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 기지개

화제를 일으킨 개봉작도, 흥행작도 전무하다시피했던 한국영화계가 최근 잇따른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흥행돌풍의 시발점이 된 영화는 단연 ‘화려한 휴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로 김상경, 이요원, 이준기, 안성기 등 쟁쟁한 스타들이 주연을 맡고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개봉 당시 실제 국가사태를 다룬 영화로 남북전쟁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언급되며 ‘흥행은 따 논 당상’이라는 추정이 앞섰지만 이제 5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등 기대 이상의 반응을 일으키며 국민영화로 자리잡았다. 1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관객들이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며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화려한 휴가’의 성공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7월26일 영화 ‘화려한 휴가’ 개봉 이후 관람객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이면 영화 이야기를 화두에 올렸다. 개봉 한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8월15일자로 영화 관람객 수는 총540만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고 관람평은 ‘슬펐다’는 공통된 의견과 동시에 다양한 평가가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한동안 침체됐던 한국영화계에 불을 지폈다. 딱히 화제가 됐던 개봉작도, 흥행작도 전무했던 한국영화위기론이 이제 ‘화려한 휴가’와 ‘디 워’ 등으로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는 남녀노소,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의무적으로 관람한 ‘국민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력, 실제와의 비교, 당시 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10대들의 분노와 이해력 부족 등으로 세대가 다른 관람객들은 다양한 관람후기를 언급한다.


세대별 다양한 반응

개봉 한 달째 500만 관객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화려한 휴가’의 상영관은 만원이다. 중년의 부부들,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는 노부부, 홀로 영화를 관람하며 생각에 잠긴 아저씨도 있다. 고등학생들도 많이 관람한다. 단체관람 예약도 활발하다. 학생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뭔지
도 모른 채 웃으면서 영화상영을 기다린다.

영화상영 중에는 훌쩍거리는 소리와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는 장면 앞에서 20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의 상식으로는 사건의 행위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 더 답답하고 슬프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다소 입이 거친(?) 학생들은 당시 사건을 주도했던 정권에 대한 욕지거리를 한껏 하며 극장을 빠져나간다.

5·18에 대해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자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20~30대의 관람객들은 이론으로 잔인했다고 들었던 장면들을 영화로나마 눈으로 확인하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광주에 살지 않았다고, 그 시대가 지난 후 태어났다고 아주 오래된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의 억울하고 슬픈 심정을 떠올리며 동화되려 노력한다.

5·18을 직접 목격 혹은 경험했거나 동시대 학생으로서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영화를 보며 회한에 잠긴다. 실제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모 인사는 “실제는 더했어…”라고 쓸쓸히 말한다. 사실 영화에서는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더라도 잡힌 후 폭도로 몰리며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장면, 혹은 여성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 등은 등장하지 않았다.

5·18이 일어났던 1980년 당시 광주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언론의 보도만 보면서 사실과 다르게 알아왔다.

당시 서울에 거주했던 50대의 모 관람객은 “당시 언론에서는 (광주항쟁에 대해) 정확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 정말 폭도들, 빨갱이들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양한 홍보전

이처럼 영화 ‘화려한 휴가’가 탄생되어 오늘의 대박흥행을 이루기까지는 5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김지훈 감독은 사실 71년생의 대구 출신으로 80년 광주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경험하지 못한 세대. 단지 “폭동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들었을 뿐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김 감독이 대학에 진학한 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점차 알게 되면서 ‘광주 사람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 늘 느껴왔었다고 한다.

결국 훗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다졌고, ‘기획시대’ 제작사와 뜻을 같이해 오늘의 ‘화려한 휴가’가 탄생됐다.

‘화려한 휴가’의 홍보전은 다양하고도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광주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등 많은 프로그램이 존재했지만 ‘화려한 휴가’가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분명 치밀한 홍보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개봉 전 영화 홍보진에서는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소재와 배우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다수의 설문조사를 거쳤고 그 결과 아직도 5·18이라는 소재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많다는 검증을 얻었다. 홍보진은 영화의 제작보고회를 5월에 맞췄고 민감한 소재인만큼 지역색을 배제하기 위해 서울과 광주 두 곳에서 열었다. 언론 시사회 역시 지역색을 고려, 서울을 비롯한 4대 도시에서 열었다.

7월 26일 영화 개봉 이후에는 감독과 출연진들의 무대인사에 주력했다.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3주에 걸쳐 서울 뿐 아니라 경기·경상·전라도 등지의 극장을 찾아 인사했다. 지난 8월 15일에도 몇몇 극장에서 무대인사를 가졌다. 개봉 4주째가 되도록 무대인사를 갖는 영화는 이례적인 경우다. 또 영화흥행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지난 14일 518만 관객돌파의 기념파티도 열었다.

‘화려한 휴가’는 개봉 4주가 되도록 하루관객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홍보 관계자는 밝혔다. 이처럼 관람객 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단체관람 때문인데, 학생
들, 각종 회사, 시청·구청 및 정부기관에서도 단체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관람객 수가 하향세를 보이지 않는만큼 영화는 이제 장기상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홍보진은 각 기관에 계속 영화상영 권유 공문을 보내며 단체관람을 유도하고 마케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 한다.

홍보 관계자는 “영화 흥행에 대해 관계자들마다 기대치가 다르다. 회사에서는 손익분기점 450만을 넘기를 바랬고 이미 넘었다. 영화 자체의 의미로 보면 역사적인 사건이 재연된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으면 한다. 그래서 단체관람을 더욱 유도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 영화가 극장가를 주도하고 있는 올 여름, 한쪽에서는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화려한 휴가’가 맞서고 있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극장가를 휘어잡았다.

‘화려한 휴가’가 남긴 것은 한국영화계 부활 뿐만은 아니다. 영화는 27년 전의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제야 500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재연시켰고 결과는 분노와 충격, 회한 등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한 감독의 꿈과 제작진들의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를 돌아보게끔 만드는 괴력을 보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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