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13일 탈당을 계기로 새정치연합에서 탈당·분당·당적변경의 봇물이 터져 나올 듯하다.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도 불을 보듯 뻔하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걸핏하면 기존 정당을 이탈해 새 정당을 급조하거나 당적을 변경한다. 그들은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나면 참지 못하고 당을 뛰쳐나온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탈당 이유로 그럴 싸한 명분을 내세운다. “변화” “혁신”이 그것들이다.

안철수 의원도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면서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번화와 혁신”을 내세웠다. 지난 3월 새정치연합을 탈당, 4.29 재·보선 때 무소속으로 전남 광주 서을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도 탈당하면서 “혁명적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당하는 행위 그 자체가 “혁신” 아닌 “구태정치”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네 번 탈당하고 네 번째로 4.29 재·보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그는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무소속,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국민모임 등으로 당을 아홉 번 바꾸거나 통합했다. 그도 당을 떠나거나 깰 때는 늘 “이대로는 안 된다”며 혁신과 변화를 앞세웠다. 정치인들은 탈당이나 당적 변경을 정치공학의 기본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국회의원이 당적을 바꾸면 “배신자”로 낙인 찍혀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는다. 미국 알라배마 주 연방 하원의 파커 그리피스 의원이 당적을 바꿨다가 호되게 홍역을 치른 사례들 중 하나다.

그는 2010년 미국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변경했다. 그러자 그의 의원실 비서실장과 입법보좌관 등 12명 중 11명이 모두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의 비서실장은 사퇴 성명을 발표하면서 “건전한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로서 그리피스 의원을 위해 더는 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의 사퇴 성명은 이어 그의 당적변경이 ‘앨라바마의 지역 대표로 뽑아준 유권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2009년 4월 미국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알렌 스펙터 벤실베이니아주 연방 상원의원도 수모를 당했다. 스펙터 의원은 세 차례나 상원에서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5선의 중진 의원이었다. 그러나 그를 영입한 민주당은 그에게 특전을 준 게 아니라 그를 민주당 상임위 서열에서 막내 또는 끝에서 두 번째로 밀어냈다.

미국 의회에서 당적 변경자를 보좌진들이 “건전한 양심”을 저버린 사람으로 배척하고 당적변경을 받아들인 당에서 특별대우 대신 서열 끝으로 내모는 데는 이유가 있다. 탈당이나 당적변경은 “지역구 유권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며 양심을 지키지 않는 배신행위의 변절자로 치부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다르다. 광주 서을 유권자들은 당을 탈당한 천정배 씨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는가 하면, 일부 언론 매체들은 당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을 개선장군처럼 띄운다. 선진국가였다면 지역구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고 “양심을 지키지 않는 사람” “배신자” 등으로 매도되기에 족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탈당·분당·당적변경 등을 자행한 의원은 보좌진들이 일제히 사퇴하거나 그를 받아들인 당에서는 특별대우 대신 서열 끝으로 내몰아야 한다. “혁신”의 가면을 쓴 “기회주의자” “철새 정치인” “배신자”를 의정단상에서 몰아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만년 “4류 정치”를 넘어 1류 정치로 도약하는 지름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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