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체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혼합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식 대통령제에서 총리는 없다. 따라서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과 책임은 명확한 구분없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자리매김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고건전총리 제청권 파문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설명할 수 있다.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총리는 사실상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절대권력 대통령 주변에 있는 청와대나 군부 인사에 비하면 총리는 별다른 실권이 없었다. 따라서 헌법에 나와있는 총리의 제청권도 사문화된 규정에 불과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먼저 결정하고 총리에게는 나중에 사후 통보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문민정부나 국민의정부에서도 총리의 제청권은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런 사문화된 규정을 되살린 것은 고 전총리였다. 고 전총리는 작년 7월 농림부 인사에서 청와대에서 낙점했던 인사를 물리치고 허상만씨를 단일 후보로 해서 실질적 제청권 행사를 했다. 그리고 이것을 문서화했다. 고 전총리의 이번 총리 사퇴 파문이 대권 야망 운운하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각료 제청권을 현실화한 최초의 총리라는 역사적 평가는 분명한 것이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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