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과 화합’이 필요한 시대 마지막 메시지
- 정치 복원 안 되면 대한민국 공동체 붕괴 위기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거산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차남 현철씨는 지난 22일 고인이 필담을 통해 ‘통합과 화합’이라는 정치적 유훈을 남겼다고 밝혔다. 아마도 그는 이 세상을 떠나며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한 것이 ‘통합과 화합’이라 생각한 걸로 보인다. 역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열과 대립’이 깊었으면 그런 걱정했을까?

대한민국의 ‘분열과 대립’은 정치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정치가 국민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 간다. 여야는 우리의 미래 사회에 대한 국가의 비전과 정책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당을 ‘친일독재’나 ‘좌파무능’이란 딱지를 붙여 자신의 존재를 부각한다. 아직도 20세기의 낡은 이념과 진영 논리를 동원한다.

저성장과 양극화 속에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득격차는 더 벌어져 우리의 공동체가 무너질 위협에 놓여 있는데, 정치는 국정교과서라는 수십년 전의 유물을 다시 꺼내 국민을 혼란의 늪 속에 빠뜨리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우선해야 하는 데, 낡은 이념과 진영 논리를 앞세워 국민을 둘로 나눠 싸우는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

청와대는 여당을 자신의 국정 과제를 관철시키는 거수기로 생각하고, 여당에게 야당은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가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를 관철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악당으로 여긴다. 야당에게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 아니라 하루 속히 정권에서 끌어내릴 청산의 대상으로 여긴다. 정치가 품격있는 대화와 협상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정적으로 만들어 오로지 투쟁의 대상으로 생각하니 정치는 항상 싸움터로 변질된다.

정치가 여야의 싸움터가 되다보니 국민은 정치를 혐오하고, 점점 더 관심을 잃어간다. 정치가 국민의 뜻과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위정자들의 명령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전락하니 국민은 더욱 이상 정치를 외면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참여는커녕 관심조차 갖기를 싫어한다. 그동안 국민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가 87년 민주화 이후 더 후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적으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국민의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고 김영삼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은 불가능한 것인가? 우리 정치는 계속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가? 지금 이 순간 고인을 떠나 보내며 여야 정치권은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첫째, 대한민국 정치가 더 이상 이념과 진영 논리에 빠져 상대를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이념투쟁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상호교차하며 책임을 맡아왔다. 지금의 여야가 상대당의 존재를 부정하며 싸우는 것은 국민의 선택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이 충분히 동의하지 않는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는 정치행위는 삼가해야 한다. 국민을 둘로 나누어 이념투쟁으로 격화되는 대부분의 정책은 국민의 충분한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집권한 시기에 특별한 업적을 남기려는 욕심 때문에 국민을 둘로 나눠 끝없는 이념투쟁에 시간을 보낼 정도로 대한민국 상황이 넉넉하지 않다.

둘째, 여야 모두 지금은 국민의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20세기 낡은 이념과 진영 논리가 아니라 세계화와 정보화, 저성장과 양극화에 시름하는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며 선진국의 문턱에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쏟아지는 사회적 문제를 방어하기에도 역부족이다. 쏟아지는 사회적 문제들, 소득격차, 일자리 부족, 비정규직, 청년실업, 전월세, 고령화, 저출산 등 오죽하면 헬조선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이제 대한민국 정치권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우리의 새로운 과제가 무엇이고, 국가의 비전은 무엇인지 대답하는 경쟁을 해야 한다. 국민들과 우리의 미래세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지금의 어려움보다 미래가 불확실한 데 더 고통이 있다. 이제 간곡히 당부한다. 여야 정치권은 오로지 국민의 삶과 직결되고, 국민의 생활과 관련된 특히 먹고사는 문제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셋째, 정치가 보다 품격있고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와 협상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 여당, 야당이 서로 죽여할 적이 아니다. 우선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총동원하여 여야당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아선 안된다. 대통령은 여야당과 국회를 존중하고 국민 의사를 충분히 경청하고 소통해야 한다.

여당은 야당을 항상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끌어 가는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을 하루 속히 교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국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면서도 국정운영에 협력하는 책임있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직권상정과 국회파행이 더 늘어난 것은 우리 정치가 반성해야 지점이다.

넷째, 국민이 정치에 강력한 힘을 작용할 수 있도록 시민 민주주의가 더 강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시민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확대된다는 것은 법과 제도적으로도 정치가 혁신되어야 하고, 시민의 민주주의가 더 규범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자유와 우리 공동체가 미래의 위험을 방어하고, 더불어 함께 잘사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시민 민주주의가 필수적 요건이다. 우리는 정치가 잘못되었을 때 국민이 얼마나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최근에도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세월호와 메르스사태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도 경험했다. 시민에 의해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정치권력은 결국 부패와 독선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정치가 자신의 정략적 이해만을 위해 싸우고, 그로 인해 국민은 정치를 외면할 때 그 국가와 국민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고 김영삼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 우리의 노력없이 쉽게 이루질 순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수 많은 사회갈등 속에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꼽은 것이 빈부갈등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순으로 나타났다. 정치가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만들지 못하면 우리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도 지켜질 수 없다. 다시 한번 고인의 유훈 앞에 대한민국 정치권의 깊은 반성과 성찰을 기대한다.  <홍준일 조원씨앤아이 정치여론연구소 소장>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원C&I 정치여론연구소 소장
노무현대통령 청와대 정무행정관
국회의원연구단체 한국적 제3의길 연구위원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