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 주도 ‘민간근무 휴직제’ 두 얼굴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인사혁신처가 주도하는 공무원 민간근무휴직제가 뒷말을 낳고 있다. 2002년 공무원이 민간 기업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면서 민간의 경쟁력을 공직사회에 도입하자는 취지로 시행되다 2008년, 민관유착 우려로 폐지됐고, 대기업과 로펌 근무는 제외한다는 보완책과 함께 3년 전 부활했다. 그러나 올해 시행을 앞두고 또다시 부작용과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면서 시작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시장감시국 소속 3명 과장 중 2명 대기업 A, B사 근무 예정
길어야 3년 후 공직으로 되돌아 가…기업 로비스트 역할?


‘민간근무휴직제’에 찬성하는 공무원들은 “앞으로 대기업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등 관련 기관에도 갈 수 있도록 확대하면 좋겠다”고 하는 반면, 반대하는 공무원들은 정경유착을 우려하며 “차라리 중소기업 근무기회를 더 늘리는 게 좋다”는 목소리를 낸다. 경제부처와 사회부처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도 존재한다. 일부 공무원들은 ‘잿밥’에 더 관심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공무원 민간근무휴직제가 사실상 대기업이 원하는 인력할당제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인사혁신처는 68개 민간근무휴직 직위가 43개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공개모집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힘 있는’ 부처의 40대 과장급에 집중돼 있다. 또 원하는 연령대 설정 등 자격조건은 물론 최종 선발권한까지 기업에 있어 지나친 친기업적 제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례로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은 지난해 4월부터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한진, 한화 등 4개 그룹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총수가 있는 대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브랜드 수수료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시장감시국 소속 3명의 과장 중 2명은 대기업 A, B사에서 근무하게 될 전망이다.

2명 모두 지난해 2월 발령이 나 근무기간이 채 1년도 안 됐지만 민간근무휴직 대상자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로 치면 대검 중수부 중수1·2과장이 재벌 총수 수사를 하다가 갑자기 그 기업에 월급을 받으러 가는 셈”이라며 “‘왜 하필 그들이냐’ 말하지만 500명밖에 안 되는 조직에서 기업이 원하는 경력과 연령대를 맞추다 보면 민간휴직자가 특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처 강제할당 논란이 불고 있는 이유다.

취지 못 살리고

민간근무휴직 제도는 김대중 정부가 2002년 처음 도입했다. 민·관 인사교류를 확대해 공직에 민간의 경영기법과 업무수행 방식을 도입하자는 취지에서 보듯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확산된 시장자유주의 담론을 인사제도에 반영하자는 목적을 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일부 공무원들이 민간기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용도로 악용하면서 정부정책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재취업을 위한 ‘적응훈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받는 실정이다. 

실제로 2006년 공정위원회 소속 휴직 공무원 11명이 근무 중인 법무법인 등에서 6000여만 원의 부당 보수를 받은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으며 공정거래위 전현직 간부들이 기업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에 진출,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의 소송에 참여한 일이 드러났다. 2008년 교과부 휴직자들은 억대 연봉을 받고 산하기관에 근무하면서 연구개발(R&D) 사업비를 따오는 로비스트 역할을 한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2008년 민간근무휴직제도를 중단했지만 4년 뒤인 2012년 부활시켰다.

대신 ‘공직유관단체’라고만 돼 있던 취업 제외대상을 대기업과 금융지주회사, 로펌 등으로 확대했다. 법무법인, 세무법인, 회계법인을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기존에 김앤장 등 대규모 로펌에 재취업하거나 이해충돌 등 부작용이 발생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급여수준도 제한을 강화하고 재취업 문제도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는 결론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서울 관악 乙)은  “민간근무휴직제가 파견 가능한 민간기업의 제한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고, 직무 연관성이 의심되는 관련 협회와 중소기업으로 파견근무를 나가고 있으며, 소속부처가 근무실태를 평가하는 등 근무실태평가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임용령 제50조는 민간근무휴직 대상 기업을 규정해 놓고 있지만, 상호출자제한기업, 금융지주회사그룹, 법무·회계·세무법인 등은 제외됨으로써 실질적으로 공무원들이 파견을 나갈 수 있는 회사가 중소기업이나 협회에 국한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업무 연관성이 있는 협회 위주로 민간파견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피아’를 척결한다며 퇴직 공무원의 민간 취업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던 정책과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무 연관성을 고려해 휴직자를 엄격히 선별하는 방식으로 민관유착을 막는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입장이지만,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인력 활용 방안도 문제다. 길어야 3년 후 공직으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대정부 로비스트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

재계도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대기업 경험을 통해 기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환영이다”면서도 “인사적체 해소용으로 악용된다면 문제가 크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민관 교류 확대라는 취지는 좋지만 공무원들 입장에서만 생각한 제도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 입장에서 정부는 ‘슈퍼 울트라 갑’이기 때문에 거부도 할 수 없고 월급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신환 의원은 “민간근무휴직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민간근무 대상기업의 범위 확대 및 직급제한을 완화하되, 민관유착 방지 및 사후관리대책 등 민간근무휴직 제도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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