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와 정치 드라마의 함수관계


대선을 1년 앞두고 방송가와 드라마 쪽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방송가 안팎에서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나오는 정치 소재 영화와 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여론을 좌지우지하기가 쉽다.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을 두고 정치권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 과거 방영됐던 정치 색깔이 짙은 드라마 ‘제1공화국~제5공화국’, 영화 ‘실미도’, ‘효자동 이발사’, ‘그때 그 사람들’ 등이 그 예다. 또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연기했던 연기자들 역시 나중에는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 되는 경우도 생겨, 새로 나오는 정치 드라마의 주요 연기자는 누가 될까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제작되는 정치 드라마에 대해 들여다봤다.


“2007 대선을 앞두고, 정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내년 한해는 모든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해이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맞춰 정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젊은 감각의 정치드라마 나올터
이는 현재 MBC 사내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협회 ‘스토리 허브’ 홍순관 대표가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홍 대표는 “지금 여러명의 작가들이 열심히 작품을 쓰고 있는 중”이라면서 “내년 2월 쯤에는 대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이같은 내용은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흘러 나왔다. ‘김 모 국회의원 사무실에 작가들이 자문을 구하기 위해 방문했었다’, ‘작가들이 한달이상 국회 의원회관에 상주하면서 취재를 하더라’, ‘고루한 정치이야기가 아니라 트렌디한 젊은 감각의 정치드라마가 나온다더라’, ‘모 매체의 정치부 기자는 해당 작가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미 나돌았던 것.
알려진 이야기로는 ‘여기자와 젊은 국회의원의 사랑’을 기본 스토리로 한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 홍순관 대표는 “여기자와 젊은 국회의원으로 이야기를 한정하기에는 이야기가 좀 약하다”며 “좀 더 많은 정치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고 언급한 후,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부했다. 내년초 방송사에 편성이 잡히면 그때 이야기하겠다는 것.
이에 대해 홍 대표는 “드라마를 MBC에서 방영하는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대본이 나오고, MBC에서 편성을 하겠다면 방영을 하는 것이고, 안하겠다면 다른 방송사에서 방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드라마는 아직 편성이 확실치 않아 단기적인 드라마로 갈지 장기 드라마로 갈지 확실하지 않지만, 드라마의 반응이 좋으면 ‘시즌제’를 통해 더 길게 갈수도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정치 드라마·영화에 관심 높아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진 정치드라마는 MBC에서 제작방영한 ‘공화국 시리즈’로, MBC는 1981년 ‘제1공화국’이 방영된 이후 ‘제2공화국’(89년), ‘제3공화국’(93년), ‘제4공화국’(95년), ‘제5공화국’(2005년)에 걸쳐 민감한 정치적 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우리나라 근세기의 굴곡진 역사를 재조명한 이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제5공화국’은 주인공이었던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해, 실존해 있는 인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끌었다. 전두환 전대통령을 연기했던 탤런트 이덕화는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전두환 전대통령의 이미지를 상기시키고 있을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제5공화국’은 전두환 전대통령 미화 논란, 5공 인사들의 항의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했지만, ‘과감한 정치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MBC ‘영웅시대’는 조기종영 때문에 ‘시청률 부진 vs 정치권 외압설’등으로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개발의 두 주역인 현대와 삼성의 두 재벌 총수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하지만 두 기업은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내용설정들을 놓고 방송사와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서울시장 등을 미화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도 받아야 했다.
때문에 당초 100회를 예상했던 드라마 ‘영웅시대’가 70회를 끝으로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 것에 대해 ‘정치권의 외압’이 있지 않았느냐는 시각이 많았다. ‘영웅시대’의 작가 이환경씨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방송이 시작되기 전 여권 고위 관계자에게서 ‘정치권 차세대 주자를 다룰 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니 주의하라’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방송사가 뭔가에 시달리는 게 뻔하지 않은가”라며 MBC의 조기 종영 방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시 MBC는 시청률 부진의 문제라며, ‘정치권 외압설’을 일축했다.

충무로서도 ‘정치 영화’ 다수 기획중
최근에는 충무로 쪽에서도 정치적 색깔이 짙은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70년대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다룬 영화 ‘실미도’(2003년), 박정희 전대통령의 이발사를 소재로 한 ‘효자동 이발사’(2004년), 박정희 전대통령이 시해당하는 내용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2005년)등이 꾸준히 개봉되고 있는 것.
‘10.26’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박 전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3분 50초 가량이 삭제된 채 상영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영화 ‘실미도’는 정치적인 희생물로 30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648 실미도 부대’의 존재를 세상에 내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실미도 대원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을 계속 진행중이다.
또한 6·25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2007년) 역시 내년 초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최근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치적 색깔을 띤 영화들을 기획하고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정치 영화가 나올 것임을 시사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정치 드라마와 영화들. 일부에서는 특정 정치인들의 미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역사 왜곡을 문제 삼기도 한다. 또한 MBC ‘영웅시대’ 조기종영을 둘러싼 정치권 외압설이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박지만씨의 상영금지 가처분 등의 여러 가지 외압 때문에 제대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정치적 치부를 과감하게 들추는 역할을 한 영화 ‘실미도’와 근세기 정치 격동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 ‘5공화국’은 현재 진행되는 정치적 드라마나 영화의 기획에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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