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와 연예인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예인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각 캠프에서 유명 연예인 잡기에 혈안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어떤 인사보다 대중성이 높다. 연예인을 잘 이용하면 곧바로 표로 직결된다. 그래서 정치인은 대중성 높은 유명 연예인을 잡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연예인을 전략적으로 섭외했다. 당시 김대중 후보 진영에 참여했던 모 연예인은 대선 이후 승승장구, 한 시기를 풍미하기도 했다.
이처럼 달콤한 맛을 본 연예인은 나름의 계산에 따라 대선캠프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지한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후 자신의 입지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대선정국을 맞이해 정치권에 참여한 연예인은 누구일까.


대선후보들의 캠프 중 가장 두드러진 연예인 조직을 가진 사람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박지모(박근혜를 지지하는 모임)’가 지난 9월 결성됐고, 이 모임에 가수, 개그맨, 탤런트 등 다수의 연예인들과 방송 관계자가 합류했다. ‘박지모’는 순수자발적인 연예인 봉사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자청 혹은 등 떼밀려?

연예인들의 정치활동 참여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후보를 지지해 스스로 지원하거나 혹은 그들의 스타성을 노리는 정치인들 또는 학연·지연·인맥 등을 이용한 주변인들의 권유에 의해 참여하는 경우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연예인들이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치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했다. 문성근, 명계남, 윤도현, 심현섭 등 많은 연예인들이
앞장서 지지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일부 연예인들은 자칫 연예계 활동에 지장을 받을지 모르는 우려 때문에 음지에서 지지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2007년 대선을 6개월 앞둔 현재,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 연예인들은 이와 관련한 인터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표면적으로 조직이 형성된 박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 언론을 통해 박지모에 합류했음이 드러났지만 접촉을 시도한 대다수 연예인들이 이에 대한 인터뷰를 사절했다. “정치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박지모의 출범회원인 가수 설운도는 박지모 참여 동기에 대해 “누가 권유해서 지지활동을 하느냐”며 본인의 순수한 지지 의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지모’의 대표급 회원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 P씨 측은 예상외의 반응을 드러냈다. “P씨는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선배가수가 밥 먹자고 하도 전화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더니 뭘 작성하라 하고…. 언론에서 P를 박지모의 회원으로 다들 보도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생각도 했다. P씨는 박지모와 무관하며 정치적인 활동에도 관심이 없다. 그 선배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고, 언론도 함부로 보도하지 말라.”

P씨 측은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기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답변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가수 C씨도 마찬가지.

“C를 아껴주는 선배가수의 식사제안으로 나갔다. 두세 명이 밥을 먹는 자리로 알았지만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이었다. 본인은 정치적인 색깔이 전혀 없는 가수임에도 언론에 박지모의 회원으로 보도됐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부정하기도 곤란하지 않은가. 사실 처음부터 알고 나간 자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지모, 활동 무산되나

‘박지모’ 의 출범공신인 정원수 총무. 정 총무는 “설운도씨와 둘이 ‘박지모’를 만들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참여 연예인 명단 공개는 꺼렸다.

“설운도씨를 제외한 다른 연예인들의 이름은 거론하지 말아 달라. 해당 연예인들이 곤란해 질 수 있다.”

정 총무 역시 이미 알려진 ‘박지모’ 회원들에 대한 실명공개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다.

“‘박지모’는 작년 9월 출범 이후 올해 한번도 모임을 갖지 않았다. 사무실도 개설했었지만 지금은 없다. 사실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모임 유지가 곤란한 상황이다.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6월 초순까지만 해도 박지모의 활발한 활동이 예상되는 언론보도와 정 총무의 인터뷰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활동이 힘들다는 의미. “(박지모 연예인들이)다들 개인 활동이 바쁘고 뚜렷한 활동 의사가 없어보여서 예정된 모임도 취소시킨 상태”라고 정 총무는 밝혔다.


김종국 “음지서 보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후보의 캠프는 뚜렷한 조직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이면에 많은 연예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급 연예인 중에도 손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만 아직은 실명을 밝히며 공개적인 지지를 펼치기 곤란한 상황이다”라고 손 후보 측 관계자는 밝혔다.

알려진 손 후보 지지 연예인들에는 엄용수, 최형만, 장웅, 김종국, 선우재덕 등이 있다. 특히 개그맨에서 최근 연개소문과 대조영을 통해 연기자로 변신한 김종국은 6년 전부터 손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종국은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스타급 연예인도 아닌데 내가 지지한다는 것이 밝혀짐으로 인해 손 후보에게 행여 누가 될까 두렵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김종국이 손 후보를 지지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26년간 연예인으로 생활하며 많은 정치인들을 만나왔다. 손 후보를 만난 후 이런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인간적으로 사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손 후보를 좋아한다. 인기스타가 아닌 내가 지지자로 거론되면 누가 될까봐 그림자처럼 지켜보고 있다.”

김종국은 손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 중 가장 중심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손 후보 지지 연예인들의 조직화를 꾀하고 있는 것도 김종국의 역할.

“때가 되면 조직적인 활동이 이뤄질 것이다. 9월쯤으로 예상하고 있고 그때가 되면 나도 모든 활동을 접고 선거운동에 올인할 생각도 있다. 형식적·표면적이 아닌 다들 진심어린 마음으로 손 후보를 지지한다. 나도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바라는 것 없이 뒤에서 움직일 뿐이다.”


잘 되면…못 되면…

이미 캠프에 참여한 것으로 언론에 알려진 연예인 가운데는 다른 후보의 캠프에서도 (참여를 요청하는)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다. 실제 손학규 캠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김종국에게도 불과 며칠 전, 다른 후보 측에서 모임 참여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었다고.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는 모 가수 역시 “여러 캠프에서 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려진 것보다 많은 연예인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등 떼밀려’서 대선후보 캠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어느 후보에 대한 지지연예인들을 모으고, 조직화하는 주축에 선 연예인은 자발적인 지지에 의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해당 후보의 대선결과에 따라 함께 했던 연예인의 입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지지하는 연예인들의 조직적인 구도가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 이명박 전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유인촌(전 서울문화재단 대표)과의 친분이 잘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시장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유인촌이 문화관광부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2007 대선은 어떤 구도로 대선주자와 연예인들의 공생관계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