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기밀문서, 용천역 폭발사고는 김정일 암살기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전문 25만1287건을 지난 2일 모두 공개했다.

위키리크스는 이번에는 모든 전문을 그대로 인터넷에 게재했다. 한반도 관련 전문은 약 1만4000여 건이고, 이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관이 작성한 문건은 2000건이다. 주한 미대사관 문건은 1988년 작성된 것부터 지난해 문건까지 망라돼 있다.

위키리크스 홈페이지에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2007년 10월 5일 본국에 보고한 외교전문 내용과 함께 MB정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가 올린 전문 등이 원본 그대로 공개돼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정부 “이명박 정책 박정희와 닮은 꼴”
김정일 “박근혜는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


위키리크스가 전격 공개한 전문서를 살펴보면 미국 쇠고기 수입, 한일 독도갈등, 남한의 대북정책 등에 대한 전문내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전문내용이다.

또 미국은 2007년 대선을 전후한 시점에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에는 대선 직전·직후 주한 미국 대사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BBK에 관해 지속적으로 보고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은 BBK 사건으로 인해 이 대통령이 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선 9일 전인 2007년 12월 10일자 전문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대사는 BBK와 관련한 당시 이명박 후보의 위기상황을 보고 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당선된다면 특검수사를 받은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면서 “만약 특검이 이 후보를 취임 전에 기소할 경우 그는 형사상 피의자가 된다”고 본국에 전했다.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알리는 미 대사관의 대선 당일 보고에도 BBK를 언급한 것이 보인다. 2007년 12월 19일 미 대사관은 전문에서 “이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BBK 스캔들로 인해 인수위 시기와 집권 초기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관련 충격 전문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버시바우 대사와 박 전 대표가 설전을 벌인 일도 전문을 통해 공개됐다. 당시 박 전 대표는 “나는 미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그 점을 확신시키는 데 실패했다”면서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좌익(left-wing) 활동가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 5월 9일 보고에 따르면 미 대사관의 버시바우 대사는 쇠고기 협상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실망했다”고 보고했다.

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2년 5월 방북한 박 전 대표에게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끼리 선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제안한 사실도 공개됐다. 박 전 대표가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오찬을 함께하면서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을 소개했다는 사실이 2008년 11월 13일자 외교전문에 기록돼 있다.
위키리크스에는 북한 관련 전문도 공개돼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04년 4월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형폭발사건을 자신에 대한 암살기도로 인정했다고 전문은 밝혔다. 김정일은 암살과 쿠데타를 우려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외교전문에 드러났다.

여기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등장한다. “현 회장은 용천역 폭발사건을 ‘김정일 암살 기도 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 전문에 드러나 있다.

현 회장은 지난 2009년 2월 13일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에게 “김정일은 지난 2004년 열차폭발사건이 자신에 대한 실패한 암살기도이고 휴대전화를 통해 자신의 열차통과시각이 전해졌다고 믿고 있으며 그가 암살과 쿠데타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지난 2009년 2월 26일 ‘현대그룹, 인내와 관용제안’ 이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에서 2월 13일 현 회장과 조건식 현대아산사장,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사장등과 점심을 함께 하며 나눈 이야기를 17개 항목에 걸쳐 상세하게 보고했다.

MB, 노무현에 대한 경멸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직하던 2006년 버시바우 대사에게 당시 노무현 정권에 대해 “반미감정으로 만들어진 정권”이라고 말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버시바우 대사는 2006년 3월 7일 본국에 보낸 전문을 통해 “이명박 서울시장은 노무현 정부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두 여중생 사건으로 발발된 반미 감정으로 만들어진 정권이라고 말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는 독도문제도 전문에 기록돼 있다. 특히 미국이 일본의 입장에서 독도문제를 보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일본의 독도 근해 수역조사계획 발표로 한·일 양국이 대치하던 2006년 4월 토머스 시퍼 당시 주일 미국대사가 독도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정신 나간 짓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된다”고 한국 비하 발언을 했던 사실이 전문에서 드러났다.

주일 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 등에 보낸 극비(secret) 전문에 따르면 시퍼 대사는 2006년 4월 20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과 면담한 자리에서 독도문제에 대해 “일본은 국제법의 허용범위 내에서 권리행사를 하고 있다”고 두둔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비합리적(irrational)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은 한국이 미친 짓(do something crazy)을 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퍼 대사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2008년 5월 29일 기밀전문에는 버시바우 대사가 이상득, 전여옥 의원과 점심을 함께하며 촛불시위와 쇠고기 재협상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내용도 담겨있다.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반쇠고기 정서가 반미 정서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일단 미국산 쇠고기가 상점에 깔리기만 하면 시위국면은 가라앉을 것”이라고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문에 따르면 이 의원은 “부유한 미국 유학파의 청와대 참모들은 시민들이 왜 집회를 하는지 모른다”며 “이 대통령이 정치에 몸담은 적이 없어 ‘정치적 본능’이 형편없는데다 참모들도 국정 운영 경험이 없어 이 문제를 해결할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했다.

이·전 두 의원은 “이 대통령의 지나친 실용주의 기조가 보수주의자들을 실망시키고, 이로 인해 박근혜 같은 친미 보수주의자들은 이 대통령이 (촛불정국이라는)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문에 드러났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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