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 사전 접촉·비공인 에이전트 활개로 몸값 급등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매년 초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계약선수(FA)시장이 올해도 700억 원 규모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가 됐다. 아직 4명의 FA선수들이 남아있는 가운데 최대어인 김현수가 국내 잔류를 선택한다면 단 번에 800~900억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반복되는 FA열기에 구단들 역시 늘어나는 지출로 심기가 편하지는 않다. 더욱이 선수들 사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유명무실한 템퍼링(사전 접촉) 금지 규정덕에 비정상적인 시장으로 변질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 박석민 선수 <뉴시스>
역대 최대 규모, 사전 접촉·비공인 에이전트 활개로 몸값 급등
 최고금액 박석민, 실질 세후 소득 MLB 진출 박병호 보다 많아


올해 총 22명의 선수가 FA 시장에 나온 가운데 지난 4일까지 총 18명의 선수들이 원 소속팀과 계약하거나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

삼성 라이온즈 출신 박석민(NC)은 4년 최대 96억 원에 계약을 마쳐 역대 최고액을 갱신했고 정우람(한화)은 4년 총액 84억 원으로 불펜투수 최고액을 갈아 치웠다.

더욱이 18명 중 13명의 선수들이 총액 30억 원 이상의 금액에 계약해 선수 입장에서는 비교적 좋은 대우를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역대 최고로 많은 대어를 놓고 구단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2016시즌의 판도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올해 화끈한 투자로 큰손에 등극한 구단은 단연 한화 이글스를 꼽을 수 있다. 한화는 내외부 FA를 잡는데 올해 191억 원을 투자했다.

김태균과 조인성을 각각 4년 84억 원, 2년 10억 원으로 붙잡았고 투수 최대어인 정우람과 심수창(4년 13억 원) 등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 김태균 선수 <뉴시스>
FA 큰손 한화 등극
NC는 홈런 날려

한화의 적극적인 투자는 2013시즌이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당시 한상훈(13억 원), 박정진(8억 원), 이대수(20억 원) 등 내부 FA를 잡기 위해 41억 원을 투자했고 외부에서는 정근우(70억 원), 이용규(67억 원)를 붙잡으며 137억 원을 쓰는 등 당시 무려 178억 원을 기록해 한 구단이 FA시장에서 쓴 금액 중 역대 최고액을 갈아치운 바 있다.

지난해에는 대어들이 원 소속 구단과 계약을 하면서 96억 원에 그쳤지만 이번 시즌에는 대어가 가득한 만큼 아낌없는 쇼핑을 감행했다.

한화의 화수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 시즌 중반 들어와 돌풍을 일으켰던 괴물투수 에스밀 로저스와 역대 외국인 선수 최고액인 190만 달러에 재계약해 또다시 화끈함을 선보였다.

롯데 자이언츠 역시 큰손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알뜰 쇼핑을 마쳤다. 롯데는 실력이 준수한 투수를 집중적으로 영입해 마운드를 대폭 강화했다.

우선 내부 FA인 송승준을 4년 40억 원으로 잔류시켰고 SK 필승조 윤길현을 4년 38억 원, 넥센의 마무리 손승락을 4년 60억 원에 영입해 총 138억 원 규모를 자랑했다.

이번 FA시장에서의 대형 홈런은 NC 다이노스가 터뜨렸다. NC는 삼성이 붙잡지 못한 야수 최대어 박석민을 FA 사상 최고액인 4년 최대 96억 원에 영입, 나성범, 에릭 테임즈, 이호준, 박석민으로 구성된 막강 중심타선을 완성했다.

특히 취약 포지션인 3루에 수비 잘하는 거포 자원을 보강해 본격적인 1위 도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넥센, SK, 삼성은 이렇다 할 FA 영입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다음 시즌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다.

넥센은 외야수 이택근과 투수 마정길을 각각 4년 35억 원, 2년 6억2000만 원에 잔류시켰지만 마무리 손승락과 안타왕 유한준을 떠나보내 상당한 전력 차질을 빚게 됐다.

유한준은 4년 60억 원을 제시한 막내 kt 위즈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더욱이 넥센은 타선의 핵심인 ‘홈런왕’ 박병호를 메이저리그로 보냈고 에이스 투수인 밴 헤켄을 일본프로야구에 빼앗기면서 다소 버거운 시즌을 맞게 됐다.

SK는 올 시즌 가장 많은 FA 6명을 배출했지만 내야수 박정권(4년 30억 원), 투수 채병용(2+1년 10억5000만 원)만 붙잡았을 뿐 마무리 정우람과 핵심 불펜 윤길현을 놓쳤다. 포수 정상호 마저 4년 32억 원에 LG 트윈스로 옮겨 전력상 큰 손실을 떠안게 됐다.

삼성 역시 FA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우선 박석민의 유출로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FA가 아니더라도 이미 ‘도박 파문’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마무리 투수 임창용을 방출해 전력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또 윤성환과 안지만 역시 거취가 정해지지 않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처럼 FA몸값이 비대해 지면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예년보다 커지고 있다. FA 시장이 커질수록 구단이 부담해야 하는 지출도 정비례로 늘어난다.

