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이고, 여성정치인이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보수 세력과 영남 지역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표의 위치는 한나라당 안에서 확고하다. 그러나 지금도 절치부심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반격도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박 대표가 아버지의 후광에 기댄 리더십이라면, 이 시장은 처음부터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온 ‘잡초 근성’의 끈질긴 리더십이다. 이 시장의 역전 대 야망을 취재해 본다.한나라당에서 이번 17대 총선 최대의 공이 박 대표에게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반면 이명박 서울시장은 이번 총선에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총선에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이 시장과 가까운 한나라당 한 인사는 “이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간 것도 결국 큰 꿈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총선 기간 중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마음껏 날개짓 하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으니 이 시장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라고 말해, 이 시장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인구 천만의 서울시 표심은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성공한 서울시장으로서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이 시장의 애초 계산이 박근혜 대표라는 예상치 못한 강적을 만나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이 시장이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것도 사실이다.

‘청계천 복원 공사’ 공약으로 그의 지지자뿐 아니라 반대자에게서도 어느 정도 성원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3년 째 접어들면서 이 시장은 이곳 저곳에서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비판의 핵심에는 과대한 ‘업적 지상주의’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이 시장에 대해 “그는 아직 개발시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개발 사업에는 환경과 문화 보존이라는 새 시대의 논리가 없다. 정치 논리에 의한 개발 위주 정책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이 시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 아랑곳없이 이 시장은 지금도 수많은 개발 사업과 체제 변경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문화재 훼손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고, 도심 한 복판에 최대 135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을 허용했으며, 버스 중앙 차선제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각계 각층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실련, 도시연대,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와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공간환경학회 등은 지난달 25일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전문가 100인 선언을 통해 “이 변경안은 상위 계획인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안)’과 상충하며, 역사 문화 경관과 자연환경을 보존하겠다는 장기적인 서울시의 도시기본계획 원칙에 어긋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또 “최근 주상복합건물은 고소득층을 겨냥해 대형 평형이 분양되는 추세”라며 “도심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허용하는 것은 결국 서울 시민의 조망권을 빼앗고, 서울의 역사 문화재를 파괴하며, 서울의 자연 생태축을 끊는 일”이라고 격렬하게 이 시장을 비판했다. 이 시장의 밀어붙이기 행정에 대한 비판은 감정적 요소까지 가미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말 살리기 겨레모임’은 지난달 19일 이 시장을 ‘우리말 으뜸 훼방꾼’으로 선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말 겨레모임은 “서울시에서 대중교통 수단 우선 체계를 바꾼다면서 시내버스 옆과 뒤에 로마 글자를 표기하려 하고 있다”며 “서울 거리에 ‘Hi Seoul my bus 7월 1일부터 버스가 빨라집니다’란 영문 혼용 현수막도 걸려있다”고 지적했다.이들은 서울시가 지난 해에도 ‘Hi Seoul’, ‘Hi 서울 Green 청계천’등 영문 혼용 광고문을 썼다는 이유로 ‘우리말 훼방꾼’의 꼬리표를 달았다.청계천 복원 사업에서 이 시장에 보여준 막무가내식 개발이 이제는 다른 모든 행사에서 이 시장과 시민단체와의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게 한 것이다. 또한 이 시장이 의욕적으로 실시하려고 하는 버스 중앙차선제도와 버스 노선 개편, 환승시스템에 대해서도 아직은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한 택시 기사는 “이 시장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일반 시민이나 운전기사들의 여론은 거의 듣지 않고 행정편의주의와 실적주의로 나서고 있다”고 이 시장을 비판했다. 이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이 수많은 개발계획과 체제 변경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두 말 할 것 없이 대선 경쟁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금 총선이다 보궐선거다 하여 저 앞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시장 혼자 한가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러나 역시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앞으로 대선 후보 결정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 때까지는 수많은 변수가 일어날 수 있다. 또 지금 이 시장이 서울시 행정 때문에 여러 곳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의 밀어붙이기 전략이 어느 순간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날 수 있다. 이 시장 역시 지금 시점에서 이미 시작한 일을 중단할 수도 없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표가 표면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이명박 시장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과는 이곳 저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문화방송이 지난달 21~24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네티즌 1,85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이 시장은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이병철 전 삼성 회장, 김우중 전 대우회장에 이어 재계의 인물 5위를 기록했다. 이는 이 시장의 저력이 때와 시기만 만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조사로 볼 수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지금 박 대표가 한나라당을 이끈다고 하나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막상 대선 후보 결정이라는 ‘진검승부’에서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총선과 대선은 그 논리가 다르다. 따라서 이 시장이 지금은 위축되어 있다고 해도 ‘집념의 승부사’ 기질은 마지막 순간에 힘을 얻을 가능성이 많다”고 의미심장한 예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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