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박근혜 대표카드’가 굳어지는 분위기 속에 ‘호남주자’인 김덕룡 의원과 또 다른 ‘ TK맹주’인 강재섭 의원의 대권행보가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한나라당내 ‘호남주자’인 김덕룡 의원과 ‘TK 맹주’ 강재섭 의원의 대권행보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대표와 김 의원을 지지하는 ‘당권파’와 반(反)박 대표 진영을 중심으로 하는 ‘비당권파’로 나눠지는 분위기 속에서 ‘당권파’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는 강재섭 의원의 행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당 대변인, 원내총무, 부총재를 지낸 강재섭 의원은 검사출신으로 청와대 정무·법무 비서관을 거쳐 전국구의원으로 13대 국회에 진출, 초선이면서 역량과 패기있는 중진의원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고도 가슴 설레는 섬세함과 다정함을 갖춘 사람, 벼락치는 벌판에서도 두려움 없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것을 다짐했다”는 그는 소신과 원칙으로 법사위원 활동을 하였으며, 국책평가위원 인권신장위원 등을 맡아 초선의원으로서는 보기드문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그런 강 의원이 지난 2002년 4월 대선후보 경선과 함께 치러지는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최근 당 안팎에서 대선후보 출마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뿌리가 깊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언젠가 꽃을 피우는 정도의 정치인이 되겠다’고 얘기했다”며 “금년까지는 ‘이회창 정치’를 하겠지만 내년부터는 ‘강재섭 정치’를 할 것”이라고 밝혀, 차기 대권도전 의사를 분명히 했다.당시 대선후보 경선 출마가 점쳐졌던 강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으로 선회한 것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였다.

강 의원은 “당이 흔들려 후보에게 많은 약점이 노출됐을 때 틈새를 이용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다”며 “놀부처럼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유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막는데 주력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 주변에서는 영남 주도권을 놓고 경쟁중인 최병렬 후보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강 의원은 또 “내가 대구·경북의 대표 정치인인데 (전당대회에서) 표가 시원찮게 나오면 지역주민들이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17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실시된 경선에서 4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고, 대구·경북지역의 대표적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이런 강 의원은 최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원내대표 경선 이틀 전 박희태·맹형규·김성조·박혁규·임태희·박진 의원 등 34명의 당선자를 규합해 ‘국민생각’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구성원 상당수가 그동안 당내 ‘주류’로 분류됐던 사람들이다. 다른 모임이 ‘공부모임’을 표방한 것과는 달리 이 모임은 공식적으로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선언했다. 강 의원은 “박 대표가 옳은 방향으로 가면 지지를 하지만 잘못 가거나 우리 생각과 다르면 따끔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해, ‘당권파’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다.이 같은 강 의원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 인사들은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라고 밝히기를 서슴지 않는다.그러나 강 의원은 TK출신이라는 점이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한나라당에서 호남에 대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서는 불임정당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이 영남출신 후보를 내세워 성공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같은 대구 출신으로서 잠재적 대권 주자인 박근혜 대표의 존재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반면 호남출신의 비주류 의원에서 ‘당권파’로 변모한 김덕룡 의원은 박근혜 대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지난달 19일 실시된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 당선돼 쾌재를 불렀다. ‘영원한 비주류’ 김덕룡 의원이 한나라당 창당이래 처음으로 주류에 선 것이다. 김 의원은 전체 119명의 당선자가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당선자 총회에서 지역별로 초선부터 중진까지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으며 과반인 66표를 얻어 압승했다. 특히 당의 분권화 방침에 따라 원내대표의 위상과 역할이 종전보다 격상됐기 때문에 김 의원과 박 대표가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어 나가는 쌍두마차가 되면서 당내 역학구도도 급변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장을 지냈던 김의원은 1979년 당시 김영삼(YS) 신민당총재의 비서실장을 맡으며 정계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후 통일민주당 대변인(제13대 국회의원 총선시, 1988)을 맡은 뒤 13, 14, 15, 16대에 이어 17대에서도 의원직을 유지한 ‘5선’ 의원이다.그러나 매번 YS의 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2002년 대선후보 경선과 관련 “공정한 경선이 보장되지 않는 형식적인 경선이라면 참여할 의미가 없고 당에 남아 합심할 의미가 있겠느냐”며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회창 전총재에 대한 불신을 끝내 거두지 못하고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한다. 김 의원이 불출마 결심을 굳힌 것은 이 전총재를 비롯해 최병렬·이부영 의원 등 당내 경쟁 후보가 잇따라 출마 선언을 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데다 출마하더라도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어쨌든 당시 김 의원 주변에선 김 의원이 당분간은 정치권 전면에 나서지 않고 향후 정치권 지각변동 등을 기다려 잠복 행보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의원은 불출마 선언 이후 대선후보 경선을 뒤로한 채 1주일간 호주, 뉴질랜드 등 외국방문에 나선다.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 이후 걸어왔던 ‘영원한 비주류’의 길에 다시 한 번 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의원은 “대통령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국민과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라며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이미 초월한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어찌 됐건 비주류의 길을 걷다 급부상한 호남출신의 김덕룡 의원과 영남출신의 또 다른 잠룡, 강재섭 의원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향후 벌어질 두 사람의 경쟁도 볼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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