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박태규 리스트 정·관계 수사 회의론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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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은 많고 물증은 없다” 검찰 이번에도 흐지부지?
70세 고령에 침묵 지키고 있어 난관 봉착 “자백 외에 방법 없다”
박씨 모두 뒤집어쓰겠다 작심침묵 정·관계-박씨 검은 빅딜 의혹도


윤지환 기자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최재경)는 지난 16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71)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할 핵심인물로 지목되는 거물급 로비스트 박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 김양(58) 부회장으로부터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차례에 걸쳐 15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수수한 금품 일부를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씨가 당초 돈을 받은 사실을 부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진술 역시 거짓일 가능성도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박씨가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서 입을 다물자 침묵에 대한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은 박씨를 상대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박씨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데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압박수단 조차 마땅치 않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구속기한 만료(17일) 전날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그를 기소한 뒤 계속해 돈의 사용처를 추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인, 청와대 인사에 대한 연결고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금품거래범죄는 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그러나 기소 후에도 원칙대로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전직 경기도의원 김모(48)씨를 불러 이 은행에서 구명로비 청탁과 함께 받은 4억여 원의 사용처를 캐물었다. 김씨도 이 돈 대부분을 자신이 썼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 2∼4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으로부터 “공적자금 투입 등을 통해 경영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과 4억여 원을 받아 정관계 지인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와는 별도로 이 은행이 3개 특수목적법인을 동원해 추진한 순천 왕지동 아파트 건립과 관련, 분양승인 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변호사 서모(49)씨의 소재도 추적 중이다.

순천시 민선4기 인수위원과 시 고문변호사를 지낸 서씨는,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지난 6월 말 거액을 챙겨 잠적했다.

로비자금 받았지만
로비 없었다?


앞서 지난 6일 박씨는 당초 일부만 인정했던 15억 원의 금품수수 혐의 중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이때 “(박씨의) 진술이 영장 범죄사실에 많이 근접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박씨는 최근까지 “받은 돈은 10억 원뿐이며 대부분을 정관계 로비가 아니라 사적인 용도로 썼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해오다가 구속 이후 진술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씨가 받아간 로비자금의 용처를 일일이 확인하는 등 자금 흐름을 쫓고 있다. 검찰은 추석 연휴 이후부터 박씨가 접촉한 금융당국과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박씨의 개인 혐의 입증과 함께 박씨를 통해 실제 돈이 건너갔을 가능성이 큰 로비 대상자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검찰은 빠른 시일 내 김 부회장과의 박씨를 함께 불러 대질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검찰 수사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박씨가 접촉한 금융당국과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조사다. 박씨의 금품수수 혐의를 확인하는 데 주력해온 검찰이 수사 방향을 로비 대상자로 확대함에 따라 금주부터 로비 의혹 수사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검찰은 통화내역과 골프라운딩 기록 등을 통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구명 로비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지난해 하반기 박씨가 자주 접촉했던 인사들을 파악해 접촉 경위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정관계 인사 본격 조사

검찰은 통화기록을 분석해 대화 내용을 캐묻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사적인 대화였을 뿐 청탁이나 로비 관련 내용은 없다고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또 박씨의 진술을 토대로 김 부회장으로부터 받아간 로비자금 15억 원의 용처를 확인하고 있는 검찰은 이 자금 가운데 일부가 실제로 금융당국이나 정관계 고위층 인사에게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돈의 흐름을 쫓고 있다.

하지만 박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15억 원을 받은 혐의는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닫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침묵으로 버틸 경우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검찰과 박씨 간의 기 싸움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검찰은 박씨가 접촉했던 유력 인사들을 대부분 파악했으나 소환조사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나 정치권 인사와의 연결고리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지만 특정인사를 소환할 수 있는 정도의 단서가 잡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김 부회장으로부터 총 17억 원을 건네받은 후 2억 원을 돌려준 박씨가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를 접촉한 정황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같은 사실을 일부 확인함에 따라 일단 박씨와 접촉한 금감원 관계자를 소환할 방침이다.

박씨는 “일부 자금을 개인적으로 썼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박씨가 수차례 구입한 상품권 등의 구체적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는 점 등에 근거해 허위 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수사 잘 될까?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수사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한상률 에리카김의 갑작스러운 입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갑작스러운 박씨의 입국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미 외국 도피 기간 중 박태규 리스트에 오른 정치권 실세들과 빅딜을 하고 입국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검찰 수사로 박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묻히고 있다는 탄식이 정치권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검찰 주변에서는 박씨에 대한 조사가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는 수사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한 검찰 소식통은 “박씨가 당초 입국 때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며 “박씨가 자신의 금품수수 행위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 일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박씨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는 대신 정치권 인사가 검찰 수사외 재판에 힘을 써주는 ‘빅딜’이 있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최근 다시 탄력을 받고 있어 이같은 회의론도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박씨는 지난해 김 부회장으로부터 총 17억원의 로비자금을 10차례에 걸쳐 건네받는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정관계 로비대상자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은행측과 협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거명된 로비대상에는 전날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고 사표를 제출한 김두우(54) 청와대 홍보수석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씨와 김 부회장으로부터 이 같은 취지의 진술을 확보, 박씨가 로비 대상자들과 접촉한 구체적인 경위와 금품 전달 여부 등을 캐고 있어 앞으로 소환 대상자들이 잇달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또 박씨가 퇴출 위기에 몰린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구명 로비를 하면서 김 수석과 무려 90차례나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지난 16일 확인됐다.

검찰은 박씨의 통화내역을 분석한 결과 김 수석이 청와대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하던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박씨와 이 같이 빈번하게 통화한 사실을 파악하고 박씨를 상대로 통화 내용을 추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가 김 수석과 90차례나 통화하고 골프도 수 차례 친 사실 등은 앞서 파악하고 있었고 최근 금품수수 등 핵심 혐의사실을 추가로 확인해 소환통보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씨와 김 수석이 단기간에 매우 자주 전화통화를 한 사실에 비춰볼 때 김 수석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구명 로비에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 중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이 증자를 위해 자금을 빌리는 과정에서 대가 없이 130억 상당의 골프장 회원권을 은행에 제공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재판을 받던 중 도주한 골프장 운영업체 T건설 대표 정모(49)씨에 대해서도 담당 검사를 지정해 소재파악에 나섰다.

검찰은 수사 초기인 지난 4월 초 캐나다로 출국해 소환에 불응한 채 5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가 지난달 28일 자진귀국한 박씨를 체포,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구명 로비 대가로 15억원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지난달 30일 구속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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