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 가수들의 삶 조명

인기가수 박상민이 자신을 모방해 박성민으로 활동하는 임모씨를 고소했다. 단순히 모창가수의 수준을 넘어 박상민을 사칭하고 그의 노래에 대한 립싱크, 사인위조까지 했다는 게 고소의 이유다. 박상민은 지난 해 6월 임씨를 사기죄 등으로 고소한데 이어(300만원 벌금형) 12월 부정경쟁방지법위반 등으로 두 번째 고소를 감행했다. “임씨가 첫 번째 고소 후에도 여전히 나를 사칭했다”는 게 박상민의 주장. 반면 임씨는 “나는 박상민의 이미테이션가수 박성민일 뿐, 그를 사칭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6월26일 검찰에서 박상민과 임씨의 대질신문이 있었다.
박상민의 고소 사건을 계기로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삶을 취재했다.


‘가짜 박상민 사건’은 박상민과 임씨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차후 검찰 조사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가수 박상민이 그간 보여줬던 솔직담백한 성격을 떠올리며 “오죽하면 고소했을까”라고 옹호하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가짜도 직업인데, 노래 따라하는 무명가수 다 잡혀가겠다”고 수근대는 이들도 있다.

‘가짜 박상민 사건’으로 음지에서 활동 중인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존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가수뿐 아니라 인기 연예인에게는 자신을 모방한 인물이 등장하곤 했다. 일명 짝뚱들이다. 이들은 각종 행사와 유흥업소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현찰, 주용필, 너훈아, 패튀김, 임희자, 주연미, 하춘하 등은 ‘진짜’만큼 유명한 이미테이션 가수들이다. 그들은 외모, 노래실력 면에서 원조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이미테이션까지 등장하는 시대. 짝퉁이 짝퉁을 낳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비록 적은 출연료를 받으며 여러 무대를 전전하지만 때로는 진짜 연예인보다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독무대를 선보인다.


#사례1 조용필 & 주용필

가수 조용필의 모창 가수인 주용필. 모창 가수들 중 비교적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DMB방송과 라디오 프로그램, 공연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행사 섭외 1순위로 부상했다.

그가 진행하는 DMB방송(트롯트가요 프로그램)은 특히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업소 출연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자신의 원조인 조용필과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사례2 현철 & 현찰

현찰은 모창 가수가 되기 전 본인의 음반을 냈던 경력이 있지만 목소리가 현철과 너무 비슷해서 오히려 활동에 지장을 받았다. 결국 현철의 모창 가수로 아예 진로를 바꿨다.

일부 가수들이 본인의 닮은꼴 가수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가수 현철은 현찰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현찰의 한 동료는 “가수 현철씨는 자신의 이미테이션 현찰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례3 방실이 & 방쉬리

방쉬리는 방실이와 외모가 매우 비슷할 뿐 아니라 가창력도 인정받고 있다. 여자 모창 가수 중 섭외 1순위에 꼽힌다.

방쉬리는 방실이와의 친분도 각별하다. 방실이는 자신의 닮은꼴인 방쉬리와 김치도 나누어먹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방실이는 뇌경색으로 입원 직전 방쉬리에게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통화할 정도로 친하다. 이후 뇌경색이란 진단 소식이 전해지자 방쉬리는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미테이션가수협회장 주용필 인터뷰 >>
“작고 초라하고 배고프고 비참한 직업”


한국이미테이션가수협회(이하 협회) 회장 주용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수 조용필의 이미테이션이다.

주용필은 이미테이션 가수로 살아온 지 20년째. 국내서 처음으로 이미테이션 모임을 만들었고 자비로 운영해왔다.
다음은 주용필과의 일문일답.

- 가짜 박상민 사건에 대한 의견은.
▲ ‘후진국형 스캔들’이다. 미국, 일본, 대만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자신의 원조가수들과 공연도 같이 해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는다.
오직 한국에서만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따가운 시선과 무시를 받는다. ‘저질’급으로 대우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위 ‘진짜’ 가수들은 누구에게, 어떤 검증을 받았는지 묻고 싶다. 화려한 모습만으로 진짜 가수로 대우 받는 건가. 모순이다.
가짜 박상민(박성민) 임모씨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다는 한 업소에 몰래 가봤다. 임씨가 정말 립싱크를 하고 가수 박상민을 사칭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외모와 목소리가 가수 박상민 못지않았다. 월 몇천만원대의 수입을 올렸다는데 임씨는 아직도 월세 살고 있다.
그 업소 관계자는 “언론이 임씨 보도에 편파적”이라고 내게 말했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지 말라. 공정하게 판단한 후 돌을 던지라는 이야기다.

- 이미테이션가수협회는 어떤 모임인가.
▲ 현재 현찰, 방쉬리, 너훈아 등 15명의 회원이 있다. 우리는 정기모임도 갖고 행사장에서 늘 만난다.
연예인들이 말하는 ‘개인기’라는 단어는 본래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쓰던 말이다. 모창과 성대모사 등이 개인기에 속하지 않는가. 성대모사로 유명한 개그맨 김학도, 박명수, 리포터 조영구 등도 90년대 초반 이미테이션 클럽의 회원이었다.

- 본인은 가수 조용필의 이미테이션이다. 공연할 때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 ‘여행을 떠나요’, ‘모나리자’ 등 조용필씨 명곡들과 그 외 인기있는 애창가요 등이다.

-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애환이라면 무엇이 있는가.
▲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편견과 무시를 많이 받는다. 그나마 나는 잘못된 대우에 대해 반박이라도 할 줄 알지만 늘 당하기만 하는 이미테이션 가수들도 많다. 한마디로 비참하다.
IMF 때 정부의 업소들에 대한 영업시간 규제로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일터를 많이 잃었다. 당시 많은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노가다 생활을 하거나 실업자가 됐다. 자살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시 연예프로그램들 중 어느 한 곳도 우리들의 비참한 이야기를 다뤄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먼저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길 요청해도 거부당했다. 심지어 봉사공연을 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해도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 외국 이미테이션 연예인들과 비교했는데.
▲ 3년전 할리웃에 갔을 때다. 마돈나, 멧데이먼, 앨비스 프레슬리, 마이클잭슨, 오프라윈프리 등의 이미테이션들을 봤다. TV출연, 각종 이벤트, 재연예술배우 등으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방송 출연할 때도 편견없이 적절한 대우를 받더라. 우리와는 정말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자식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숨긴다.
작고 초라하고 배고프고 비참한 직업이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원조들과 외모·목소리가 비슷하고 노래가 좋아서, 무대에 서는 것이 좋아서 활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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