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에 존립 위기 맞은 민노총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조계사에 피신했던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이 자진 퇴거해 경찰에 체포된 가운데 올해로 창립 20년을 맞이한 민노총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직적 기반이 약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대정부 투쟁 일변도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민노총 지도부는 당분간 최종진(57) 수석부위원장의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조직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 위협하는 괴물… 획기적 궤도수정만이 살 길?

“민노총이 죽으면 세계노동운동이 죽는다는 말이 국제노동단체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민노총 창립 4주년을 하루 앞둔 1999년 11월 10일 단병호(66) 위원장은 “명실공히 한국 노동계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민노총이 2000년 이후에도 사회변혁을 이끌어 내는 대안세력으로 우뚝 서도록 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단 위원장은 이를 위해 ▲조직 민주성을 확보해 침체된 조직역량을 강화, 활력을 불어넣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근간으로 참여, 노동자의 정치적 이익도 책임있게 대변할 것이며 ▲도시빈민과 농민, 진보단체와도 교류를 넓혀 사회 전반적인 요구를 담아내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전성기 맞이했지만…
조합원 수 비중 하락세


민노총은 특히 법외조직이라는 제약과 노조운동에 대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성장했고 지난 1996년과 1997년 노동법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국제적으로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주목할 만한 노동조직으로 꼽힐 만큼 질적으로도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지난 1995년 11월 군사정권의 노동탄압 정책하에서 누적된 자주적인 노조결성을 동력으로 ‘자주·민주·통일·연대’의 가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창설된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의 계승자를 자처했고, 한국노총을 ‘어용노조’로 규정했을 정도로 선명성을 내세웠다.


민노총은 1987년 폭발적인 노동운동의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조합원 20만 명)를 모태로 1993년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조합원 42만 명)로 조직을 불려나가 1995년 11월 11일 권영길·양규헌·권용목 공동대표 체제로 출범했다.


이후 민노총은 1996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 등 한국 노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기며 창립 4년 만인 1999년 비로소 합법노조 단체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중반은 민노총의 전성기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민노총에 가입했고, 완성차업체 4개사 노조는 산별노조로 전환해 금속노조를 출범시켰다.


민노총은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처음 도입된 정당명부제를 발판삼아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지역구를 포함해 민주노동당(민노당) 소속 후보 10명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돌풍(突風)’을 일으키며 기세를 한껏 올렸다. 노동계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진보정당이 일약 제2야당이 되면서 노동계가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국민적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0주년을 맞은 2005년 초부터 시작이 좋지 않았던 것.


2005년 1월과 2월 노사정대화 복귀 여부를 놓고 지도부의 온건노선에 반기를 든 조직 내 강경파가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폭력사태를 일으켜 대의원대회가 세 번이나 무산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수호(66) 전 위원장 등 지도부는 취임 1년 만에 재신임투표라는 카드를 꺼내기도 했다. 여기에 1월 산하 노조인 기아차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에 이어 5월 현대차노조의 채용비리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무엇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노동운동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도부의 핵심인사인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금품수수에 연루돼 구속 기소되면서 이수호 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4기 지도부가 취임 1년8개월 만에 좌초됐다.

위상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 오래?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조직률이 점차 떨어졌고 민노총에서 탈퇴하는 노조가 늘었다. 2009년에는 공공운수연맹 소속 단위노조와 KT노조 등이 민노총에서 빠져나갔다.


전체 노동조합원 중 민노총 조합원 수 비중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전체 노동조합원 190만5000명(고용노동부 집계 기준)중 민노총 조합원은 63만1000명으로 33.1%를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 43.5%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같은 기간 한국노총 조합원 비중이 50.7%에서 62.2%로 올라간 것을 보면 민노총의 하락세가 더 도드라진다. 다만 민노총 조합원 수는 2011년(56만 2000명) 이후 3년째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민노총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노총이 출범 20주년을 맞아 임원, 간부 등 463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민노총의 가장 큰 문제점(복수응답 가능)을 묻는 질문에 ‘관성적·관례화 된 활동’이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29%로 가장 많았다.


또 ‘총연맹으로서의 지도력 부재’(21.9%), ‘현장과 맞지 않는 투쟁방침 결정’(21.1%) 등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같이 조합원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도 현재 민노총의 위상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국민을 담보로 하는 협박성 선동과 적개심 불타는 계급투쟁의 쇳소리’만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민노총이 이제 취할 선택은 많지 않다. “민노총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괴물”로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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