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 사장 ‘가스관’ 논의 러시아 방문 변죽만 울릴수도


북한 통과 가스관 “사실상 불가능한 프로젝트” 우려도
북한·러시아·중국 협의 가스관 공사 확정 쉽지 않을 듯


윤지환 기자 =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지난 14일 남·북·러 PNG(파이프천연가스) 프로젝트 실무협의차 러시아를 방문하고 지난 17일 귀국했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현지를 찾은 주 사장은 이 사업의 러시아 측 파트너인 가즈프롬 주요 관계자들을 만나 PNG 프로젝트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과 러시아가 파악하고 있는 북한 측 동향을 전해 듣고 왔다.

주 사장의 러시아 방문 결과를 전달받은 청와대는 빠른 시일 내 관련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주 사장이 현지에서 전달받은 러시아와 북한의 태도는 일단 낙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향후 이 프로젝트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그 이유다. 당장 가스관 연결을 위한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대강 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에 추가로 천문학적인 가스관 공사 비용이 발생하게 되면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가스관이 향후 동북아 정치외교의 핵심 요소로 부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적인 여건에 따라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지역 생산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을 통해 남한에 공급하려는 PNG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된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스공사가 앞으로 실무적으로 일을 다뤄나갈 것임을 전하고는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고 북한도 크게 반대하고 있지 않은 만큼 빠른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그러나 중국의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가능성도 있으나 수요처 입장에서 보면 중국, 한국, 일본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경쟁하는 부분도 있다”고 대답했다.

정세변화 돌파구 가스관

그동안 남ㆍ북ㆍ러 3국 정상 차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온 이번 사업이 점차 실무차원의 협상으로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우리 측 실무총책임자 격인 주 사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프로젝트가 실현될 조짐이다. 특히 주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1990년대 초 현대건설 회장 시절 구소련 정부와 가스관 사업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 현대종합상사 상무로서 실무를 도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정확히 읽고 사업방향 설정과 함께 실무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핵심 인사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 방문은 공식 협상과 합의 도출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러시아의 사업구상과 계획을 듣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동안 북한 측과 실무협상을 벌여온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북측의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하고 사업추진의 타당성을 설명한 것으로 보여 단순한 실무접촉 차원을 넘어 진전된 협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번 가스공사-가즈프롬 차원의 접촉은 다음달 24~2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ㆍ러 경제공동위원회로 이어지며 가스관 협상에 가일층 탄력을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측에서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러시아 측에서는 빅토르 바사르긴 지역개발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바사르긴 장관은 북ㆍ러 경제공동위 위원장을 맡아 지난달 말 북한 측과 경제공동위원회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가스관 연결사업과 관련한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오는 11월이 이번 가스관 협상의 중요한 분수령을 맞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11월 초ㆍ중순 모두 세 차례 회동할 기회가 있으며 이중 한차례 양자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관측이다.

두 정상이 만나는 계기는 11월 3~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12~13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그리고 18~1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이 가스관 사업과 관련해 원칙적 수준의 합의만 하더라도 전반적인 협상 흐름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핵 6자회담 재개 흐름이 교착되는 가운데 남ㆍ북ㆍ러 가스관 협상이 정세변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외교가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가스관 문제는 북ㆍ러간 통관료

외교가에서는 북ㆍ러간 통관료 합의가 이번 프로젝트의 조기실현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정부 핵심 당국자는 “북한이 가스관 연결 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통관료 문제”라며 “관건은 북한이 어느 정도의 통관료를 요구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관료와 관련해 북한이 연간 1억 달러 정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간 우리 정부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러시아와의 협상과정에서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북러 간 합의가 어떻게 매듭지어지느냐가 가스관 프로젝트 진행속도를 결정짓는 1차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남북경색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스관 사업이 급속히 진행되기는 쉽지 않다며 과도한 기대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가스관 통과 루트에 따라 북한이 공개하기 싫은 시설도 있을 수 있고 그런 모든 문제들을 협의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일단 북·러간 협상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한ㆍ러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가스관 사업에 대해 실질적 합의를 도출해낼지 미지수라는 신중론이 좀 더 우세하다.

러시아 측이 시장확대 차원에서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풀어야할 기술적 난점이 적지 않고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러시아는 일단 한ㆍ러, 북ㆍ러 간 협의를 별도로 진행한 뒤 그 결과를 보고 가급적 연내에 남ㆍ북ㆍ러 3자 간 협의를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대만큼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가스공급의 안정성이 고려돼야 할 부분이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가스공급을 중단하는 사태가 빈번할 수도 있어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러시아는 카프카스와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체첸 등에 가스공급을 했으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가스공급을 중단한 예가 있다. 이에 일단 에너지를 받아 쓰다보면 에너지 속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