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의원은 지난 11월 30일 문제인 대표를 향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며 “기득권에 연연하고 고통을 두려워해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했다. 안 의원의 ‘창조적 파괴’언급은 그가 하루 전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던 것으로 보아 그의 퇴진을 재강조한 말로 들린다. 문 대표에게 당의 ‘창조적 파괴’를 위해 당 대표라는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사퇴의 “고통을 두려워 말라”는 주문이었다. 안 의원은 조지프 슘피터(1883-1950년) 교수가 소개한 ‘창조적 파괴’ 논리를 문 대표 밀어내기 정당화 용어로 인용한 것이다.

슘피터 교수는 영국 태생 오스트리아 시민으로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1883-1946년)와 함께 20세기 양대 경제학자로 꼽힌다. 슘피터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낡은 산업을 파괴해야 새로운 회사를 창조할 수 있다며 ‘창조적 파괴’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기업인은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혁신적 정신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 혁신적 정신이 ‘창조적 파괴’로 이어진다고 한것이다.

새정치연합도 변화를 위해선 지난날의 좌편향 이념 투쟁과 전투적 운동권 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중시해야 한다. 어느 정당이건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고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안 의원이 문 대표에게 요구하는 ‘창조적 파괴’는 슘피터의 혁신 논리와는 거리가 멀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안 의원의 ‘창조적 파괴’ 언급은 문 대표를 사퇴시키려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원용한데 지나지 않는다. 안 의원의 당내 비주류 측과 문 대표 주류 측 간의 세력 대결에서 자기의 비주류 측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데 있다. 또한 안 의원과 문 대표간의 대결은 내년 총선을 앞둔 공천권 지분 경쟁과도 무관치 않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의 불편한 관계는 2012년 대선후보 단일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올 4월과 10월 실시된 재·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안 의원 측은 문 대표가 4월·10월 두 차례의 재·보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문 대표는 거부, 대결과 분당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안 의원의 문 대표 사퇴 요구는 작년 안 의원이 문 대표 측의 퇴진 압박으로 당 공동대표직에서 쫓겨난 데 대한 보복이기도 하다. 김한길 의원과 새정치연합의 공동대표였던 안 의원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그 때 문 대표의 친노 측은 안 공동대표가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토록 흔들었다. 안 의원은 이제 거꾸로 문 대표에게 4월·10월 재·보선 참패 책임을 물어 사퇴토록 압박하고 있다. 먹고 먹히는 정치판의 권력암투 악순환이기도 하다.

문·안 두 사람의 갈등은 서로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운 당내 권력 장악 투쟁임이 분명하다. 안 의원은 자신이 제안한 내년 1월 당 대회 개최 등 혁신안들을 문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자, 문 대표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였다. 안 의원은 그동안 문 대표 측에 의해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문 대표에게 “저와 당을 바꿔나갈 생각이 없다면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묻지도 않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안 의원 측근은 문 대표가 자신을 “둘러리로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안 의원이 원용한 ‘창조적 파괴’는 당의 낡은 구태를 파괴하고 신선한 혁신을 가져오기 위한 게 아니었다. 대척점에 서있는 경쟁자를 파괴하기 위한 용어로 동원됐을 따름이었다. 슘피터의 신선한 ‘창조적 파괴’ 문구가 구태의연한 정적 파괴 정당화 논리로 이용된 것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학술적 문구 원용이었다. 용어 선택에 신중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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