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없는 리비아, 시험대 위에 올랐다


전후 재건 사업 둘러싼 국제사회 이권다툼과 부족 갈등 우려 제기
정부구성에 진통 겪은 이라크 답습 않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 필요


민주화 시위와 민중봉기에 뒤이은 내전으로 도피 중이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고향 시르테 인근 하수관에서 붙잡혀 최후를 맞았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카다피가 사망함에 따라 8개월간 이어진 리비아 내전이 사실상 종식됐다.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지역 반정부 시위는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의 시발점에 선 리비아 앞에는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리비아 임시정부 격인 국가과도위원회(NTC)는 리비아의 해방을 공식 선언하며 새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NTC는 “민주주의와 화해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자축했지만, 리비아의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민주 정부 구성과 140여개 부족의 통합, 경제재건 등이 새 정부 체제가 풀어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권력 공백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리비아 국가 재건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이권다툼, 부족 간 갈등 등의 우려가 제기되면서 민주화로의 이행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족 통합이 최우선 과제

공공의 적이었던 카다피의 사망으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부족 간 갈등이 불거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리비아 재건 과정에서 카다피 장기 독재 집권 기반이었던 ‘오일머니’의 분배를 둘러싼 부족 간 갈등이 빚어질 공산이 높다. 때문에 유력 부족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돼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오랜 철권통치 끝에 찾아온 민주화 바람에 부족 간 갈등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 부족 통합과 안정적 제도적 기구 구성이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다. NTC 내부에서 발생한 분란과 반군 간에 빚어진 무력 충돌 등도 각 부족 간 약한 연결고리와 이권 다툼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이 “새 정부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지배될 것”이라며 “리비아는 ‘온건한 이슬람(moderate Muslim) 국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슬람 정체성을 중심으로 소수 부족까지 끌어 안아 리비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NTC는 140여개의 부족들로 구성된 리비아의 구심점을 ‘이슬람 정체성’에서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 카다피 사망 이후 빚어진 권력 공백 상황에서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확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비아 내에 알카에다 지부 ‘리비아 이슬람 전투 그룹’ 등 이슬람 무장 세력이 존재하는 만큼 잠재된 이슬람 세력의 부상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리비아 내 이슬람주의자들이 NTC가 제시한 리비아 향후 국정방향에 반대를 표시하는 것도 이 같은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NTC와 서부 이슬람 반군 세력의 대립 구도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친서방 정부가 수립될 경우 카다피 체제 붕괴 이후 리비아 전역에서 목소리를 키워 온 이슬람주의자들이 반기를 들 가능성이 높다. 또 과거 제 2차 세계 대전처럼 강대국들의 각축전 양상이 리비아 내에서 벌어질 경우, 또 다른 내전상황도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리비아가 종파 및 민족 간 분열로 정부 구성에 진통을 겪은 이라크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리비아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8개월 가까이 이어져 온 내전이 남긴 후유증을 신속히 봉합하고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정부로 최종승인 받을 필요가 있다. 특히 140여개에 이르는 부족을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석유수출 재개와 카다피 독재 정권하에서 부정 축재된 해외재산을 리비아 재건 사업에 사용하는 등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는 백지상태에서 새 정부를 구성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차기 지도자로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 등이 꼽히고 있으나 리비아 전 지역을 아우를 만한 리더십을 갖춘 공고한 대체세력이 없다. 카다피 측 인사 이외에 국정 경험이 풍부한 실력자들이 부족하다는 점과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부족 간 권력 분점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리비아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석유’ 둘러싼 서방국가 각축전

매장량 440억 배럴에 이르는 풍부한 원유도 리비아 앞에 놓인 또 다른 난제가 될 수 있다. 파괴된 유전을 정상 복구하는데 까지는 2~3년 가량 걸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막대한 석유이권을 차지하려는 서방 국가들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이다. 리비아내전에 프랑스가 투입한 비용은 약 2억 유로에 달하며, 영국도 리비아 내전 초기 석 달 동안 2억5000만 파운드를 투입하는 등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부었다.

이들 국가는 리비아 군사작전을 전두지휘해온 만큼 석유자원 개발과 복구사업의 주도권을 쥘 명분을 갖고 있어 리비아 재건사업에 대한 입김이 가장 셀 전망이다. 프랑스가 리비아 과도정부를 전폭 지지하는 대가로 리비아 생산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은 프랑스와 영국에 비해 군사작전에 소극적으로 개입했지만 석유 이권 등 경제적 이권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리비아 내전은 막을 내렸지만 리비아 석유산업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BBC방송은 “석유에 눈독 들이는 서방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리비아 정치권은 이해관계에 따라 급격히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서방 국가들의 석유 이권 확보 경쟁도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가 리비아의 민주화를 위한 지원을 뒤로한 채 리비아 이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에 골몰한다면 리비아에는 또 다른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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