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학생, “학교에서도 설 자리 없다”


김장중 기자 = 지적장애를 앓던 경기도 평택시 A중학교 3학년 학생이 같은 반 급우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이 학교 건물 4층에서 떨어졌다. 이 사고로 백모(당시 3학년)군은 지적장애(3급)·척추장애(5급)를 얻어 현재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장애아 백군에게 떠넘기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자, 학교 측은 상부기관인 평택교육지원청(이하 해당교육청) 및 학교안전공제회(이하 공제회)에 사고발생통지서를 사실과 다르게 조작·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에는 ‘위험한 장소에서는 항상 안전사고에 유의토록 학생들을 지도해 왔고, 이 사고의 구체적인 사고 원인으로는 학생 부주의에 따른 추락’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당시 4층 교실 창문에는 방범창은커녕 창살조차 설치가 안돼 학교 측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학교 측 보고에 학부모 백모(여·54)씨는 크게 ‘화’났다. 백씨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던 우리 아들이 평소에도 자주 같은 학교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등 ‘왕따’로 생활해 심적으로 큰 고통을 겪어왔다”면서 “이같은 장애아 ‘왕따’에 대한 사실을 학교 측이 알고도 우리 아들에 대한 보호는커녕 진실을 왜곡하는 등의 교육자로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씨는 또 “학교 측이 상부기관에 보고한 자료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사고경위 등을 위조 및 조작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거짓 보고’에 화난 백씨는 결국 지난 7월 변호사를 선임해 학교를 상대로 법정 소송 중이다. 그는 “조직적으로 은폐 및 사실 왜곡을 일삼는 학교 측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결국 장애아 추락 사고에 대한 학생 ‘자해’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학부모 “사고 조직적 은폐·사실 왜곡하는 학교, 존재 가치 없다”
학교 측 “장애아 학생의 부주의에 따른 ‘추락’, 도의적 책임 졌다”

평택 A중학교서 장애아 성폭력보다
심각한 수준의 장애아 인격 모독 있었다


최근 ‘도가니’ 영화로 사회가 들끓고 있다. 청각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의 성폭행 사건, 대한민국은 지금 깊은 충격에 빠져 있다. 이렇듯 사회편견에 빠져 장애아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곱지 않은 시선, 장애아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이제 시작일 뿐, 대한민국이 장애아를 바라보는 전체 시선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울부짖는다.

장애아 추락, 상반된 증언

백군 사고는 장애아에 대한 성폭력은 아니지만, 장애아 친구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이 사회의 현 모습이기도 하다.

2008년 9월 18일 오후, A중학교 3학년 8반 교실. 지적장애를 앓던 이 학교 학생 백군이 4층 창문에서 떨어졌다. 같은 반 급우들의 괴롭힘이 백군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이날 백군은 같은 반 급우로부터 인격적인 모독은 물론 심한 폭행까지 당했다.

백군이 쓴 진술서<사진>에는 당시 숨이 막혔던 상황이 또박또박 적혀 있다. 백군은 “이날 같은 반 급우한테 학용품 좀 빌려달라고 했다가, 그냥 되돌려 줬으나 이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허리띠를 제 책상 다리에다 걸어 놓고 잡아당기며 괴롭혔다”면서 “이 상황에서 친구가 아빠는 ‘양키’, 엄마는 ‘병신년’이라고 말하는 등의 심한 인격적 모독이 가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구가 갑자기 나를 때렸고, 다른 반 친구들까지 교실로 모여 ‘싸워라, 이겨라, 저 새끼는 병신새끼야, 싸울 줄도 몰라’ 등의 외침이 이어졌으며, 친구가 다시 내 목을 조르며 창문 옆 벽으로 몰아붙였다”고 말했다. 또 “목이 졸려 발버둥치는 상황에서도 다른 친구들이 ‘어디어디 때려라, 찌질이다’ 등의 심한 말을 퍼부어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백군은 “평소에도 급우들로부터 놀림을 당한 처지라, 당시 상황이 무섭고 혼란스러워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만 하겠다는 생각만 했고 그 이후로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진술서 마지막 부분에는 “앞으로 정신적·육체적 장애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생활, 또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의문이 생긴다”며 “더욱이 지금 학교에서 나에 대한 무관심과 비협조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더욱더 많은 환멸을 느낀다”고 써있다.

손 놓은 학교 측, 사고 은폐(?)

이같은 백군의 진술에도 학교 측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학교 측이 상부기관에 보고한 사고경위서에는 백군의 주장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당시 학교 측이 해당교육청 및 공제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사고 당시 백군이 같은 반 급우와 싸우다가 혼자 흥분해 의자를 내던지는 등의 과정에서 혼자 손을 헛짚어 학교 4층 교실 창문에서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학교 측은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학생들의 주장을 모아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 관계자는 “백군의 몸 상태를 알아 그동안 많은 선생님들이 더욱 많은 관심으로 이 학생을 돌봤다”면서 “학부모 측이 주장하는 사고의 임의적인 조작이나 은폐 등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일부 학생들의 주장은 다르다. 최근 학부모 백씨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사고 당시 백군과 싸우던 B군이 폭행은 물론 백군 부모에 대한 좋지 않은 놀림을 했고, 평소에도 이 친구뿐만 아니라 주위 대부분의 친구들이 백군을 바보나 멍청이로 놀려왔다”고 전했다. 학교 측 주장과는 다른 백군의 학교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서로 엇갈린 법정 다툼

사고가 나자 학교 측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사고발생통지서를 작성해 상부기관인 해당교육청과 공제회 등에 보고했다. 이와 함께 A학교는 백군이 병원 치료를 받던 기간 중 학부모 백씨를 찾아가,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에는 ‘당시 교내 추락사고로 백군이 흉부외과 8주·정신과 4주·정형외과 14주 등의 진단을 받았고, 이에 따라 학교 측이 도의적 책임을 져 1050만 원의 병원비를 지불한다’고 작성돼 있다. 또 ‘위 상해와 관련해 앞으로 어떠한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합의서에도 백군의 사고를 ‘상해’로 기록했지만 해당교육청과 공제회 등에는 학생 부주의에 따른 ‘추락’으로 결론짓고 보고를 했다.

학부모 백씨는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천만 원의 병원비를 지불하기 힘든 상태였는데 학교 측 관계자들이 찾아와 일단 병원비로 이 돈을 사용하고 공제회를 상대로 보험금을 수령토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합의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제회는 학교 측이 낸 ‘사고 경위서’와 ‘학생 사안 보고서’ 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백군을 ‘왕따’ 피해자로 인정했다. 공제회는 백군 사고에 대한 보험처리 여부를 놓고 조사를 벌이다가 이같은 학교 측의 일방적 주장을 뒤엎었다.

공제회는 “가해자가 있는 고의적인 사고의 경우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며, 당사자 간 원만한 해결을 권고한다”는 반려 이유를 내놨다. 다급해진 학교 측은 최근 공제회를 상대로 한 법정다툼을 준비 중이다.

학교 측 관계자는 “당시 병원비는 학교 내 건물에서 백군이 떨어졌기 때문에 재학생과 학부모 등을 상대로 성금을 모아 병원비를 지급했다”면서 “공제회 결정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공제회를 상대로 한 법정 소송으로 백군 치료비 및 보험료를 받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장중 기자] k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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