또 FA선수가 구단의 성적향상에 히든카드가 되면 좋지만 반대 경우도 빈번해 꼭 FA시장 폭등이 리그 발전으로 직결된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 정우람 선수 <뉴시스>
빈번한 실패사례로
우려 급증

물론 삼성처럼 FA로 신화를 이어가는 성공사례도 존재한다. 삼성은 FA 제도가 도입된 초창기 번번이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좌절하자 큰 손으로 등장했다.

삼성은 1999시즌 뒤 대어급이었던 해태 투수 이강철(3년 8억 원), LG 포수 김동수(3년 8억 원)를 데려갔다.

2년 뒤에는 LG 양준형을 4년 27억2000만 원에 재영입했고 결국 2002년 처음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신의 한 수를 선보였다.

또 올해 두산 베어스는 지난해 장원준을 4년 84억 원이라는 파격조건으로 데려왔다. 장원준은 시즌 활약이 다소 약했지만 포스트시즌 맹활약으로 두산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실패사례도 수두룩하다. 한화는 최근 3년간 FA영입에만 465억 원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면서 FA 영입 효과에는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이와 더불어 FA 선수들의 몸값이 급등하면서 각 구단 선수들 간에도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올해 NC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박석민은 4년 96억 원을 받게 된다.

각 구단의 한 해 운영비로 약 200억 원가량을 쓰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산술적으로 80억 원짜리 선수 두 명을 운용할 경우 구단은 해마다 운영비의 20%가량을 이 두 선수에게 쏟아부어야 된다.

여기에 박석민은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박병호와 비슷한 금액을 수령하게 돼 빅리그와의 격차도 줄어들 만큼 FA 몸값이 폭등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박병호는 지난 2일 미네소타와 4년 1200만 달러, 5년째 구단 옵션이 낀 1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미국 세율을 적용하면 박병호는 매년 16억 원을 받지만 박석민은 18억 원을 손에 쥐게 돼 실수령액은 비슷하거나 박석민이 더 앞서게 된다.

이와 함께 FA 과열로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도드라져 저 연봉 선수의 처우도 점점 더 빈약해지고 있다. 프로야구선수 최저연봉은 2010년 2400만 원이었지만 5년이 지난 2015년 불과 300만 원 오르는데 그쳤다.

2016년부터 1경기당 대략 1700만 원을 받는 박석민이 단 두 경기만 나와도 최저 연봉을 넘어서게 된다.

결국 FA 시장이 과열될수록 적자구조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늘어나는 지출은 구단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직은 홍보효과로 모기업을 달래고 있지만 득보다 실이 많아지면 그룹 차원의 지원도 마냥 늘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 손승락 선수 <뉴시스>
구단도 지키지 않는
유명무실 규정

이에 따라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 철폐를 비롯해 FA등급제, FA획득 연한 축소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을 찾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급증하는 몸값을 구단 스스로 자처했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KBO는 선수에게는 시즌이 마무리돼야 FA 자격이 생기고 FA 협상은 정해진 기간에만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유독 선수와 구단의 협상 담당자가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구체적인 금액과 관련된 소문이 무성했다.

이는 야구계의 공공연한 비밀인 템퍼링(사전 접촉)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FA 선수는 자격을 얻은 뒤 일단 원 소속 구단과 먼저 협상하고 결렬될 경우 타 구단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구단은 없다.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수준급 선수를 협상 기간에 만난다는 건 그 선수를 잡을 생각이 없는 의미”라는 반응을 내놨다.

여기에 비공식 에이전트까지 끼어들면서 FA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요즘은 불법 에이전트가 먼저 구단에 연락해 계약 얘기를 꺼내는 지경이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이 같은 대리인과 사전 접촉은 모두 중징계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KBO리그는 현재 선수의 대리인 제도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협상은 오로지 선수와 구단이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KBO는 템퍼링 규정을 어길 경우 해당 구단과 선수 간의 계약을 무효로 하고 구단에는 3년간 신인 1차 지명권을 박탈하는 등 중징계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징계를 받은 구단은 그간 단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대해 KBO 측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 야구 해설위원은 “FA 몸값 거품에는 모든 구단이 원죄를 지고 있다”면서 “우선협상 기간 제도 등 유명무실한 제도를 차라리 없애고 규정을 완전히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선수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충식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현재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는 데 걸리는 기간이 너무 길어(대졸 8년·고졸 9년)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선수들의 숫자 자체가 적다”면서 “차라리 자격 획득 조건을 완화해 시장에 나오는 선수가 늘어나면 과열 경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단마다 외국인 선수 보유 숫자(3명) 확대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들은 “FA 거품을 없애고 싶지만 성적 때문에 정작 영입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외국인 선수 보유나 출전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1군 출전 제한을 두되 영입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어 고려해볼 만하다는 게 구단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한편 FA 시장이 마무리되어감에 따라 보상선수를 두고 구단들은 제 2차 눈치작전에 돌입해 유망주 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규정에 따라 선수를 빼앗긴 구단은 이적한 선수의 연봉 300%를 받거나 연봉 200%와 보상선수를 함께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20인 보호선수 명단에 누가 이름을 올리느냐에 따라 구단관계자들의 계산기도 빠르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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