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전·도·연

“말도 안돼, 정말 말도 안돼~.”
금빛이 은은히 감도는 랄프로렌 드레스를 입은 전도연(33)이 제60회 칸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무의식중에 한 말이다.
전도연은 지난 5월27일(현지시간) 프랑스 휴양도시 칸 팔레 데 페스티벌 광장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The Secret Sunshine)’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출신 명배우 알랭 들롱으로부터 트로피를 건네받은 전도연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봉수아”라고 인사했지만 두 눈은 감격으로 촉촉이 젖어있었다.
전도연의 칸의 여왕 등극은 87년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20년만의 쾌거.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다시 한번 희망을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밀양’ 여우주연상수상 의미

모두가 긴장한 찰라, 전도연의 이름이 호명됐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수줍은 미소를 띠며 시상대에 올라선 순간. 한국 영화는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 전도연의 수상은 8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씨받이’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20년만에 일군 감격이고, 칸 영화제에서 아시아 배우로는 04년 ‘클린’으로 중국 여배우 장만옥이 수상한 이후 두 번째다.

그만큼 한국 영화가 인정받았다는 의미. 이로써 해외 영화제 첫 방문길에 올랐던 전도연은 명실공이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다.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 등 ‘밀양’ 관계자들은 한사코 몰랐다고 부인했지만 사실 이번 수상은 어느 정도 예고됐었다.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 해외 언론들은 5월23일 ‘밀양’의 언론 시사회 이후부터 평론가들의 호평을 실으며 분위기를 주도했고, 국내 언론들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연이어 터뜨렸다.

경쟁 부문 공식 시사 및 기자회견이 열린 24일에는 시상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이 그려졌다. 대다수 외신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전도연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기 때문.

반면 ‘밀양’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각 매체 및 영화인들에 따라 엇갈렸고, 조심스레 "주연상 혹은 각본상이 아니겠냐"는 풍문이 흘렀다. 그리고 26일에는 ‘아시아 영화가 상을 받을 것’이란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고, 27일 오전 영화제 관계자들이 ‘밀양’ 일행에게 떠나지 말고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언질을 하며 수상이 유력해졌다. 결과는 여우주연상.

한편 황금종려상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밀양’은 이창동 감독에게도 큰 의미를 지녔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는 등 4년의 외유 끝에 메가폰을 잡았지만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던 것처럼 여지없이 능력을 발휘, 재도약의 발판을 확실하게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팔색조 배우 전도연

연예계 데뷔 17년째인 전도연에게 이번 칸 방문이 해외 영화제 첫 나들이였다. 90년 모 화장품 회사의 모델로 발탁된 전도연은 ‘우리들의 천국’ ‘종합병원’ ‘별은 내 가슴에’ ‘젊은이의 양지’ 등 초창기에는 주로 브라운관에서 활동했다.

인생의 진로를 뒤바꾼 영화배우로의 변신은 한석규와 열연한 장윤현 감독의 1997년작 ‘접속’으로 시작됐다.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이후부터 전도연의 본격적인 연기 스펙트럼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박신양과 출연한 멜로물 ‘약속’(1998년)을 흥행시킨 그녀는 ‘내 마음의 풍금’(1999년)에서 이병헌과 출연해 폭넓은 연기력을 보였다.

한계가 없었다. 곧바로 선보인 ‘해피엔드’(1999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년), ‘피도 눈물도 없이’(2002년)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의 폭과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배우로 인정받았다.

이후 조연급으로 출연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에서도 팔색조 연기를 보인 전도연은 ‘인어공주’(2004년)에 이어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2005년)에서 예쁜 감정을 담아낸 아름다운 연기를 펼쳐 영화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어느덧 배우로 접어든지 만 10년, 10번째로 선보인 ‘밀양’에서도 전도연은 완벽한 내면 연기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영화인들까지 사로잡았다. 촬영 도중에는 남편 강시규씨를 만나 지난 3월11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 작품을 찍으며 남편과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됐다”고 수줍게 말하는 전도연은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은 인생에 큰 부분으로 남을 것 같다”며 소감을 대신했다.

여하튼 ‘밀양’은 전도연에게 한 여자로서, 배우로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됐다.

이번 칸 영화제 내내 호평받은 ‘밀양’은 전도연이나 이창동 감독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 큰 희망이 되고 있다.


한국 영화 부활할까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02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고,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로 같은 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뒤 물꼬를 튼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니스) 수상이 한동안 잠잠하다가 모처럼 다시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04년 김기덕 감독이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게 끝이었다. 무너지는 영화판을 대변하듯 한국 영화는 3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뭔가 달라졌다. 절치부심의 시간이 흘렀고,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지난 2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8대 본상중 하나인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 이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절정에 올라섰다.

최근 한국 영화의 심장부 충무로에는 올 초부터 우울한 소식 일색이었다. 06년 개봉됐던 108편의 한국 영화 중 단지 10%만이 수익을 냈고, 같은 해 수출량도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는 뉴스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영화계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최근 이뤄진 한미 FTA 협약으로 스크린쿼터 축소가 본격화되며 국내 영화시장을 더욱 위축시켰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도 한국 필름의 수출물량이 크게 감소했다는 얘기가 나와 참가자들을 침울하게 했다.

그러나 폐막식에서 전도연이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극적인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3’ 등이 선풍적인 흥행몰이를 하는 요즘, 덩그러니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였던 ‘밀양’의 예매율이 폭등하는 등 활력을 불어넣은 것. 한국 영화가 다시금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이 찾아온 셈이다.

과연 이번 수상이 국내 영화계에 가져올 파장은 얼마나 될지, 영화인들과 팬들은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밀양’은 어떤 영화?

영화 ‘밀양’은 남편과 아이까지 모든 것을 잃은 신애가 삶의 고통을 딛고,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는 스토리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신애(전도연)는 새 삶을 위해 밀양을 찾는다. 이곳에서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며 조금씩 고통을 잊던 그녀는 유일한 희망인 아들을 잃으면서 삶의 모든 의미를 잃게 됐다.

하루하루 슬픔과 고통이 뒤범벅된 삶을 이어가던 신애는 기독교를 접하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종착역은 아니었다. 신에 대한 갈망에서도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절망에 허우적거리는 신애 앞에 나타난 것은 늘 유쾌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카센터 사장(송강호). 멀리서 신애를 지켜보는 카센터 사장의 모습은 한줄기 희망처럼 다가선다.

전도연의 연기는 단연 뛰어났다. 극중 신애가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부들부들 떨고, 교회 안에서 신에게 갈구하듯 바닥에 드러누워 외마디를 던지는 모습은 명장면이다.

‘밀양’은 전도연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감정 연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먼저 촬영 중단을 요청했던 선례를 지녔을만큼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칸 영화제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Cannes)에서 매년 5월 개최되는 국제 영화제로 베네치아,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46년 9월 20일 프랑스 임시정부의 승인 아래 18개국의 영화를 모아 영화제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돼 지금에 이르렀다. 이후 48년부터 50년까지 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51년부터 영화제 기간을 5월로 옮겨 2주간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84년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로 특별 부문상을 수상하였고,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99년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또 송일곤 감독의 ‘소풍’도 단편 부문에 출품돼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다.

02년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았고, 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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