 차일혁 경무관 추서 및 추모 53주기 기념 연극 ‘충주시대’가 공연됐다. ‘충주시대’는 故 차일혁 경무관의 손자 차현석 교수에 의해 연출되어 더욱 의미 깊었다. 공연에는 조현오 경찰청장 및 경찰후배, 내외귀빈이 참석하여 경무관 추서를 기념했다.

조 청장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인간애를 실천한 차일혁 경무관의 행적에 감탄했다”며 “이 시대 경찰의 정체성 정립에 모범이 될 인물”이라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차 경무관의 아들 차길진 회장(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대표)은 이날 기념사에서 “올해로 선친 추모 53주기를 맞는다. 우리 나이로 내가 12살에 아버님을 가슴 아프게 떠나보낸 지 벌써 53년이 흐른 것이다”며 “하지만 내 마음속엔 늘 아버님이 계셨다. 내가 영혼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아버님을 위로하는 과정에서였다”고 밝혔다.

차 경무관은 2008년 경찰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았고 2009년엔 아산경찰교육원에 2000석 규모의 차일혁 홀이 개관됐다. 올해는 현충일에 ‘호국영령 다시 부르기(롤 콜)’에 호명되기도 했다. 또 얼마 전에는 국영방송국의 ‘역사스페셜’에서 문화재를 지킨 인물로 소개된 바 있다.

53년 만에 돌아온 계급장

차 경무관 추모제는 매년 국립극장 무대에 연극으로 오르고 있다. 이에 차 경무관의 추모제는 대중들과 같이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차 회장은 “충주는 선친이 구현하고자했던 이상향을 경찰행정으로 실천한 곳이다. 극장을 세우고 임방울 등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하여 문화공연을 활성화하고, 직업청소년학교를 세워 전쟁고아들을 구제했다. 나는 선친이 문화경찰의 이정표를 세운 이 시기를 연극 ‘충주시대’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또 차 회장은 “조그마한 업은 인간과 인간간의 업보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국가의 큰 업보”라며 “우리나라, 민족의 업이 예술로서 다 녹아내게 자정시킬 수 있는 능력이 문화와 예술”이라고 말했다.

차 경무관의 추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은 가장 큰 영예다. 단일전투로서는 최다인 세 개의 태극무공훈장이 한꺼번에 수여된 적이 있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사살 공로였다.

첫 번째 훈장은 내무부 장관이, 두 번째 훈장은 치안국장, 세 번째는 현지사령관이 받았다. 토벌대 제2연대장으로 1953년 9월 반야봉 근방 빗점골 전투에서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는 큰 공을 세우고 시신을 찾아낸 차 경무관은 훈장 수훈에서 빠져있었다. 훗날 태극무공훈장에 비해 급이 낮은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고 부대원들의 1계급 특진과 대통령 부대 표창장을 받긴 했지만 그 경위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인간애는 이념을 초월

자유당 정권 시절 총경은 몇 십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위로는 경무관과 치안국장, 두 계급이 있었다. 비교하자면 총경은 지금의 치안감이며 치안국장은 치안총수, 경무관은 각 지방 경찰청장급이다. 당시 경무관은 경찰관의 꽃으로 불렸다. 군 계급 구조로 보면 사단장에 준한다.

그러나 차 경무관은 계급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총경 시절 차 경무관은 한계급만 특진되면 경무관이 되는데도 경무관 승진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당시 차 경무관은 작전명령을 어겨 불명예퇴진을 당할 위기에 처한 동료 김동진 경감의 총경 승진을 조건으로 훈장을 고사했다.

또한 빨치산 사령관 이현상의 장례도 문제가 되었다. 방부처리 돼 20일간 처참한 몰골로 창경원에 전시됐던 이현상의 시신은 일가친척도 찾아가지 않았다. 이현상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살되거나 월북, 혹은 개명해 숨어살아야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살벌한 시국에 차 경무관은 이현상의 시신을 직접 찾아 나섰고 그렇게 수습한 시신을 화장해 자신의 철모에 넣고 M1소총으로 빻아 예를 다해 섬진강에 뿌렸다. 이는 진영과 사상을 떠나 ‘인간에 대한 연민’, 즉 인간애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한 인간으로서 도리를 갖추고자 했던 차 경무관에게 이는 독화살이 돼 돌아왔다. 정치적으로 그는 여론의 도마에 올라야 했고 빨치산 토벌작전에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도 그 전공은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후에 명예회복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4년 국가치안분야에서 유공자로 차 경무관이 선발되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차 경무관을 위한 비석을 세우라고 차 경무관의 아들 차 회장에게 하사금이 전달되기도 했다.

한편 연극 ‘충주시대’는 차 경무관을 다룬 극이다. 차 경무관의 삶을 통해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자신의 신념과 국가의 부름 사이에서 갈등하는 차 총경의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연극은 차 회장의 소설 ‘애정산맥’을 원작으로 삼았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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