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분노의 도가니’ 끝나지 않은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인화학교 교직원 6명, 나이·성별 관계없이 학생들 성적 유린
경찰청 “유사 범행 가능성 등 의혹 차원에서 수사 벌이는 것”


청각장애 특수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 실화를 다룬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돼 뜨거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에 대한 재수사 요구와 함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 광주 인화학교에서 잇따라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이 시작된 지 5년여 만에 알려졌지만,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이 학교에서 학생 간 성폭행도 발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성폭력 가해자가 복직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처럼 영화를 계기로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자 경찰청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전면수사에 나섰고, 광주시교육청도 가칭 ‘인화학교 성폭력사건 대책반’을 구성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 사법처리가 마무리 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뒷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위치한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에서는 2000년부터 성범죄가 계속돼 왔다. 이 학교와 부속 복지시설인 인화원의 교직원 6명은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학생들을 성적으로 유린했다.

가해 교사 1명 복직

2004년, 이 학교 교장 김모(62)씨는 청각 장애 4급인 A(13)양을 교장실로 강제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학교장뿐 아니라, 행정실장, 교사 등도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지닌 어린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성폭행했다. 행정실장과 재활교사는 이 사건 말고도 이미 청소년 강간죄 등으로 이미 한 차례 실형을 선고 받은 적 있었다.

2000년부터 무차별적으로 이어져 오던 성폭력은 2005년 6월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한 피해 학생이 상담을 하게 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이후 상담사는 상담 결과를 토대로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2005년 7월에는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가 결성됐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관계자는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이 최초로 알려질 때는 피해자가 1명이었으나, 이후 조사를 통해 10여 명의 피해자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인화학교는 지리상으로 굉장히 고립된 곳이다. 또 피해를 당한 학생들이 인화원에 살고 있는 아이들로 보호자나 가족들이 없었고, 가족이 있더라도 가족 역시 장애인이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외부에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었다”며 “학교 안에서 교사들에게 사건을 알리더라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목격자에게 진술번복 유도를 한다거나 진술을 못하게 하는 등 조직적 은폐 정황이 있다”고 전했다.

2005년 11월 국가인권위에 성폭력 사건을 진정해 인권위의 조사가 시작됐다. 인권위는 2006년 8월 김모(58) 행정실장 등을 비롯해 가해 교직원 6명을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학생들도 66일간 등교를 거부하고 교장에 밀가루를 투척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인권위가 고발한 6명에 대한 최종 형량은 2명 실형, 2명 집행유예, 2명 공소시효 소멸에 따른 공소기각과 불기소였다.

김 교장과 박모(60) 생활재활교사는 2심에서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학생들을 성추행한 전모(45) 교사와 행정실 직원 김모씨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받지 았다. 행정실 직원 김모씨는 복직했다가 지난해 초 해직됐으며 전모 교사는 2008년 1월 인화학교에 복직했다.

동급생 간 성폭행 사건도

이 같은 가해자 형량에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죄질이 나쁜데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것. 이와 함께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재수사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등 진상규명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법원 판결이 끝난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소송으로 심리 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인화학교에서 학생끼리의 성폭행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에 따르면 인화학교 부속 복지시설인 인화원에 거주하고 있던 B(15)군이 또래 여학생 2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했다는 신고가 지난해 7월 대책위에 접수됐다.

광주지방경찰청 수사결과 B군은 4월부터 5월 초까지 인화원에서 여학생 2명을 성폭행 또는 추행했다. B군은 지난해 5월 대전 장애인체전에 교직원과 함께 참석했을 때에도 숙소에서 성폭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B군은 지난 1월 법원으로부터 보호처분과 수감명령을 받고 다른 학교로 전학했으며, 피해 여학생들은 다른 시설에서 보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번 학생들 간 성폭행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피해자다. 2005년에 불거진 교직원 성폭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장선상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사건의 책임은 법인과 학교 측에 있다. 지자체가 법인과 학교에 대한 조사를 벌여 적절한 수준의 처벌이 이뤄져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또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많은 성폭행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법인은 학교를 위탁해 운영할 자격이 없다”며 “궁극적으로 법인은 인화학교라는 특수학교를 자진해서 폐교하거나 위탁을 취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당 사회복지법인이 인화학교 명칭을 변경하려다 행정 당국의 거부로 무산된 사실과 관련해 대책위 관계자는 “명칭 변경을 하거나 다른 장애 유형을 받아들이는 인권시설 전환움직임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구체적 사과 등이 이뤄진 이후에 판단해 볼 문제다”며 “명칭 변경이나 시설 사업 변경 시도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영화 도가니의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해 경찰이 전면적인 재수사에 착수했다.

기로에 선 인화학교

지난달 28일 경찰청은 “광주 인화학교에 남아있는 원생들을 포함한 장애인들의 인권과 안전 확보하고 국민적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와 광주지방경찰청 소속 성폭력 전문수사관 등 총 15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가해 교사들의 추가 성폭행 등 피해사례를 수집·전담 수사 ▲관할 행정당국의 관리 감독 적정성 여부 ▲인화학교 내부의 구조적 문제점 및 비리 여부 등에 대해 중점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단서가 확보돼서 수사한다기보다는 인화학교 내에서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 장기간 지속 반복되고 사건이 노출되지 않았던 점 등에 미뤄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 때문에 수사에 착수했다”면서 “또 다른 유사 범행이 발생했을 가능성 등의 의혹 차원에서 수사를 벌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도 지난달 29일 “수화통역사를 포함하여 9명으로 구성된 특별감사반을 인화학교에 긴급 투입하여 감사에 착수했다”며 “이번 감사에서는 2010년 성폭행사건, 학사·회계 등 학교운영 전반 등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은 인화학교에 대한 위탁교육 취소 또는 학교 폐쇄 등에 대한 법적 검토에 들어갔다.

광주시교육청은 또 “인화학교 예산 지원을 재검토 중”이라며 “교직원 인건비와 학생교육경비를 재외한 특별재정수요사업비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올해 예산부터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13년 개교하는 공립 특수학교(가칭 선우학교)에 청각장애 학생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로 했으며 인화학교 재학생들이 일반학교 특수학급에서 교육 받기를 희망할 경우 특수교사 및 수화통역사를 배치할 계획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인화학교에 대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시민사회단체, 유관 기관 등과 연계하여 심리 정서적 안정 도모와 치유를 위한 심리치료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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